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초상화 2
누구를 안다고 할 때, 내가 아는 것은 대체 뭔가. 요즘의 남편을 보면서 간간이 그런 생각을 한다. 원래도 사람이 좀 밋밋하니 뭐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었지만, 적어도 그의 외현적 특징들은 내가 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 남편의 무표정함은 아마도 유일하게 내가 안다고 자부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무표정은 내가 그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핵심적 단서이기도 했으니, 그의 무표정은 내가 아는 남편 그 자체라고 해도 될 법하다.
두어해 전 남편 그림을 포스팅할 때도 그 점에 대해서는 별 다른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다(https://brunch.co.kr/@poiu/141). 그런데 그걸 다시 읽어보는 지금은 그 생각에 영 자신이 없다. 아무래도 무표정은 그의 특징이 아닌 것 같다. 문득 멈추고 다시 보게 된 그는 자주 웃고 활짝 웃는다.
그가 달라졌을 수 있다. 중년에 이르러 호르몬이 변했거나 혹은 그림자로만 있던 그의 아니마가 힘을 받았거나, 뭐 그러저러한 각종 심신의 변화로 그의 정서 표현이 실제로 다채로워졌을 수도 있다. 어림없어 보였던 자기 성찰을 그도 하게 된 바람에 상남자의 허울을 벗고 자신의 정서 표현에 조금 너그러워졌을 수도 있다. 여튼 그가 달라졌을 수 있다.
아니면 내가 달라졌을 수 있다. 몇 해 전 작심하고 사는 속도를 줄인 나는,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많은 것들에 눈길을 주고 머물러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났다. 그중 큰 부분이 남편이었을 테니, 어쩌면 나는 남편의 다채로운 표정을, 이제서야!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관계가,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양상이 달라졌을 수 있다. 사는 동안 나도 달라지고 그도 달라지고 우리가 처한 상황도 달라졌으니 우리의 관계 방식이 달라졌을 것이다. 오래 겪어온 우리는 서로의 소소한 오류에 예전만큼 예민해하지 않게 되었다. 상대의 잘잘못이 대체로 그럴만하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제와 무슨 교정이냐 싶어 그냥 웃어넘기게도 되고 그런다. 웃어넘기려다 보니 그와 나 사이에 쓰잘데없는 농담이 난무하게 되고, 급기야 그는 박장대소(!)를 자주 드러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나는 그를 알았었다고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안다고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아는 것은 그에 대한 나의 짐작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 짐작은 그가 변하고 내가 변하고 맥락이 변하고 관계가 변할 때, 따라 변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그러니 나는 그저 다음번 이렇게 문득 멈추어 보게 될 그를 궁금해할 밖에. 그즈음에 내가 그리게 될 남편의 초상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또 그 멀뚱한 표정을 그려놓고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이노무 무표정’으로 시작되는 포스팅을 하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