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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May 07. 2020

궁극의 서비스란 어떤 것일까

감동의 본질에 대해 고찰해 보다

마케터이지만 기획자이기도 한 나는 좋은 기획, 좋은 서비스란 무엇인가에 대 고민을 종종 한다. 꼭 현재 하고 있는 업종의 과제에 대한 것뿐 아니라, 궁극의 서비스나 고객의 감동을 주는 포인트의 본질은 어느 분야든 통한다고 생각하는데, 최근 삶의 큰 이벤트를 겪으면서 집중적으로 다양한 힌트를 얻게 되었다. 임신/출산과 같은 일을 겪다 보면 각종 업종의 서비스를 경험하게 되는데, 감사히도 여러 분야에서 실망보다는 감동 주는 서비스를 많이 만나게 되궁극적으로 그러한 감동의 본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를 고찰해 보았다.



1. 궁극적인 목표에만 집중하여 따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다.


내게 배정된 산후 도우미 이모님은 내가 무언가를 요청하기 전에, 요구되는 업무 분야를 넘어서는 일까지 티도 안 내고 해버리시는 분이었다. 예고되었던 산후 도우미의 업무 역할은 '아기 케어'와 '산모 케어'까지 만으로 규정되어 있고, 기타 '냉장고 청소'라든가, '음식물 쓰레기 처리', '분리수거' 등과 같은 일들은 업무 범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공식 규정에 미리 굳이 명시되어있었다. (아마도 업무 범위에 대한 분쟁이 그간 많았었나 보다.) 그러나 이 이모님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산모인 내가 불편할 것 같은 문제는 모두 '산모 케어'의 범주에 넣고 거기에만 집중하시는 것 같았다. 소소한 업무분야 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모를 도와준다'라는 궁극의 목표 달성이라고 생각하면 그 외의 문제들은 사소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굳이 그런 일은 안 하셔도 된다" 혹은 "귀찮지 않으시냐"고 하면, "아니 이게 무 대단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웃으며 어차피 집에 나가는 길이라며 쓰레기 봉지든 재활용품이든 꼭 양손 가득 들고 퇴근을 하셨다.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기대되는 것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뭔가 플러스 알파를 경험했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알파라는 것의 핵심은 (1)요청하기 전에 알아서, (2)기대하지 않고 있던 부분에서, (3)기꺼운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실제로 그 이모님은 고객인 나를 자기 딸처럼 생각해서 시급과 근무시간, 그리고 업무 영역을 따지지 않고 내 딸이라면 해주면 좋을 것 같은 일들을 알아서 척척 해결해주셨다. AI가 미래에 우리의 일자리를 다 잡아먹는다지만, '친정엄마 같은 마음'이랄지 감동의 포인트인 '명시된 규정을 넘어서는 일탈'이랄지를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고객도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니즈의 발굴 등에는 빅데이터 등의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Default Input(기본 입력)되지 않은 값을 추가하는 의사결정은 인간이 하게 될 것이다. 감동을 '느끼는' 것도 결국 인간이 하는 일 아닌가.


2.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불편이 있을지에만 집중한다.


조산기로 인해 장기 입원을 하면서 간호사라는 직업을 처음으로 오래 가까이 자주 보게 되었고 그들의 의료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몇 주동안 집중적으로 겪게 되었다. 내가 있던 병원의 간호사들은 2인 1조로 3교대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보통 한 조의 구성은 '시니어 1+ 주니어 1'의 조합으로 되어있는 것 같았다. 장기 입원을 하면서 몸에 수액줄을 24시간 꽂고 있으면 가장 불편한 것이 화장실 등의 이동과, 식사 후 식판을 치우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조산기로 인한 입원은 무거운 것을 들면 절대 안 된다.) 간호사들은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나의 상태를 체크하러 오는데 본인의 일이 아닌데도(원래는 나중에 한꺼번에 배선원이 수거) 치우지 못한 냄새나는 식판이 널부러져 있는 것을 왔다 나가는 김에 치워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왠지 그런 허드렛일(?)은 상대적으로 힘 좋고 짬이 적은 주니어들이 할 것 같은데, 반대로 대부분 실무에서 거의 졸업한 시니어 간호사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내 짬에 그런 잡일을 왜 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오랜 의료 서비스 종사자로서 고객인 환자의 마음을 더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습성이 생긴 것일까.


시니어 간호사님들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 었던 경우는 의료적인 체크업이 없는 타임인데도 밖에서 식판이 옆으로 밀쳐지는 소리를 듣고 일부러 식판을 치워주러 바로 달려오시던 분이었다. 또, 얼굴에 '나 착해'가 쓰여있던 한 간호사님은, 장기 입원에 따른 찝찝함을 마음 깊이 공감해 주시고는, 며칠 만에 겨우 한 번 샤워를 하러 가면 그 사이에 맞춰서 호텔도 아닌데 침구를 새로 싹 다 교체해 놓으셨다. 그리고 어떤 간호사님은 내가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보면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라며 발을 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오래전 전공과목에서 공부했던 것, 최근 논문 읽었던 것까지 언급하며 모든 것들을 동원해서 최선을 다해 야밤에 장황히 설명해 주시기도 하였다. "내 직급에 그런 일을" 혹은 "내가 간호사인데 그런 일을" 또는 "귀찮게 왜 그런 것들까지" 이러한 마음이었다면 내가 받은 감동들을 결코 줄 수 없었으리라. 궁극의 서비스란 제공자인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고 철저하게 상대의 관점에서 불편을 해결해 주는 일이 아닐까.


3. 궁극의 서비스는 그 자리에서 휘발되지 않고 여운을 남긴다.


산전산후 관리를 받으면서 마사지사들을 집중적으로 만나게 되었었다. 이들을 잠시 한두 시간 피부와 근육을 만져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나보다도 훨씬 높은 시급에 너무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을 불편한 부위를 풀고 조용히 쉬다가 오기보다는 관리사님들과 이것저것 얘기를 많이 하다 보면, 관리를 끝내고 나와서도 활용할 만한 것들을 상당히 배우고 나오게 된다. 신체적으로 불편한 점이나, 피부 관리에 대한 궁금한 점 등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서 의견을 물어보면 대부분은 최대한 많이 알려주려고들 하시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노하우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면, 그 서비스의 가격은 결코 비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중에도 특히 만족스럽게 관리를 잘해주시는 분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지식도 상당히 많으셨다. 이를테면 "그런 자세는 몽골에서 출산할 때의 자세라 벌어진 골반 회복을 더디게 해요"라던가, "출산 직후 약 100일까지, 릴렉신 호르몬 분비가 가장 왕성할 그때가 골든 타임이니 놓치지 말고 꼭 신경 써서 회복 스트레칭 중적으로 많이 하는 게 큰 도움될 거예요" 등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많이 주셨다. 열심히 일을 잘하시는 분들은 본인들도 꾸준히 발전하기 위해 본업인 마사지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각종 강의도 계속 들으러 다니신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관리를 받지만 그 시간에 들었던 조언과 관련 지식 등은 한 주 이상의 기간 동안 계속 살아 숨 쉬며 내 삶에 많은 힘이 되었고, 실제로 병원까지 갈 정도로 심각해지기 전에 예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당장의 내 일만 잘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지만 관련된 역량들을 꾸준히 확장해나가고 그것을 무기로 가지고 있다가 요긴하게 쓸 수 있다면, 실제로 오래 도움이 되는, 당장 제공한 서비스의 감동 이상의 여운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감동 주는 서비스라면 나 같은 고객이 추가로 돈을 들서 뭐 하나라도 사례도 하게 만들고, 자발적으로 좋은 후기도 쓰게 되고, 혹시 피드백을 해야 하는 기회가 오면 알아서 좋은 평점을 날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유무형의 그 모든 것이 서비스인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업종이 심지어 제조업이라고 해도 결국은 제품을 만들어 그것을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방식에 따라 엄청나게 평가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은가. 궁극의 서비스 목표는 '감동'이어야 할 것이고, 그것들의 본질은 업종과 관계없이 통하는 맥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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