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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Aug 31. 2020

'맘'이 되어 보고야 그 집단의 실체를 이해하다

장래희망은 아니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인구 통계학적으로 어떤 특정한 집단을 통칭하여 부를 때 특히 1) 나이가 많을수록 2) 여성일수록 비하되거나 비꼬는 뉘앙스가 있다. 틀딱이니 하는 말이 전형적인 전자의 예시이고, 된장녀 등 온갖 XX녀의 표현이 후자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를 모두 내포한 말, '아줌마'는 도무지 더블로 긍정적이기 힘든 표현일 것이고, 심지어 그 두 가지 부정적인 뉘앙스의 합체도 모자라 벌레 '충(蟲)'까지 친절히 붙여주어 '맘충'이라는 충격적인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사실 그 표현이 나오기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한 아이 엄마들이 좀 있긴 했었겠지. 하지만 역대급 살인자, 강간범, 범죄자가 아무리 남자들 사이에서 많이 나와도, '맘충'스럽다는 행동을 한 사람보다 현재 감옥에 있는 남자들이 수천, 수만 배 숫자도 많고 그들의 죄질이 훨씬 나쁘며 사회에 경악스러운 해악을 끼치더라도 그렇게 전체 집단을 싸잡아서 대놓고 혐오스러운 표현을 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 집중적으로 그 집단에 들어가 내가 실제로 가까이서 겪어본 '맘'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1. 불안하고 여린 소녀들이 엄마라는 낯선 이름을 마주하다.


임신 초기가 되면서부터 가장 접속이 활발해지는 사이트가 있는데, 이른바 '맘까페'이다. 워낙 맘까페의 드센 입김의 부작용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 나조차도 '맘까페'라는 것의 일환이 되는 것에 꽤나 심리적 장벽이 있었지만, 임신/출산 관련 고민이나 의문점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채널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활용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는 임신 초기부터 초보 엄마들의 어디 물어볼 데 없는 불안함이나 의문들이 가장 밀집도 있게 축적된 데이터 베이스(DB) 창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색으로도 안 나오는 것들이나 최신의 문의 사항 등이 올라오면, 같은 길을 걸어봤던 인생 선배로서의 애정 어린 경험담이나 따뜻한 조언이 실시간으로 오가는 훈훈한 곳이기도 하다. 그간 열심히 살아온 소녀들이 마찬가지로 열심히 아기를, 그렇게 또 하나의 가정을 잘 지키고 가꿔나가 보겠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준비하며 엄마로 조금씩 거듭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 아등바등해서 최적의 소비활동을 지향하며, 좋은 정보는 자발적으로 공유한다.


많은 여자들이 임신 출산과 동시에 결혼 이래 또 한 번 인생의 큰 지출에 마주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경제활동을 하던 사람들도 가까운 미래에 수입 활동은 오히려 줄어드는 시기가 뻔히 보이니 같은 물건이면 한 푼이라도 더 아껴서 사는 방법에 대해 더욱 몰두하여 궁리하게 되는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평소보다 더 하나라도 비교하고 꼼꼼히 후기를 다 읽어보는 수고를 출산 준비하면서 더 자주 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맘까페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이 누군가 어쩌다 엄청나게 손품을 팔아 나만 알기 아까운 괜찮은 딜을 발견하면 아무런 대가나 바라는 것 없이 공유를 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보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도 수고롭지 않게 더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었던 적이 왕왕 있다. 간혹 틈새를 비집고 교묘한 광고도 끼어들기도 하지만, 이 경우조차 그 사실을 먼저 발견한 사람들이 광고라고 공개적인 낙인을 남겨 응징하서 남들의 시간낭비를 미연에 방지해 주는 정의감(?)을 불태우는 것마저 볼 수 있다.


3. 오지랖스러울 정도의 유대감과 공감력이 급상승한다.


누가 돈 주는 것도 상 주는 것도 아닌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올린 질문에 진심을 다해 도움되는 조언을 주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나도 워킹맘의 상황들과 의견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글을 한 번 올린 적이 있는데,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다둥이 워킹맘들이 야심한 밤이고 초새벽이고 짬을 내어 구구절절 수십 개의 답글을 달아주는 것을 보고 감동했던 적도 있다.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같이 동시에 같은 공간에서 겪지도 않았지만, 각자의 비슷한 상황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했을 상황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난 이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애정 어린 솔직한 경험담, 먼저 가본 선배로서의 실제 의견 등 구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곳 역시 '맘'까페였다. 그리고 지역 어린이집이나 아기 관련 이슈가 생겼을 때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는 것도 시간이 남아돌아 음해를 하고 누군가를 해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아이만큼 남의 아이도 소중하기에, 몸도 마음도 조금이라도 더 다치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컸을 것 이다.



이렇듯 내가 개인적으로 1여 년 그 속에서 찐하게 경험한 바로는' 맘까페'라는 것이 외부에서 쉽게 치부되는 것처럼 그렇게 비이성적이거나 과도하게 극성스럽게 모함이나 뒷담화만 하는 이상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당연히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들도 적당히 포함된, 대부분은 그냥 선하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동질감 큰 집단일 뿐이다. (물론 어느 집단이나 극단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은 있으니 그런 것은 예외로 하겠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도 전형적인 사례로 그렸듯이 딱히 혐오적인 짓을 하지도 않아도 바로 옆에 고급진 명품백 대신 '아기'가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커피를 즐기는 우아한 아가씨'에서 졸지에 '맘충'으로 취급을 받기 일쑤인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색안경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지 인생에서 애가 하나 생겼다는 이유로 원래 개념인이 급작스레 무개념인으로 바뀌거나 그 반대가 된다 것은 애초에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남녀노소 굳이 따질 것 없이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인생의 환경의 변화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살던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올바르던 아이는 훈훈한 어른으로, 개차반이던 아이는 눈살 지푸리게 하는 노인으로 그렇게 쭉 살아갈 것이다. '맘'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스하고 공감능력 넘치던 소녀는 남의 아이까지 다 같이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사랑을 전파할 것이고, 자기밖에 모르던 여자애는 역시 자기 애밖에 모르는 아줌마로 커갈 것일진대 일부 특성의 사람들이 갑자기 인구통계학적 특정 집단의 대표가 되어버린 듯하여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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