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명물고기 Nov 28. 2019

지하철에서 받아본 최고 배려의 기억

공포에서 훈훈함 그리고 우려 사이

아침 출근길이었다. 혼잡한 을지로 3가 역에서 환승하려는데 건너편에서 폰으로 게임을 하며 건너오던 중학생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 남학생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나를 따라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일부러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저 멀리 갔는데 이상하게 저 멀리 수많은 오가는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있음에도 나를 계속 의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일부러 더 멀리까지 가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맨 앞 줄에 서 있는데, 은근히 저 멀리서 굳이 내가 서있는 줄까지 와서 뒤편에 서는 것만 같이 보였다. 나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타는 척을 하다가 지하철이 도착하자마자 혼잡한 틈을 타서 그 줄이 아닌 옆 칸의 줄로 잽싸게 바꾸어서 탔는데, 막판에 그 아이도 줄을 바꾸어서 내가 바꾼 칸으로 따라와 탄 것이 아닌가? 언뜻 봐도 눈빛이 불안정하고 일반적인 학생은 아니었기에, 그 예측할 수 없음에 약간의 공포를 느끼며 슬금슬금 저 구석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그 학생이 아주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누나 여기 자리 있어요!!!
임산부이신데 여기 와서 앉으세요!!

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다. 타자마자 그는 제일 먼저 노약자석 한가운데 딱 한자리 빈 것부터 확인하고 나를 앉게 하려는 것 같았다.

임산부라도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험한 소리를 듣는 경우도 많이 들었고, 두 정거장 남은 상황이라 전혀 앉을 생각이 없었는데 모두가 쳐다보고 있는 그 상황에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맙다며 그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옆의 할머니도 거든다. "눈치 보지 말고 앉어~누가 뭐래도 내 몸은 내가 지켜야혀~" 뭔가 순식간에 공포가 훈훈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는데, 나는 그 남학생의 그 순수함이 고마우면서도 왠지 미안하고 그가 우려스러웠다.

그는 7개월 차 임산부 티가 나는 나를 따라와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의 오지랖 혹은 상대방의 부담스러움이나 공포,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등은 잘 보이지 않아 보이는 그 학생은 아마도 남들과 조금은 다른 세계를 가지고 사는 아이였던 것 같다. 나는 그 마음이 매우 고맙긴 했지만, 그 아이가 커가면서 받을 것만 같은 수많은 오해와 상처들이 미리 벌써 안타깝고 걱정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좀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끌어안을 준비가 되어있을까. 그 학생이 많이 다치지 않고 사회에서 본인의 강점을 잘 발휘하면서 잘 섞여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나부터도 다름에 대한 편견을 처음부터 좀 덜 가지도록 노력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많던 비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