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국인 대한민국과 거주지인 미국 두 곳 다 선거철이다. 정치뉴스가 가장 재미있을 시기라 요즘은 한국 미국 가리지 않고 양국의 뉴스를 매일같이 듣는 중이다.
미국은 거의 완벽한 양당제이고 한국은 다당제의 탈을 쓴 사실상의 양당제이다. 두 곳 모두에서 이 양당제의 폐해에 대해 성토하는 목소리가 있다. 양당제에서는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하는 것보다 상대방을 헐뜯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라 상대의 악마화, 적대적인 공생관계가 존재하는 굉장히 소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미국도 한국도 선거철만 되면 제 3의 대안 세력이 잠시 나타났다가 찰나의 반짝임을 보이고 사그라들곤 한다. 나는 이 두 나라 외의 정치에 대해 거의 무지하기 때문에 어떤 대안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더 나은 제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만은 매 선거철마다 든다. 하지만 같은 모습, 같은 폐해를 가지고 있더라도 한국 뉴스와 미국의 뉴스는 많이 다르다.
한국의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스포츠 중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누가 어떤 말실수를 했고, 누가 누구와 힘을 합쳤으며 누구는 누구와 갈등을 빚고 있고, 누구의 지지율이 지금 잘 나가고 있고, 공천잡음이 어떻고, 누가 대통령을 더 잘 비판/지지하나 따지기나 하는 등등, 정책에 관한 기사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고 정치인들의 싸움과 줄 서기에 대한 중계만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이번 총선의 향방을 가를 정책적인 이슈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매일 뉴스를 듣는 나도 대답하기가 힘들다. 연금 개혁안이 발표가 되든 말든, 또다시 역대 최저의 출산율이 발표가 되든 말든 지면 한 구석에서 다뤄질 뿐이다. 헤드라인들만 봐서는 어떤 정책에 관해서 누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러다 보니 투표도 정치인들의 이미지만 가지고 이뤄질 수밖에 없다
미국에도 정치공학적인 뉴스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현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다루는 뉴스들은 항상 주요 헤드라인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비중으로 늘 다뤄지는 건 주요 정책에 대한 각 진영 간의 대결이다. 미국 2024년 선거의 주요 이슈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바로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 주요 논점들은 낙태권 문제, 이민자/국경 문제, 그리고 인플레이션 문제이고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논점들이 있다. 양당제의 폐해라는 상대의 악마화조차도 이 정책들의 논점에서 많이 이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들을 사람취급하지 않는 인종차별주의자라던가, 바이든은 인플레이션을 조장한 무능력자라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정치인들은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하며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성을 가지고 싸운다. 상대방이 당선되어선 안될 이유도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모자란 사람이어서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나라를 끌고 나갈 비전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더 강하게, 더 자주 말한다.
물론 미국도 정치적인 견해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진영 간 사회적 갈등이 심해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기왕 갈등을 빚는 거 과거보단 미래를 가지고 싸웠으면 좋겠다. 이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일까. 시민들의 의식 수준일까, 언론의 행태일까, 정치인들의 무능일까. 재외국민선거를 이틀 앞두고 답답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