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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Oct 31. 2020

책, 주입의 수단이 아닌 여러 기회 중 하나로

책육아 그 강박적인 단어 앞에서

육아계에 들어오면서 여러 신기한 새로운 단어들을 접하게 되었지만, 그중 가장 희한했던 단어가 '책육아'였다. '아니, 연애도 책으로 배우는 세대라더니 육아도 글로 배운다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이해한 바로는 '책을 (엄청) 많이 사주고 아이에게 계속 많이 읽게 하는 육아법' 정도 되겠다. 물론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게 한다는 것이 장점이 많은 것임에 동의를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책'도' 보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밖에서 뛰어 놀기도 하는 것이지 무려 '책육아'라니 그 강박적인 단어가 참으로 생소했다. 정말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책을 봐야만 공부 잘하는 아가 될까?



1. 1살짜리에게 책이란


100일 정도부터는 책을 읽어주라는 둥의 얘기들이 있었고, 이미 선물 받은 책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굳이 읽어주지는 않았다. 말도 아직 못 알아듣는 아기에게 글을 읽어주라니ㅡ 몸도 마음껏 못 움직이는 아기에게 벌써부터 책주입하는 게 맞을까 싶었다. 책이 과연 아기에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를 고민해보고, 이것저것을 찾아보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나서야 책을 조금씩 노출해주기 시작했다. 책을 '교육의 수단'이 아니라 '아기와 놀아주는 또 하나의 소스'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나니 책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아기에게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책의 스토리 덕에 일상생활에서 별로 발화할 일 없는 다양한 단어와 의성어 의태어 등의 맛깔나는 말소리를 듣게 해주는 기회 생각하기로 했다. 즉, 교육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각과 청각 자극의 소재인 것이다.


2. 강박적으로 책을 읽기보단 흥미와 취미가 되길


자기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수백 권을 읽는다고 자랑하는 부모들이나, 영재랍시고 미디어에 나오는 경우들을 종종 본다. 내가 존경하는 Adam Grant 교수의 'Originals'라는 책에서도 정확히 짚어주었는데, 그렇게 어린 시절 영재랍시고 떠들던 아이들치고 나중에 엄청나게 대단하게 큰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어린 시절에 공부나 악기 등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들, 조금 일찍 가는 것보다 스스로가 진정으로 즐기면서 오래 길게 가는 힘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책 많이 읽는다는 부모의 칭찬에 취해서, 스스로가 정말 즐기는 것인지도 잘 모르는 나이부터, 책 외의 더 많은 세상이 있는지도 별로 관심이 없이 책벌레의 길을 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음미하고 진정한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것이 백 권을 단숨에 읽어내는 것보다 더 좋을 것 같다. 책이라는 것을 접할 기회는 충분히 주되, 주입해서 그 세상이 전부인 양 가르치기보단 스스로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취미 정도가 되면 가장 좋겠다.

                                                     

3. 다량 주입보다 중요한 스스로의 소화력


한 때 가장 친했던 단짝이었던 중학교 때 짝꿍은 과외 한 번 없이 국내 최고의 과학고를 입학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어릴 때부터 내가 자발적으로 읽은 책의 양이 그의 두 배는 되었을 터인데, 그 아이와 대화할 때면 사고의 깊이와 그 논리를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항상 대화의 끝에는 나는 그의 의견에 더 이상은 반박을 할 수가 없고, 속으로 상하는 자존심으로 분을 삭여야만 했었다. 그 아이의 타고난 아이큐가 좋은 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와 큰 차이가 나는 수준도 아니었던 터라 나는 늘 의문을 가졌다. 심지어 그 아이의 부모님은 장사를 하느라 바빠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방치되기 일쑤였고, 맨날 집에서 혼자 TV만 보다가 어느 순간, 세 살 무렵 갑자기 자막을 읽게 되었고 그렇게 한글을 배웠더랬다.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다 타고난다'는 것보다, 다량의 주입식 인풋보다는 '어릴 때부터도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아이에게도 계속 무언가 끊임없이 입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 두 개의 정보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소화하는 시간이 아닐까? 결국, 내가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증명하겠다는 듯이 전집들을 질 단위로 게걸스럽게 읽어댔어 봤자 그 아이의 혼자 사고하는 습관만큼 효과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양으로 승부할 것이 아니라 한 권을 읽더라도 천천히 생각하면서 소화시키는 여유와 아주 깊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당시엔 그것을 몰랐다.



어릴 때부터 너무 많은 책을 노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퀄리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제 갓 한 살 되는 우리 아기에게는 지금 보여 주는 것이 인생 처음으로 접하는 그림과 스토리이자 그가 아는 책 세상의 전부일 테니 이왕이면 조잡하기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좋겠다. 그리고 딱딱한 텍스트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든 아름다운 멜로디가 곁들여지면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책이 아닌 실제에서 해 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실제로 해주려 한다. 책에서 과일의 색과 냄새를 배우기보다는 다양한 실제 과일을 통째로 보여주고 맛과 향을 알려주고, 책에서 엄마가 아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읽어주기보다는 실제로 한 번 더 따뜻하게 꼬옥 안아준다. 꽃의 아름다움을 책을 통해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가까이 꽃병에 꽃을 꽂으며 장미, 백합, 유칼립투스 등의 실제 향기와 모양을 삶에서 보여주고 있다. 요즘 잊지 않고 매일 챙겨하고 있는 것은 아기와 함께 음악을 들으며 석양을 보는 일인데, 아기를 안고 재즈를 들으며 함께 가을 노을을 보고 있으면 행복의 언어까지 전달될 것만 같다. 그렇게 우리 아이가 만나게 될 멋세상은 책뿐 아니라 그 너머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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