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점에선 자기 계발서를 찾기가 힘들다. 한국의 교보문고와 비슷한 포지션을 가진 반스엔 노블의 메인 웹페이지에는 자기 계발서가 단 한 개도 없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뿐이다. 어린이용 동화, 판타지 소설, 로맨스 소설, 역사극, 추리 소설 온갖 장르가 큐레이팅되어 있지만 자기 계발서는커녕 논픽션조차 거의 없다. 맨 아래까지 내린 후에야 ‘영감을 주는 책 (inspirational reads)’라는 제하에 유명인들의 회고록 따위가 아주 조금 있다. 오프라인 서점도 마찬가지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엔 소설들이 전시되어 있고, 수필집, 자기 계발서, 부자가 되는 법 따위는 구석에 내몰려 있다.
반면 한국 대형 서점에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항상 맨 위, 혹은 바로 그 아래에 올라 있는 책이 돈 버는 법, 그리고 그다음으로 자기 계발서가 눈에 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교보문고 e북 베스트셀러 1위는 “살 때, 팔 때, 벌 때”, 2위는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4위는 “1퍼센트 부자의 비밀"이다.) 이들 모두 일독 시 부자가 되거나, 트렌드를 익히거나, 글을 잘 쓰게 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어필을 하고 있다. 10위 내에 소설은 단 한 권, 수개월 전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던 “불편한 편의점”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마저도 마음의 치료를 약속하며 자신의 유용함을 피력하고 있다. 순수한 재미를 위한 책은 거의 없다.
분명 독서는 취미다. 학생이 아니라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독후감 때문에 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서점에서 책을 고르며 어떤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를 고민한다. 이런 글을 쓰는 나도 혈관에 김칫국물이 흐르는 한국인이기에 서점에 가면 고민 끝에 나에게 가장 유용해 보이는 책을 골라 나오곤 숙제하듯이 꾸역꾸역 읽곤 한다. 그리고는 이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반면에 미국의 서점이 보여주듯 미국인들은 재미 그 자체를 위해 책을 읽는다. 미국 서점에선 넷플릭스 메인 페이지처럼 온갖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이 자신이 더 재미있다며 강력하게 어필한다. 어떤 책이 더 재미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어떤 책이 더 유용할까 고민하는 것보다 더 행복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인은 서점에서 행복을 찾고 한국인은 서점에서 자신의 불안을 본다.
우리는 취미를 고를 때조차 그 효용을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고 책을 읽으면 마음의 양식이 되고 하는 식이다. 그래서 효용이 전혀 없는, 순수한 재미를 위한 취미는 한심하게 보기 마련이다. 그 어떠한 효용도 없는 컴퓨터 게임과 같은 취미를 즐기고 나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취미생활에서도 효용을 찾는 지독한 사람들이다. 영어로 취미는 hobby이지만 또 다른 표현으로 pass time 이라고도 한다. 직역하자면 시간 보내기가 된다. 즐거운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는 의미인데 전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시간 낭비를 괴로워하는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우리는 경쟁에 중독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자주 느낀다. 끊임없이 발버둥 치지 않으면 뒤처지고 만다는 불안감이 즐거움을 앗아가고 있다. 불행한 문화다.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어떤 물질적 풍요도 행복함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경쟁 그 자체가 아닌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한다. 유치한 로맨스 소설도 쓸모없는 컴퓨터 게임도 행복에 관점에선 그 쓸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