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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Sep 17. 2020

영업의 신을 만나 보았다

실적은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 잘 보인다

수천억짜리 B2B 딜을 하는 것도 회사에서 많이 지켜봤었고, 내 꼬맹이 차를 구매할 때에도 영업을 겪기는 했었지만 내가 직접 의사결정을 내리는 상황에서 이렇게 많은 옵션을 열어두고 영업들을 대놓고 비교해볼 일은 별로 없었다. 아기의 첫 전집 하나 사면서 공개 입찰을 붙인 나도 참 지독한 인간이지만, 그만큼 치열한 시장에서 영업사원들 간에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역시나 수십 건의 연락 폭탄을 맞으면서도 공개입찰이라는 방식을 쓴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이 과정에서 또 한 번 느끼고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대부분은 고만고만한 방식으로 고만고만한 것들을 제시하는 와중에, 그중에서도 단 몇 명만이 겨우 기억에 남기는 데 성공했고, 그중에서도 단 한 명만이 독보적이었다. 인상적이었던 이유들을 잘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포인트들이 있었다.



1) 자신이 처한 위치를 상대의 관점에서 깊이 이해하고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자기 얘기만 줄줄이 읊은 메시지를 일단 던지고 마는 것과 달리, 이 분은 우선 "쪽지 폭탄에 당황하셨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자신이 처한 경쟁 상황과 본인의 메시지가 읽히는 맥락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그 상황을 맞이할 (잠재) 고객의 심정까지 이미 깊이 공감하고 헤아리고 있었다. 반면 하수들은 본인들이 경쟁력 없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두서나 심지어 예의마저 없거나, 본인이 아닌 척 어설픈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추천하는 유치방법까지 쓰는 경우도 있었다.


2) 질문에 대한 답을 정확하고 깔끔하게 제시한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인데, 대기업에서 일하면서도 이 기본 하나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실제 발화든 이메일이든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것을 장황하게 늘어놓아 논점 흐려지는 것은 그냥 다반사다. 구구절절한 내용을 듣거나 읽다 보면 정작 질의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수고를 통해 발라내는 작업을 해야만 하고, 다시 재확인을 해야만 확신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독보적이라 느꼈던 이 분은 단도직입적으로 명확히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가장 먼저 하였다.


3) 언젠가는 물어볼 수밖에 없을 정보를 묻기 전에 먼저 제공한다.

그리고 이 분은 내가 했던 질문에 대한 답 외에도, 필요할 수밖에 없으나 내가 미처 물어보지 못했던 정보를 알아서 사전적으로 깔끔하게 정리 해 주어 추후 커뮤니케이션의 공수를 미리부터 확 줄여 주었다. 나는 사실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가격 대충 알고 있었기에 별도로 질문을 올리지는 않았었지만, 최종 의사 결정을 하기 전에 반드시 다시 언젠가는 확인이 필요했을 터였다. 중요한 정보는 깔끔하고 투명하게 선제적으로 오픈하여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었던 스텝을 리부터 정리해주어 더욱 신뢰감이 생겼다.


4) 내가 팔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할 것 같을 것을 제시한다.

많은 경우 영업하려는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본인의 실적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고자 한다. 그래서 애초에 잠재 고객이 관심 있었던 것보다 더 높은 단계의 옵션을 제시하고 오히려 그쪽으로 유도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결국 상대는 부담스러워 구매 의사가 오히려 더 낮아지거나, 종내 더 비싼 걸 사는 것으로 끝나게 되 낚였다는 생각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분은 오히려 내가 생각지않았던 낮은 단계의 옵션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부담스럽거나 굴욕적인 느낌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 정보 차원에서.


 5) 당장 손해를 좀 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퍼주고도 생색내지 않는다.

나는 이미 공개입찰을 붙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일즈가 제시할 수 있는 옵션의 범위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독 이분만이 유일하게 다른 분들이 제시하는 것을 뛰어넘는 독보적인 서비스(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내게 가장 필요한 것)를 제안하였다. 물론 비슷한 것을 제시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 분이 가장 신뢰가 갔기 때문에 선택했을 것이지만, 심지어 제공하는 서비스마저 절대적인 경쟁력이 있으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경쟁력 덜한 사람들이 별 것도 아닌걸로 엄살이나 생색내는 것과 달리 전혀 그런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본인이 국장이니 뭐니 직함을 내세울 때에도 이 분은 끝까지 그런 것도 없었다. 이 분은 다른 분들이 구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던 것마저 아주 빠른 속도로 구해주시는데 그런 직함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물어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엄청난 실적을 쌓아 올리 성과가 좋을 수밖에 없는 영업 전문가일 것이다. 지금 당장 국장급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국장 혹은 더 중요한 사람이 될 사람일진대 지금 당장 내 요구제대로 충족도 못시켜주는 '현재' 국장인 사람한테 사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영업의 신은 삶의 곳곳에 있으되, 희소하였다. 그리고 신이 될 사람과 평생 해도 신이 못 될 사람의 차이는 너무도 확연히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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