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만 8개월이 지나도록 완모(분유 없이 완전히 모유 수유만 하는 것)를 하게 되고야 말았다. 조리원 동기나 공동육아를 하는 우리 아기 또래 친구들은 이미 100일을 전후로 다 모유를 졸업한 상태이다. 개중에는 엄마들이 모유의 장점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집착을 한 경우도 더러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오히려 의지만큼 완모를 하지 못하고 그것에 대한 회한이나 미련이 남은 듯하였다. 반면 애초부터 혼합 수유를 지향하며 어찌 되든 큰 상관없다고 되는대로 하겠다던 나만이 뜻하지 않게 완모를 아직도 유지하는 아이러니란. 어쩌면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았고, 그러기에 아직도 가능한 것이라 생각된다. 모유의 장점도 당연히 있지만, 오염이 난무하는 요즘 세상에서 먹이사슬 제일 꼭대기에 있는 고등동물인 인간의 몸에 축적된 중금속과 환경 호르몬 등을 고려했을 때 반드시 모유가 다 좋기만 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고,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거늘 집착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1. 분유 조제 가이드라인, 참고는 하되 목매지 말자
아기를 처음 낳아 먹이는 것에 대해 교육을 받을 때에, 조리원이든 산후 도우미든 분유를 타는 것에 있어서는 명확하게 "1) 반드시 끓였던 물에 2) 정확히 40도를 맞추어 3) 오차 없는 물의 양을 맞추어 분유를 타고 4) 이전의 분유나 모유 등과 섞으면 안 되고 5) 절대로 한 번 입 댔던 젖병은 나중에 다시 주면 안 된다."라는 원칙을 안 지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하였다. 그러나 나는 집에 온 첫날부터, 한 달도 안 된 아기에게 거의 다 안 지켰는데 결론적으로 괜찮았다. 밤새 여러 번 유축한 모유를 계속 합쳐서 아침에 한꺼번에 먹이는 것은 거의 매일 했는데 다행히 한여름은 아니어서인지 상한 적은 없었다. 유축 모유를 먹이고 이어서 분유를 먹이나, 유축했던 모유와 분유를 섞어 먹이나 어차피 속에서 섞이는 것은 같다고 생각해 그냥 유축 모유에 분유를 섞어서 한꺼번에 타 먹이기도 많이 했다. 실온의 모유와 40도로 맞춘 분유가 합쳐져 결과적으로는 30도도 되지 않았을 때에도 아주 꿀떡꿀떡 잘 먹기만 하였다. (다양한 온도의 감각도 체험하고!) 그리고 끓였다가 식혀진 물이 없을 때에는 끓인 물과 안 끓인 정수기 물을 혼합하여 온도를 대충 맞추기도 하였다.
실제로 프랑스의 분유 라벨에 붙어있는 가이드에는 원래가 생수에 타서 마시라는 것도 있고 (단, 분유 타도 좋은 생수는 병에 표시가 되어있다), 미국에서 애 키우는 사람들은 생수병 가지고 다니면서(끓인 물도 아니고, 보온병 따위는 당연히 없다) 타 먹인다길래 우리나라 아기들만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우리 애는 나를 닮아 배고픈 것을 조금도 못 참는 성격이라, 까다롭게 분유 정석 가이드 다 지키려다 몇 분씩 더 자지러지게 울게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대충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빨리 입에 물려주는 것이 아기 입장에서 나은 옵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기가 아팠던 적이나, 물똥 한 번 싼 적 없이 늘 변은 호박죽이었으며, 50%의 평균 체중으로 태어난 아기가 상위 3%의 우량아까지 찍기도 했을 정도로 건장하게 잘 크고 있다.
2. 수유도 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수유를 처음 시작하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은, 한쪽 수유를 함과 동시에 반대쪽에도 젖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수유를 하지 않을 때에도 5분마다 젖이 돌아 늘 수유패드라는 것을 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인간이 이렇게 많이 진화를 했는데도 아직 인체는 이렇게 비효율적인 시스템이란 말인가? 다시 생각하니 어쩌면 인류 역사상 그다지 멀지 않았던 근래에만 해도 다산을 하였으니, 동시에 여럿을 먹이고 끊임없이 젖이 나오는 것이 수많은 자식을 양육하는데 꼭 필요했던 시스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 번에 한쪽씩만 먹이고 반대쪽은 버리는데 그 젖을 활용할 수 있다면, 즉 한쪽 수유하면서 동시에 다른 쪽 젖을 받아두면 유축 필요량이 훨씬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직접 수유가 아닌 유축만을 할 때조차 양쪽을 동시에 할 수 있다면 시간은 절반, 효율은 두 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방법들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발굴해 냈던 것이 '실리콘 수동 유축기'였는데, 이것이 마치 뚫어뻥처럼공기의 압력으로 조작되는 원리라 수유를 하거나 유축을 할 때 반대쪽 가슴에압착식으로 붙여놓고 있으면 흘러나온 반대쪽 유축을 동시에 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원래의 용도는 사실 그냥 다양한 유축기 종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조리원에서 수유 타임이 끝나면아기와 유축된 모유를 동시에 맡기는 유일한 산모가 되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누워서 밤중 수유를 할 때마다 동시에 반대쪽의 젖을 받아두고 아침 첫 수유에 활용을 하여 아침 시간을 조금 더 벌었다. 또한, 매시간 유축을 할 때마다 유축기를 들고 있는 것이불편하여 불필요한 힘을 아끼며 동시에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유축을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한 끝에 또 하나의 솔루션을 찾아냈었다. '유축 브라'라는 아이템이 있어서 유축기를 끼운 브라처럼 차고만 있으면 유축기에 손을 대고 있지 않아도 유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단, 유축이 원활하지 않아 손 유축을 동시에 해줘야만 하는 경우는 활용이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나는 반대쪽은 압착 유축기를 이미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양쪽을 동시에 유축하면서도 양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축을 하는 시간 동안에도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검색도 하고 책까지 읽을 수 있었다. 조리원 생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 젖 주는 일, 즉 수유+유축이었는데 이 두 가지 활동에서 효율이 올라가자 에너지 소모가 훨씬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3. 수유하면서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초반에는 나의 목표대로 혼합수유를 잘 해와서 외출도 꽤 길게 할 수 있었으나, 어느 순간이 되면 아기가 분유든 모유든 선택한다더니 우리 아기는 100일이 좀 지나고부터 배가 곯아 죽을 지경이 되어도 분유를 딱 거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결코 완모에 대한 환상도 목표도 없었기에 분유를 다시 먹이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했지만 아기가 너무 완강하기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조산기로 한 달여 입원을 해 있던 당시부터도 나는 우리 아기가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을 스스로 제일 잘 안다고 믿기에, 그의 선택을 전적으로 지지해주기로 했다. 완모를 하면 힘든 점과 편리한 점이 있는데, 힘든 점은 완모를 하는 동안 대부분 통잠은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이고, (만 9개월 차 접어드는 지금도 밤에 어김없이 두세 번씩 수유를 한다.), 편리한 점은 젖병의 귀찮음이 없고, 수유를 하고 있는 동안에 손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나는 그 장점을 살리기 위해 낮에 수유를 하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으며, 하기와 같은 것들을 수유와 동시에 해보았다.
1) 아기 돌봄 과제: 손톱 깎기, 귀지 관리, 로션 & 연고 바르기, 다리 및 발 마사지, 양말 신기기, 지루성 두피 딱지 긁어 주기
2) 내 개인 과제: 업무 수첩 정리, 공기압 다리 마사지 & 얼굴 팩, 발바닥 지압, 독서 또는 글 구상, 해외 뉴스를 보며 (나는 주로 CNBC) 그날 밤 미국 주식 개장 시 취할 액션에 대한 인사이트 정리
3) 일상 과제: 밥이나 간식 먹기 (과일에 요거트는 물론이고, 피자, 쌀국수, 짜파게티까지 수유 쿠션에 올리고 수유와 동시에 먹어봤다), 빨래 개기, 모바일 장보기 등
산전에 들었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강의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스트레스받은 엄마가 하루 종일 같이 놀아주는 것보다, 행복한 엄마가 한 시간이라도 집중적으로 놀아주는 것이 아이에게 훨씬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모든 것들에 강박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피곤한 엄마가 아니라, 최대한 머리를 써서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데에는 아끼고, 죽거나 탈 날 정도만 아니라면 적당히 유두리를 발휘하면서 효율적인 육아를 하고자 한다. 아기를 돌보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는 수유에 있어서도 적당히 타협도 하고, 또 잔머리도 최대한 써가면서 마음을 편히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