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너무도 길기에
'은퇴'라는 말의 로망이 사라져 가고 있는 시대이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다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애들 키우고 본인이 평생 일구어온 직업에서 은퇴를 하고 나면 여유롭고 편안한 삶만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막연했던 그런 환상은 실현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이 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이 젊은 날 열심히 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올해 내가 삶에서 만나본 은퇴자들은 이런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 고학력 인텔리 택시 기사 #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기사분과 얘기를 하다 보니 이 분이 말씀하시는 논거의 흐름이 컨설팅 펌 입사를 위한 케이스 인터뷰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택시 산업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면, 우리나라 인구가 몇이고, 그 인구 중에서 택시를 이용할 만한 가망 수요가 몇이고, 서울시에 등록되어 있는 택시의 대수는 몇이고, 기사가 되고자 하는 노동 수요는 얼마며 등등 각종 수치들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수급 논리에 따른 현재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분석 판단하고 계신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은 은퇴하시기 전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셨다고 하셨다. 그마저도 은퇴하고 나니, '딱히 집에서 놀면 뭐 할 것이며, 곧 태어날 손주 용돈 벌이나 할 겸' 택시를 운전하신다고 하셨다. "카카오 택시는 드라이버로 지원하는 경쟁률마저도 높았다"며, 나름대로 뽑히기 위한 '연구'를 하신 덕에 '좋은 기회'를 얻으셨다는 말씀을 하시는 데, 일말의 프라이드마저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그분은 교수 시절에도 꼬장꼬장한 스타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 현직 지역 문화 센터장인 운전연수 강사 #
운전을 오래 안 하다, 아기를 낳고 운전할 일이 필요하여 주말을 이용한 짧은 운전 연수를 받게 되었다. 연수 도중 강사분이 급한 전화를 받으시게 되어, 통화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당시 홍수가 많이 나던 여름날이었는데, '본인이 담당하는 문화 센터가 공공시설이라, 전날 밤샘 교대를 통해 보초를 서면서 침수피해가 없는지 확인을 하느라 피곤했다'는 말도 하셨다. '밤샘 보초 후에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오후 근무라니 정말 피곤하시겠어요.' 나는 문화센터의 경비 혹은 끽해야 관리소장님이 부업으로 운전연수 강사도 뛴다고 생각했다.
알고 봤더니 그는 강남지역 모 문화센터의 '관리소장'이 아닌 '기관장' 신분이었고, 본인이 헤드이기 때문에 일부러 솔선수범하여 교대 밤샘의 일정에 자원을 한 것이었다고 했다. '위에서는 말만 하고, 험한 일이 생겼을 때 정작 뒤로 빠지면 리더십이 살지 않는다.'고 하였다. 본인이 신분을 내게 굳이 부풀리거나 거짓말할 이유도 없었고, 반면 나도 좀 의아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져보았는데, 센터 운영에 대해서 리더 된 자로서 알아야 할 것들을 너무도 잘 꿰고 계셨다. 예전에는 잘 나가는 국책기관에 오래 재직하셨고, 퇴직 후 지역 센터에서 일하시다 그곳에서 센터장으로 승진하신 분이 맞았다.
# 평생 안정적인 공무원의 아내였던 산후 도우미 #
아기를 출산하고 정부지원 산후도우미라는 명목으로 집에 도와주는 사람을 고용하는 기회를 처음으로 갖게 되었었는데,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아주머니는 꽤나 개념과 지식이 있는 중산층의 보통 어머니였다. 나이는 우리 엄마보다 약간 적은 정도였는데, 이 일을 시작하신 지는 5년 남짓 된 것 같았다. 이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녀는 안정적인 공무원의 아내로서 평생을 전업 주부로서 본인 아이들만 키우시던 분이었다.
이제 아들딸을 다 독립시키고 난 후엔 은퇴한 주부의 여유로운 삶이 아니라, 하루 종일 남의 집 아기와 산모들을 돌봐주는 일을 시작하셨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는 평생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퇴직하고 퇴직금을 홀랑 털어 사업을 했는데 쫄딱 망했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다 퇴직하는 시기에 오히려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분은 고객인 나를 자기 딸처럼 대해주면서, 계약된 '아기 돌봄 서비스' 외에도 내 딸이라면 해주면 좋을 것 같은 일들을 마구 나서서 해 주셨다. 그분이 처음 오셨는데 정작 아기가 자고 있자, 제일 먼저 해주셨던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양말 짝을 찾아서 일일이 개어주신 것이다. 업무 범위에도 포함되지 않은, 나도 귀찮아서 손도 안 대고 있던 일들을, '그런 일까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손사래를 쳐도 어떻게든 찾아내어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박사를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고 해서, 좋은 직장에서 퇴직 후 괜찮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안정적인 공무원과 결혼을 했다고 해서 삶의 중후반부가 경제적으로 놀고먹을 수 있는 여유로운 은퇴자의 라이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반면, 나는 이분들을 보면서 나의 막연하게 불안했던 노후가 조금은 덜 걱정되는 것이었다. 내가 평생 쌓아온 커리어나 전문성 등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하루아침에 더 이상 쓸모없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운전이나 아기 돌보기 등의 아주 기본적인 삶의 기술들이라도 있다면 언제든지 그래도 먹고살 방법은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안도감이랄까. (물론 그 시대에는 그마저도 다 AI로 다 대체되어 버린다면.. 할 말이 없다.)
다만 젊은 날 주력으로 하지 않던 분야에 뒤늦게 뛰어들려면 그 분야에서 애초부터 구력이 붙은 사람들(혹은 로봇)과 경쟁을 해야 하니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일 수는 있다. 그렇다면 내가 쌓아온 것들로써 차별화 포인트를 삼으며 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 하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심리적 허들만 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인생이 너무도 길기에, 마음의 장벽을 언제든 하물수 있는 그런 마인드는 정말 중요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