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출산도 무통 주사나 촉진제 등 인위적인 약물을 전혀 맞지 않은 자연주의 출산을 했고, 육아 역시 기본적으로 자연주의로 하자는 입장이다. 아기를 낳고 기르고 하는 것들이 결국은 모든 생물의 본능이고, 그런 만큼 충분히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뭐든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간 문명이 발달한 만큼, 특정 영역에서 만일 힘든 부분이 있다면 적당히 현대 문명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에 수유에 있어서도 완모(분유 없이 완전히 모유 수유만 하는 것)는 스트레스 가득한 궁극의 목표도 아니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할 수도 있는' 기본 설정 옵션 값에 불과한 것이었다. 만 11개월 가까이 완모를 직접 하고야 돌아보니 그 과정에서 완모를 하면 이런 사항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다들 모유 수유의 장점만 이야기하지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누구도 얘기해 주지 않아 나는 겪기 전엔 몰랐었다.
1. 완모가 끝날 때까지 통잠은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50일의 기적,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을 나도 들었지만, 내게 그런 기적은 300일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그 기적들의 전제는 대부분의 산모들이 그 사이에 단유를 진행했기 때문이었던 것을 나는 몰랐다. 만 11개월이 지나서야 심각한 젖 뭉침으로 오케타니 유방 관리를 받으러 간 적이 있는데, 완모 중에는 '당연히' 통잠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임신 전부터 각종 책을 보며 연구하고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해보았던 수면 교육이니 분리 수면이니 이런 것들이 하나도 의미가 없었다. (왜 그런 시간 낭비를 했을까..) 분유에 아무리 좋은 성분을 많이 주입했다 하더라도 모유만큼 흡수가 잘 되는 분자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다 흡수도 소화도 안된다고 한다. 반대로, 모유는 너무 흡수가 잘 되어버려 위장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당연히 배고파지는 주기도 짧다.
정말 드문 케이스로, 조리원에서 집으로 오자마자 젖도 떼기 전부터 아주 길게 통잠을 자기 시작한 아기를 딱 한 번 보았는데, 그 아기는 천성적으로 너무 잘 자는 아기여서 나중에는 오히려 뒷머리가 납작해진 것을 고민할 정도였다. 이렇듯 드물게 모유 수유 중에도 통잠의 기적이 찾아오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이런 경우조차 2~3시간, 길어도 4시간 넘게 수유를 안 하고 건너뛰면 계속 생성되는 젖이 배출되지 못하고 고여 유선염이 되기 때문에, 수유가 아니면 유축이라도 해야 한다고 모유 전문가가 말한다. 즉, 애는 정말 운 좋게 통잠을 자게 되더라도 엄마는 젖 떼는 그날까지 통잠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아기 10개월 차에 남편과 소아과에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아직도 모유 수유를 하고 있다고 얘기했더니 머리 희끗하신 원장님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편에게 "이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혹시 당직 한번 서보셨어요? 이건 거의 1년 동안 단 하루도 안 쉬고 당직 서는 거라고요. 이건 누구라도 체력적으로 엄청나게 힘든 일이에요." 하셨다. 그간 혼자 분리 수면을 해 잘 모르던 남편은 그 비유를 듣고서야 조금 더 와 닿는 느낌이었다.
2. 수유한 만큼 몸의 영양분이 빠져가는 것은 맞다.
아기가 나온 순간부터 세상은 모두 아기 위주이다. 여기저기서 모유의 장점만을 엄청나게 떠들어 대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삭는 엄마의 몸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그나마 나도 자신의 귀중한 자식인 우리 엄마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대로 "6개월이 지나면 영양분도 많지 않고 네 몸이 상하는 게 더 크니 단유를 해라"라고 자꾸 얘기를 했었지만, 온통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유는 계속 아기가 커가면서 필요한 영양분에 맞게 성질이 변화하므로 전혀 영양적 가치가 감소하는 게 아니니 계속하라는 말만 강조하였다. (역시나 철저히 아이 위주) 그런데 실제로 모유는 혈액과 거의 비슷한 성분으로 적혈구만 없는 상태이니 하루에 많을 때는 최대 1리터까지 '헌혈을 매일' 하는 꼴인데, 학창 시절 배운 자연 에너지 보존 법칙을 떠올려보면 에너지, 영양소, 면역력 등은 화수분처럼 어디서 계속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어디론가 이전되는 것이다. 즉, 모체의 몸에 매일 빠져나가는 1리터에 포함된 양만큼의 알맹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실제로 가장 대표적인 성분이 칼슘인데, '오래 수유할수록 나중에 폐경기 이후 잔존 치아 비율이 극적으로 낮다'는 연구도 있을 정도로 장기적인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으니 수유기에는 평소보다 칼슘 섭취가 월등히 많아져야 하는 것 같다. 나도 거의 매일 요거트를 챙겨 먹고, 커피도 라떼로만 마시고 수유기 종합 영양제를 챙겨 먹어도 손톱이 부러지다 못해 물렁해지기까지 할 때에는 중간중간 칼슘제도 추가로 챙겨 먹었다. 그리고 최근에 전신 마사지를 받는데 몸 전체의 수분 부족이 눈에 심각하게 보인다며, 6개월 이상 수유한 산모는 피부를 보면 말을 안 해도 딱 티가 난다는 말도 하였다. 면역력 역시 아기에게 많이 전달한 만큼 내게 남은 것이 더 이상 없어 버틸 수가 없었던지, 11개월 차에는 유선염부터 눈, 귀와 콧속, 잇몸, 심지어 무릎까지 염증이 차서 주사기로 11cc를 뽑아내기까지 하였다. 평생 면역력 하나는 자신 있어 뭐든 하나 안 좋은 것이 있어도 늘 빠른 회복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한 달 내내 가능한 부위별로 온몸이 염증 덩어리였다. 대신, 조리원 동기 아기들이 다들 한 번씩 아플 동안 우리 아기만 아직까지 태어난 이래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어서, 내 면역력이 어디 증발한 것이 아니라 아기한테로 간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은 든다.
3. 출산보다 끔찍하다는 젖몸살(유선염)이 올 수 있다.
아들 둘을 키우는 친구가 출산보다 더 끔찍했던 것이 젖몸살이었다며, 출산은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어도 젖몸살은 피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나도 두 번 경험을 했다. 고열이 39도 가까이 올라가서 거의 이틀씩 시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그 원인은 아기 뱃구레가 커져가면서 점점 수유 텀이 길어지거나, 잘못된 수유 자세(눕수 등), 복잡한 유선 조직 구조 등으로 결과적으로 일부 유선이 막혀서 그 라인의 고인 젖이 지방산으로 변화되고 그 강한 산성이 주변 조직을 녹여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뭉친 젖을 전문 마사지로 배출시켜 보니 누런색 고름 같은 액체가 끈적하게 나왔다.
사람마다 젖양, 유선의 치밀도와 복잡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젖몸살이 오는 시기나 정도 등이 다 다를 수 있지만, 초반에 겪는 사람들은 일찍 모유 수유를 포기하게 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아기가 초반부터 어느 순간 분유를 선택했다면 일부 유선이 막혀있거나 유방 상태가 좋지 않아 젖을 먹기 힘들어져서 그럴 수 있다. 그런 경우 상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전문 모유 수유 전문 기관에서 바로바로 유방 마사지를 받는 등의 노력으로 가슴 상태를 좋게 만들면, 아기도 굳이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엄마의 젖을 놔두고 분유를 일찌감치 선택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유선염이 온다고 바로 병원을 가서 약물적 처방을 받기 전에, 최대한 마사지 등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몸에도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수유도 지속하기 더 수월한 것 같다.
4. 아기가 변을 일주일에 한 번 볼 수도 있고, 이유식을 잘 안 먹을 수도 있다.
우리 아기는 이유식을 제대로 먹기 전까지 응가를 정확히 일주일에 한 번씩만 쌌다. 주변에 이런 경우가 아무도 없었고, 온통 책에서는 모유 수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변을 지리면서 더 자주 본다는 말들뿐이었다. 그래서 온갖 유산균을 사다 먹여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만 싸도 전혀 힘들어하지도 않고 너무도 상태가 좋은 호박죽 같은 변을 충분히 푸지게 보기에 그냥 놔뒀는데, 이유식을 시작하자 바로 하루에 한두 번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이번에 유방 관리를 받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모유가 흡수가 잘 될수록 그런 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보통은 2~3일에 한 번씩 싸는 경우가 많지만, 정말 흡수를 잘 시키는 젖은 일주일에 한 번 배출하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라고 한다. (소위 버릴 게 없다는 뜻)
이유식을 접한 초기의 신기함이 사라진 어느 순간부터 이유식을 너무 안 먹으려 해서 몇 달간 가장 큰 고민이었다. 소아과를 가보면 밤중 수유를 무조건 끊어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기는 밤에도 정확히 세 시간 간격으로 배가 고파 깨는데 수유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잠도 배고픔도 학습이 아니라 본능이라 생각하는 자연주의 사상이 기본이라, 분명히 배고파서 깬 것이 맞는데도 일부러 울리고 배가 곯은 채로 자는 습관을 주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아이통곡 마사지를 여러 번 받게 되면서 모유 수유 전문가인 원장님께 이것저것 여쭤보니, 아기들이 크면서 낮에는 호기심에 궁금하고 재미난 것이 너무 많아서 젖도 밥도 설렁설렁 건성으로 충분히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낮에 덜먹으니 밤에 계속 배가 고파서 깨고, 배고프니 밤에 많이 먹고, 또 밤에 많이 먹으니 낮에 배가 덜고파 덜먹는 것의 악순환이었다. 맞는 말 같았다. 이론적으로는 낮에 충분히 먹어서 밤에 덜먹게 해야 하는게 맞는데 실제는 쉽지가 않았다.
역시나, 단유를 하고 자기 전에 그득히 분유를 먹으니 밤에 더 이상 안 먹고, 밤에 안 먹으니 다시 이유식을 잘 먹기 시작하여 나의 이유식 고민도 다행히 끝났다. 주변에서는 다들 오래 수유를 한 만큼 젖을 뗄 때 그만큼 나도 아쉽고 애도 떼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라 얘기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도 할 만큼 충분히 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아쉽지 않았고, 아기도 이만하면 충분했거나, 아니면 유선염까지 온 나의 상황을 이해해서인지 단 한 번을 보채지 않고 쿨하게 분유를 잘 먹어주었다. (단유를 감안하여 몇 달 전부터 물도 자꾸 젖병에 주고 젖병에 다시 친숙해지기 위한 노력을 미리 하긴 했다.) 나는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나 완모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일단 코로나로 인해 딱히 장시간 외출할 일도 없고 집에서 항상 애랑 둘만 있으니 딱히 수유를 한다고 포기할 것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코로나로 인해 불안하니, 조금이라도 면역력을 더 주고 싶었다. 코로나에 걸린 엄마라도 수유를 하니 아기에게 바이러스는 전달되지 않으면서 혈액 속 항체는 모유로 전달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좋은 물질이 있다면 수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달해 주는 것 역시 자연적으로 프로그램화되어있는 듯했다. 단유를 통해 드디어 울 아기는 탯줄 분리 이후 젖줄로부터도 이제는 완전히 나에게서 독립한 꼴이 되었다. 앞으로의 인생은 그간 실컷 준 것들이 충분한 거름이 되어 스스로 잘 살아갈 토양이 되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