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결국 남이고 가족은 내 삶의 동반자이다.
국토 면적이 작고 전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땅덩어리가 넓고 서울급의 메트로폴리스도 여럿이라 진로를 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직업을 고르는 것을 넘어 내가 어떤 환경에 살 것인가를 정하는, 더 크고 중요한 문제이다.
죽고 못 사는 친구였더라도 진로 결정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친한 친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도시/지역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미국에서 살다 보니 서로 다른 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들이 많다. 게다가 물론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과 나 사이에 생긴 거리는 13시간의 시차만큼이나 더 넓고 깊고 우리는 맨틀 위를 떠다니는 지각판처럼 지금도 천천히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너와 내가 멀어진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인생이 우리를 다른 곳에 데려다 놓았고 우리는 살기 바쁠 뿐이다. 그러기에 친구는 결국 남이다.
가족은 남이 아니다. 진로를 고민함에 있어 가장 큰 요소가 가족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 행복할 장소를 찾게 된다. 가족은 함께 잠들고 함께 식사를 하며 함께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을 한다. 반대로 나도 가족의 희생과 헌신 위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독립을 하며 기존의 가족을 잃는다. 부모자식 사이에 존재했던 헌신과 의지가 옅어지고 계산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동물들이 둥지를 떠나듯 우리는 부모와 남이 된다. 이 또한 서글퍼할 일이 아니지만 혼자서는 너무 외롭기에 새로운 가족을 찾게 되고 연애는 그 가족을 찾는 과정이다. 사랑이란 두 사람이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갈 만 한지, 내가 헌신할만한 사람인지 가늠해 보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단순한 친구를 사귀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 과정에서 받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모두 갑절로 크다.
예전엔 친구들에게 가족이 되어달라고 호소했었고 그들이 응해주지 않아 혼자 섭섭해했었다. 그들이 줄 수 없는 것을 바랐고 그것을 그들이 주지 않자 혼자 미워했었다. 친구가 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가까웠던 친구와 멀어지는 것도 편해졌다. 내 마음이 내키는 만큼 베풀되 되갚아주기를 바라지 않게 되고, 멀어져 가는 친구의 등을 보며 서글퍼하지도 않게 되었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에 틀린 것이 하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