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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Dec 14. 2020

해피 벌스데이 투미 (feat. 30대 마지막 생일)

굿바이 30대


연말에 태어난 나는 생일이 보름 정도 지나면 또 한 살을 먹는 운명을 타고났다. 오늘은 내가 만으로 39세가 되는, 그러니까 3자로 시작되는 생일의 마지막인 것이다. 매 해 생일이라고 거창하게 뭐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리고 2~30대 끝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염세주의자도 아니기에, 딱히 특별한 감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생각보다 무미건조한 하루가 지나간다. 아직 만 1세가 되지 않은 아기가 아까 오후에 잠시라도 자 주어 글이라도 한 줄이라도 일부 끼적일 수 있었던 것에 감지덕지하면서.


#먼 곳에서

외국에 있는 사람들이 새벽에 가장 먼저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내 놨다. (아침에 확인했지만) 외국에 있으면서도 나의 생일을 기억해주고, 현지 시간으로 아직 멀었는데도 늦기 전에 보내 놓은 안부들은 놓치지 않고 축하하기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싶어 그 마음이 더 고맙게 느껴진다.


#엄마

엄마는 아침에 폰을 켜기도 전부터 부재중 전화를 한통 벌써 띄워놓았다. 그러면서 이제야 생일 아침인데 어제 미리 몰랐다고 미안하다며, 미역국이랑 케잌은 먹었냐고 닦달이다. 아직 아침 8시도 안되었는데. 그리고 미역국 끓여줄 테니 점심이나 저녁에 오라고 난리다. "아니 뭐 됐다. 내가 끓여먹어도 되고 안 먹으면 또 어떠냐" 실랑이를 벌이다 그냥 못 이기는 척 "저녁에 애 데리고 갈게."하고 만다. 내가 앞으로 생일에 엄마 미역국을 몇 번이나 더 얻어먹을 수 있을까? 인생이 이리 빨리 지나가는데..싶어서였다. 나는 엄마가 내게 뭘 해주는 것이 늘 싫다. 반찬이든 뭐든 그만큼 엄마가 더 고생하고 수고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는 뭐라도 주고 싶은 부모 마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그냥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소모되었으면 한다.


#어머님

사실 올해 나의 생일을 가장 먼저 축하해준 것은 시어머니였다. 혹시라도 잊을까 싶어서 뭐든지 미리미리 하시는 성격의 시어머니는 이미 사흘 전에 거금 30만 원을 먼저 부치시고는 "요즘 딸기가 맛나던데 맛있는 것 많이 사먹어라"고 이미 하셨다. 그런데 잊지 않고 당일 아침이라고 전화를 주시다니. 그러고 "신랑한테 미역국 얻어먹었냐?" 하신다. 명절에 같이 설거지를 하면서 "왜 아들은 일 안시키시냐"고 내가 웃으며 따박따박 얘기할 때에도, '아들은 아까워서 일 못 시키겠다'며 멋쩍어하던 어머니인데.. 빈 말이라도 고마웠다.


#아침의 풍경

지난 결혼기념일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생일에는 깜짝 꽃바구니 혹은 꽃다발과 선물이 항상 있었고, 카드는 당연히 있었기에 아침에 사실 기대감을 조금은 가지고 방문을 열었다. '벽에 지방 출장을 내려가기 전에 뭔가 올려놓고 나갔겠지.' 웬걸. 아침 식탁의 풍경은, 어제 야식으로 먹은 핫도그 봉지, 케첩 등이 마구 널브러져 있고(나는 식탁 위에 어지러운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올려두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개수대엔 설거지거리가 산더미처럼 가득 쌓였다. 꽃도 카드도커녕 종종 아침마다 정리해놓고 갔던 깔끔한 부엌조차 없었다. (보통 밤부터 아침까지도 내가 애를 거의 300일째 100% 혼자 다 보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 설거지는 종종 하고 출근했다.) 


#밤의 풍경

혼자 아기를 데리고 엄마한테 단지 그 밥 한 끼를 먹으러 가기 위해, 이것 저것 준비하고 아기 입히고 유모차 끌고 다녀와서 목욕시키고 뭐하다 보니 저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6시 전부터 준비해 나가서 돌아와서 씻기고 누워 마지막 수유를 하려고 보니 벌써 10시. 엄마 집에서 차려준 밥 먹고 과일 먹고, 단 40분 정도 머물렀던 것 같은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하루 동안 왕복 8시간 거리의 출장을 다녀온 그가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다. 아기를 씻기고 나온 내가 요즘 으레 그랬듯 뭐라도 차려주려니 한사코 본인이 알아서 먹겠다고 단호하게 막는다. 이것은 오늘 결국 아무것도 내게 챙겨주지 않은 나름의 미안함일까, 그냥 본인 상황에 대한 짜증일까. 헷갈린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간과 담낭이 안 좋아 재검이 떴고, 정신건강 테스트에는 우울감이 상당하다는 결과를 받았다던 것을 떠올리며 그냥 아무 말 없이 국자를 건네주고 아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왔다.


소소한 축하를 마다하기 위해 카톡에서 생일도 이미 예전에 비공개 처리해 두었으나, 여전히 아날로그적으로 특별히 나를 기억해주는 이들은 고맙게도 어김없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선물들을 밤에도 하나씩 보내왔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결국 나의 30대 마지막 생일은 조각 케이크조차 하나 없이, 촛불 한 개 없이 그렇게 지나간다. 20대보다 더 뜨거웠던 나의 30대는 이렇게 막을 내리는구나. 어쩌면 이미 그 불길을 그간 충분히 불살랐으니 그에 딱 맞는 마침표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30대는 나름 해보고 싶었던 것들은 얼추 다 해본 것 같아 후회 없다. 이제 40대는 그전의 인생과 다르게 책임져야 할 몫이 하나 더 늘었고, 그에 맞게 감당해야 할 현실의 모양과 색깔도 다양해질 것이다. 쌔근쌔근 자는 아기 옆에서 이렇게 무덤덤하게 40대를 맞이하는 것도 어쩌면 가장 40대 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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