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공부 열심히 해라." 학생이었던 우리는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이자, 인생 최고의 목표였다. 그래서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한 데다가, 나름대로 머리와 적성이 받쳐준 경우 정말 공부를 잘하여, 많은 경우 전문직의 길을 선택하였다. 전문직의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고, 그런 것들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니까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해서 했고, 대학도 잘 가고, 선망하는 꿈의 직업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반드시 미래가 계속 장밋빛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환상뿐 아니라 실상 역시 알고는 있어야 했다.
# 원장님의 일요일 점심은 나 홀로 컵라면 #
내가 아기를 데리고 종종 가는 소아과는 토요일도 일요일도 문을 연다. 처음 그곳을 간 날은 일요일 점심이 지난 시간이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본, 피곤에 찌든 배 나온 한 아저씨가 컵라면을 사들고 황급히 들어간 곳이 바로 그 소아과였다. 지금 이 시대에, 50대 후반의 나이에, 주 5일 근무는커녕 7일 근무도 모자라 일요일 점심을 혼자 허름한 건물의 오래된 사무실에서 대충 때우는 생활을 하고 있다니.
그 원장님은 손꼽는 명문대 의대를 졸업하고 무려 의학박사였다. 어릴 때부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뭔가 엄청나게 화려하고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전국에서 0.1% 이내에 드는 성적을 받을 정도로 머리도 좋을 뿐 아니라 평생 치열하게 열심히도 살아온 결과가 '일요일 오후 나 홀로 왕뚜껑'인 건가? 물론 누군가는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했기에 그 나이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주말도 빨간 날도 없이 일하는 삶을 30년 가까이 지속하고 싶은 사람이 요즘 얼마나 있을까?
# 고시는 통과했지만, 난 이 일이 정말 싫어 #
변호사를 하고 있는 지인이 둘 있는데, 한 명은 일을 즐기는 반면 한 명은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어렵다는 사시를 통과하여 변호사가 되었건만, 심지어 몇 년 경력을 쌓기도 전에 이미 그 업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막상 이 업무를 해보니, 매일 싸우거나 트집 잡기 위한 이 일이 정말 싫어. 내 주변에도 어쩔 수 없이 변호사 일은 하고 있지만, 정말 육아라는 핑계라도 생기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사람이 여럿 있어."
이 친구는 부모님의 오랜 염원대로 법대를 가고, 고시도 통과하고 평생소원을 다 이루었지만, 막상 목표에 도달해 보니 평생 상상했던 멋지고 근사한 삶은 없었다. 대신 고시 준비 시절과 다름없는 살인적인 근로 시간에, 소모적이고 논쟁적인 일감만 잔뜩 쌓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결국 이 친구는 그간의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 길을 떠나기로 했다. 변호사 자격증을 소지했다는 사실 외에는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반 공무원의 길로 전향하였고 훨씬 더 만족하며 다닌다.
# 출산한다니 바로 퇴사하래요 #
조리원에서 식사 시간에 처음 옆자리 앉은 분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애는 그렇다 치고, 그래서 복직은 언제 할 거냐'라는 주제에 도달했는데, 그녀는 출산한다고 퇴사를 당해 앞으로의 커리어가 막막하다고 하였다. 아니 지금 시대가 어떤 때인데 애 낳았다고 무려 '육아 휴직'도 아니고, '출산 휴가'도 안 주고 바로 자른다고?? 충격이었다. 아직도 이런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다던데 이런 게 진짜 현실인 건가.
회사 규모가 작아서 그런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것이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그렇기도 하지만 업계 특성상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직업은, 평균 연봉이 가장 높다고 매번 신문에 나오는, 변리사였다. 의사 친구가 예전에 해준 말이, 의사들은 출산 휴가 3개월을 다 채워 쓰고 나면 돌아올 자리가 아예 없어져 3개월을 쓴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고 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의사처럼 생명과 직결되기에 부재가 용납이 안 되는 특수성이 없는 전문직에서도 이유가 뭐가 되었든 공백이라는 것은 허용 불가였던 것이었다.
# 원장님은 바쁘십니다 #
이후 아이가 좀 크면서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고, 그중 우리 아이와 특히 잘 노는 친구 부모를 만나게 된 적이 있다. 어차피 애들은 빨리 크니, 한 철 험하게 입히고 말 생각으로 시즌의 가장 저렴한 옷들만 입히고 등원시키는 우리 아이에 비해, 그 아이는 패딩부터가 평생 입을 어른인 나조차 살 엄두를 내본 적 없는 '몽클레어'였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수수해 보이는 그 아이 엄마가 좋아하는 식기라며 얘기하는 브랜드들은 나는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알고 보니 세트에 한 천만 원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수중에 천만 원이 생겼을 때에 그 돈으로 양가 부모님을 모두 초대해 일본 여행을 가긴 했어도, 식기를 사는 옵션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듯 나는 삶에서 조금이라도 금전적 여유가 생길 때면, 오래 쓰는 물건에 투자하기보다는 오래 남는 추억 쪽에 투자를 해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는 차림새는 상대적으로 좀 허름할지 몰라도, 반에서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다닌 아이가 되었다. 우리 아이가 몇 번이나 여러 식구들과 비행기도 타고, 배도 타고 하는 동안, 의외로 그 친구는 아직도 이틀 이상 멀리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알고 보니 엄마가 한의원 원장이라 길게 휴가를 낼 수가 없다고 하였다. 토요일도 반나절은 일하고 일요일은 한의사들끼리 스터디를 한다고도 하였다. 그 집은 아빠도 변호사라 형편은 너무도 넉넉했으나, 돈이 아무리 많아도 멀리 길게 여행 간다는 것은 어려운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그들의 삶이 조금도 부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몽클레어' 같은 게 필요 없는 사람이다.
전문직이 목표였던 적은 없지만, 나는 하라고 해도 못했을 수준까지 공부를 집중도 있게 해내고, 꽤나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목표를 성취한 그들이 기본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한 전문직의 좋은 측면들도 분명히 훨씬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평생 열심히 산 그들은 그럴 자격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직업에나 같은 일을 하고도 즐기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 더 성공하고 덜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날부터 커서까지 남들보다 치열히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무조건 이후 인생이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스스로를 노예나 노비라며 자조하며, 멋지고 당당하게 퇴사하고 나면 드디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대단한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 환상을 가지는 것을 본다. 하지만, 평생 당신보다 열심히 살아온 결과물로 힘들게 얻은 전문직의 삶이라도 그렇게 인생이 만만치만은 않다는 것을 한 번쯤 돌아보자. 어쩌면 세상에는 원래가 그리 대단하거나 엄청난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고 두 발을 땅에 바짝 디디며, 매일을 살아내 가면서 조금씩 나의 걸음걸이를 바꾸는 것부터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