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수 년이 넘도록 대체적으로 직장을 즐기면서 다니고 있는 운 좋은 경우지만, 사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다. 월요일 출근은 늘 마음이 무겁고, 출근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 직전인 경우가 가장 흔하고, 정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일반적이다. 심지어 성과도 좋고 인정도 많이 받는다는 사람들조차 대화를 해보면 그런 심리적인 상태는 어쩜 그리 다들 비슷한 지 놀랄 때도 있었다. 내가 출근해서 만나는 사람들 중 일을 정말 즐긴다고 느껴지고, 그들의 에너지에 덩달아 나도 같이 힘을 받는 세 사람 있다. 이번에는 그들에 대해 살짝 소개를 해볼까 한다.
#송해를 닮은 쾌활한 할아버지#
회사 앞 길가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 낡은 집(?) 한 채가 있다. 그 집의 명패, 혹은 '모토' 같은 것이 손글씨로 밖에 붙어있는데 이름하여 '행복한 집'이다. 아침 출근길부터 따끈따끈 갓 구운 즉석 토스트를 단돈 2천 원에 살 수 있는 그 집에 들르면, 덤으로 그 할아버지의 경쾌한 기운까지 얻어갈 수 있다. 외모도 송해를 많이 닮으셨는데, 연세도 얼추 봐도 한 70대 후반이나 80대는 되어 보이신다. 하지만 그분의 인생 절반도 아직 안 산, 우리들의 그 어떤 출근길보다 더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이다.
늘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능숙하게 쓱쓱 마가린을 철판에 두르고 토스트를 이리저리 뒤집으신다. 주문을 하면 언제나 변함없이 "케찹 뿌려서? 안 뿌려서? 어떻게 드려요?"확인하시고는 "맛있게 드세요~!!"하는 경쾌한 인사와 함께 기름기가 살짝 묻은 뜨끈한 검은 봉지를 건네신다. 나도 절로 "많이 파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말이 나오게 되면서 동시에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의 행복한 집이다.
#우리 건물에서 제일 깍듯한 청년#
회색빛 건물에 걸맞은 삭막한 사무실의 분위기에도 늘 밝은 얼굴과 경쾌한 걸음으로 인사를 잘하는 멀끔한 청년이 있다. 그 청년은 최근 들어온 신입사원들과도 크게 차이 나지 않아 보이는 앳된 얼굴인데, 다른 친구들이 수첩 하나 달랑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을 들고 왔다 갔다 한다. 커다란 나무 책장 같은 것을 항상 한쪽 어깨에 이고 있는데, 잘 보면 신발들이 꽂혀있는 신발장 같은 것이다.
그는 여기저기 돌면서 연차나 직급이 꽤나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구두를 수거하여 닦고 수선하고 배달하는 일을 담당하는, 한마디로 '구두닦이'이다. 비슷해 보이는 또래들이 어리바리 어르신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왠지 이 회사 어른들을 모두 꿰고 있으되 모른 척하며, 한없이 선한 눈망울을 하고 깍듯이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또래 친구들과 조금 다른 차림으로 '같은 건물에서 다른 일'을 하지만 스스로 의기소침해지거나 의미 없는 비교를 하면서 본인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일 따위에는 에너지를 쏟는 것 같지 않았다.
매번 그 청년을 마주칠 때마다, 그는본인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후회나 회한이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복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를 한번 돌아보게 된다. 그와 같은 훈훈함이 나라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인간적인 따스함이 넘치는 그녀#
"일이 재미있어요." 화장실에서 우리가 마주쳤을 때 그녀는 여느 때처럼 따스하고 인자한 미소를 띤 채 말씀을 하셨다. 늘 바쁜 일상이라 마주칠 때마다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항상 인간적인 관심을 표하면서 먼저 거리낌 없이 '점심은 맛있게 먹었냐', '오늘 하루는 어땠냐'를 물어봐주셨다. 내가 임신 6개월이 되도록 너무 티가 안 나서 본인이 몰라봤다며, '잘 챙겨 먹으라'면서 오늘 선물로 들어왔다는 귤을 한 움큼 나눠주시기도 하였다.
같이 업무로 엮인 적도 없고 심지어 나이 대가 비슷하지도 않은 사람으로부터, 이 삭막하기 짝이 없는 사무실에서 이 정도의 인간미를 보게 되는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라 신선하면서도 고마웠다. 늘 밝은 미소로 주어진 것 이상으로 에너지 넘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자면 나까지 기분이 훈훈해지는 느낌이었다. 한 번은 정말 궁금해서 '어쩜 그렇게 늘 기분 좋으시냐'고 여쭤봤더니 그녀의 대답은, '오랜만에 일을 하는데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래.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한 거지.
야리야리하고 한없이 밝고 따뜻한 그분의 직함은 '여사님'이시다. 그녀가 말한 '재미있다'고 한 일은 우리가 다 아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깜깜한 초새벽부터 변기에 광을 내고, 화장실 바닥의 오염을 청소하고, 세면대를 닦는 그런 일들이다. 아들을다 키워서 군대도 보내고, 이제 시간 여유가 많아져 본인도 사회에 나와서 일이라는 것을 다시 시작하는데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하셨다.
언젠가 노회찬이 생전에 언급했던 적이 있는 그 6411 버스, 서울 시내 저 끝에서 이 끝까지 꼭두새벽부터 대부분의 남들보다 훨씬 일찍 출근해야만 하는 온갖 직업의 사람들 틈에서, 비좁은 바닥이지만 서로 앉으라고 깔개를 나누는 그런 훈훈한 버스를 타고 출근하시는 것 같았다. 평생 살림만 하시다 검은 새벽 시간에 집을 나서서 그때부터 그 나이에 몸 쓰는 일을 새로 시작하는 것이 분명히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분은 진정으로 즐겁게 받아들인 것 같았고, 그것이 같은 일을 하고도 늘 웃으며 여유를 가질 수 있던 비결인 것 같았다.
어떤 형태로든 직장이 있다면 우리는 모두 출근을 한다. 같은 곳으로 출근을 하지만 우리는 아마 모두가 상당히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 출근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 이유가 주어진 일이 그들의 일보다 재미없는 일이어서인가? 내가 흘리는 땀에 비해보수가 부족해서인가? 내게 주어진 것들이 나보다 더 즐거워 보이는 저 사람들보다 더 나빠서인가?
회사에서 뭔가 기분이 안 좋을라치면 나는 위에 소개했던 분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내가 시급이 그들보다 조금 더 높은 이유는 어쩌면 단지 내가 그들보다 시대를, 환경을, 그리고 상황을 조금 더 잘 만나서 태어났을 뿐인데, 나보다 더 불리했던 그들도 최선을 다해 하루를 행복으로 꽉 채우는 마당에 내가 그렇지 않다면 직무유기가 아닌가? 오늘의 나는 조금이라도 직무유기를 하지는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