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하우스 물고기자리에 뜬 해왕성

by 싸지타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비켜난 각도에서 보았는데 조금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우솜돌의 항암을 결정하기 위해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병원에 속한 동물메디컬센터를 방문했던 날이었다. 이 날의 목표는 단 한 가지. 항암과 관련한 약물처방이 우솜돌의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 완화해 줄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가장 큰 고통은 아무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이 가빠진다는 것이 아닐까? 치료가 아닌 완화라는 말에 입 안이 쓰게 느껴졌다. 지역에서 항암을 할 수 있는 병원은 많지 않았다. 가까운 대학병원을 놔두고 다른 병원에 갈 이유는 없었다. 응급상황에 대비해서라도 이곳을 선택해야만 했다. 이미 우솜돌은 손을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애매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는 수의사의 연령 때문이었다. 호흡기내과 수의사는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임상수의사들보다 젊었다. 젊다기보다 소년 같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가 바라보는 모니터의 의료 차트를 치우고 지금 당장 웹 게임 화면을 띄운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보였다. 대학이라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역에서 유명한 대형 동물병원에만 가도 앳된 얼굴의 수의사들이 더러 보인다. 사실 그들이 젊기도 하지만 내가 노인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우편으로 받은 예비 국회의원들의 프로필에 적힌 연령을 확인하면서 나는 나의 생물학적인 늙음을 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의사에게 묻고 싶다. '혹시 항암이나 안락사를 진행해 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의사와 나는 폐종양과 관련한 중요한 몇 가지 대화를 주고받았다. 현재 우솜돌은 폐암 말기 중의 말기이며 다른 나라의 경우 지금 당장 안락사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정서가 그들과 달라 - 죽음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여서 - 임종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거기에 더해 항암과 호스피스의 차이를 들었고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쓰이는 약물의 효과와 생존 기간 등을 설명했는데, 지금도 외우기 힘들고 소리내기도 어려웠던 ‘싸이클로파스포마이드’라는 항암제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어느 섬나라 이름 같았다.


항암 치료에 들어갈 때 주의해야 할 점 또한 새겨 들었다. 경구 항암을 진행할 경우 독성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의 격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수의사의 설명에 조금 주저했다. 우솜돌은 동생 까비뇽과 엄마 다롱이의 자발적인 골목대장, 아니 다른 말로 순화하면 수호천사가 아닌가? 아픈 환자이면서 동시에 수호천사인 우솜돌은 '동생 까비뇽 핥아주기'가 거의 덕후 수준인데 이를 제지한다면 몹시 심심해할 것이다. 사실 까비뇽과 다롱이는 우솜돌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확실히 없다. 아예 없다. 그들이 우솜돌을 핥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말이다.


개들도 고유한 성정이라는 것이 있어 어른개가 되면 성격이 확연히 드러나기도 하는데, 세상만사 냉소적인 다롱이와 고양이에 홀려 멍만 때리는 까비뇽이 ‘네 멋대로 해라’ 아니, ‘내 멋대로 한다'인 우솜돌에게 애정 표현을 할 리 만무하다. 오랫동안 개를 관찰한 내가 발견한 사실 하나는 개들끼리 혀로 핥아주는 행위를 인간의 언어로 대신하면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다른 집 개들을 살펴본 적이 없으니 내 짐작이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다롱이와 까비뇽 모녀가 우솜돌을 자발적으로 핥아 준 기억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관심 없다’는 나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우솜돌이 그들에게 그다지 매력 없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데다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까비뇽 얼굴을 정성스레 핥아주며 억지 세수를 시키는 우솜돌이 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일 독방을 쓰게 된다면 그들을 해바라기하는 우솜돌의 정서에도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물그릇을 함께 써도 안 되고 환자의 소변을 아이들이 밟아서도 안 된다니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번거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내 선택에 따라 아이들에게 특히 환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한다면 항암을 선택할 것인지, 호스피스로 방향을 잡을 것인지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다. 수의사는 지금 항암을 한다는 것이 결과의 차이에서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모를 갑작스러운 염증이나 쇼크와 같은 응급 사태를 예방해야 한다. 또 몸의 통증보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호흡 곤란이다. 만일에 대비해 산소방을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산소방’이라고 적는다. 부지런히 적으면서도 허탈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완전한 절망 속에서 그나마 더 나은 무엇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 맞지 않는 조각을 억지로 끼우려하는 퍼즐판처럼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전기 충격을 가해도 도망가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실험개처럼 우솜돌의 질병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타인이 낸 생채기는 굳어 자국만 남긴다. 시간이 지나 더 이상 아프지 않으면 그것은 상처가 아니지 않을까? 언제나 그렇듯 내가 남긴 상처가 가장 통증이 심한 것 같다.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거나 더디 아문다. 나의 실수를 수용하는 것, 그런 나를 용서하는 것. 그것은 누구도 아닌 나의 몫이다. 나는 언제나 아주 뻔하게 실수를 반복했고 그렇게 아이들을 잃어왔다. 혈관육종을 앓던 부니는 심정지 상태에서 다시 살아났지만 병원 수의사들은 보호자인 나를 밀쳐내고 응급 처치에 온통 난리법석이었다. 더 나은 죽음을 돕기 위해 안락사를 결정할 수 있었던 사람은 보호자인 나 뿐이었다. 왜 그때 목소리 높여 '아이를 편하게 보내달라' 주장하지 못하고 한켠에 밀려난 채 바보 같이 울고만 있었을까? 응급 처치를 멈추고 당장 안락사를 해 달라고 왜 요구하지 못했는가 말이다. 게다 급성신부전이 온 고양이 귀얄이를 방치해 고통 속에 떠나게 했다. 허술한 울타리를 제대로 수리하지 않아 져비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심장에 좋다는 한약을 먹은지 하루 만에 심한 호흡곤란이 왔던 순돌이가 급작스럽게 떠났음에도 동네 수의사에게 처방한 약성분을 묻지 않았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우솜돌을 잘 보내줘야지. 그러려면 먼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한다.


몇 가지 위험과 아쉬움이 따르지만 암세포가 일으킬 문제를 조금이라도 방지하고자 항암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시 의사를 만났을 때 우솜돌은 이미 폐와 신장에 전이가 된 상태였다. 특히 신장으로 암세포들이 몰려들었다. 언젠가 시골에 사는 칠순 노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직은 꽤 젊다고 느껴지는 여성이었다. 몇 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환한 대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은 어두웠다. 거실에 켜 둔 티비의 파란 불빛만 광선처럼 쏟아졌고 화면 속에서는 북극의 빙하가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빙산은 조각칼에 잘려나가는 듯 분리됐다 다시 건물이 무너지는 것처럼 폭싹 주저앉기도 했다. 기이한 풍경이었다. 전이에 대한 검사 소견을 들었을 때 나는 몇 달 전 보았던 티비 속 빙산이 떠올랐다. 바깥으로 나가고만 싶었다. 병원 건물 앞에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가로수길을 봤고 우솜돌과 함께 그저 끝없이 걷고 싶었다.


항암이 시작되자 환자를 아이들과 분리하고 체온과 심박수를 잰 뒤 구토와 설사 횟수를 적어 넣기 시작했다. 수의사는 암환자는 잘 먹어야 한다며 단백질 함량은 높으나 지방 함량이 적은 사료의 성분을 분석해 식단의 변화와 간보호제를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 일주일 뒤에 다시 연락이 왔다. 우솜돌의 상태를 점검하는 도중에 구토나 설사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이매티닙을 제외하고 새롭게 처방을 해야 하는지 좀 더 관찰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수의사는 항암을 선택한 나를 격려했고 자신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파트너이자 항암 과정의 동등한 책임자로서 자격을 부여하려는 듯 했다.


우솜돌이 얼마 살지 못했기에 나와 우솜돌은 수의사를 몇 번 만나지 못했다. 짧은 기간 동안 그는 보호자인 나와 함께 의논했고 선택할 권리를 주었다. 선택할 권리라기보다 고민할 시간을 주는 듯 했다. 약 하나를 빼거나 더하려 할 때조차 나의 의견을 들은 뒤 처방을 결정했다. 아마도 보호자의 말에 촉을 세우고 최상의 대안을 만들어나가려는 듯 했다. 사실 나에게 의견이랄 것은 없었다. 궁금증만 늘어났을 뿐.


항암을 시작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날이었다. 그 동안 우솜돌이 조금씩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밥을 잘 먹지 않았으며 종종 토했기에 이러한 증상에 관해 의논을 하려던 참이었다. 마침 왼쪽 앞다리에 사마귀처럼 무엇인가가 돋아나면서 조금씩 커져가는 바람에 검진을 하기로 했다. 검진이 끝나고 문을 다시 열고 들어섰을 때 수의사의 얼굴에 처음으로 예의 그 산뜻함이 사라져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의 얼굴빛은 침침했다. 검사 결과 단순한 종기가 아닌 암세포가 만든 돌기였다. 수의사는 비틀거리는 원인이 뼈에까지 암이 전이되어 나타나는 증상이 아닌지 의심했다. 다른 검사를 할 필요조차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온 몸에 암이 전이된 것이다.


빠르게 이별이 다가왔다. 권장한 것은 아니지만 의사는 안락사를 언급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환영처럼 파란 빙산이 떠올랐다. 그 거대한 빙산은 녹아 사라져 바다로 흘러들어갔겠지.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항암에 쓰이는 약물이며 보조제 성분이며 활자를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띄엄띄엄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솜돌은 서둘러 떠나려 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말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참았던 눈물이 솟았다. 나는 갑자기 녹아내리는 빙산처럼 무너졌다. 이제 우솜돌은 수액을 맞아야 할 시간이다. 심한 것은 아니지만 탈수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황망한 마음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의사도 따라 일어서는가 싶었는데 책상 앞에서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눈가를 훔쳤다. 나즈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눈물이 나네요."


메이져 아르카나의 마법사는 언어의 영역 안에 있다. 마법사는 읽고 쓰고 말하기의 모든 상징이다. 언어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을 학습하기 때문에 작가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물, 불, 공기, 흙의 네 원소를 모두 활용하기에 그는 인간 신체의 일부인 '손'을 사용하는 특정한 분야의 기술자이다. 또 사고와 논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마법사의 공기 원소는 가끔 합리적이지 않은 것들 즉 감정이라 일컫어지는 물을 배제하기도 한다. 마법사의 행성은 건조하기로 유명한 수은의 별, 수성이고 수성이 지배하는 처녀자리와 쌍둥이자리는 감정이나 직관보다는 사고와 안정을 토대로 움직이는 사인이다.(참고로 처녀자리의 원소는 흙이며 가부장제의 '처녀막'이나 '순결'을 뜻하는 의미가 아니다)하지만 공기의 속성 상 심리를 나타내는 물과 영적인 활기를 상징하는 불의 작용이 없다면 공기는 탄생하지 못한다. 확장된 공기 즉 구름이나 바람은 원래 소극적인 성질이어서 물과 불의 작용이 없다면 정체될 수 밖에 없다. 구름은 태양이 달군 바다를 고향으로 삼고 있다. 수증기 곧 기체는 물과 불의 작용으로 확장되어 구름을 만들며 다시 흙 위에 비를 뿌린다. 우솜돌에게 다정히 손을 얹은 채 젊은 마법사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우솜돌이 대략 보름 동안 밥을 먹지 않았을 때 나는 불안 때문에 아이를 자꾸만 병원에 데려가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관성을 다독거리고 있었다. 주치의에게서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외로웠다. 남은 것은 불명확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생명이 시들어가는 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나와의 싸움. 그것만이 시간을 내 계획대로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주치의는 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거의 마무리한 셈이다. 나 스스로 버텨내야 한다. 흐름을 거스르며 아이를 힘들게 하지 말자. 내가 해야 할 일은 걷지 못하는 우솜돌을 쌩돌이에 태우고 풀과 햇볕과 바람 냄새가 나는 곳에서 조심스레 산책을 하는 것이다. 말라버린 콧구멍 속으로 축축한 숨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며 더 많이 눈을 맞추어주고, 더 많은 미소와 더 많은 격려를.


얼마 뒤 우솜돌의 시계가 마침내 한 바퀴를 돌았을 때 하염없이 울고 있던 내게 주치의는 물었다. 눈을 그대로 놔둘 것인지, 감겨 줄 것인지를. 감긴다면 혹시 화학 약품을 쓰는지 물었다.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기도 했지만 접착제로 감겨진 우솜돌의 눈을 생각하니 별안간 웃음이 나기도 했다. 나는 뜬 눈 그대로를 부탁했다. 상자가 도착했다. 우리는 헤어지며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계약은 사람 사이에서 흔한 거래 방식이다. 거래하는 두 사람이 동시에 얻고 동시에 잃는 것이 계약의 성질이다. 황도대의 일곱번째 집을 흔히 계약의 방, 파트너의 방이라고 지칭한다. 7하우스는 주로 일대일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계약을 뜻하는데,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거나 회사 동료와 일할 때처럼 일정한 목적을 위해 약속하고 협조하는 누군가들을 가리켰다. 결혼 제도 또한 계약의 의미가 강해 배우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내 사례에서는 언제나 전자였다. 언젠가 수의사가 눈물을 보이던 날 새벽 내가 굴린 몇 개의 구슬은 7하우스를 가리켰고 눈물과 희생의 별자리인 물고기자리에 멈춘 해왕성은 행복해 보였다.

집에 돌아오자 노인들보다 더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내가 소망하는 상상 속 아바타는 머리털이 완전히 허옇게 센 우솜돌의 다정한 '하무이'였다. 우솜돌을 상자에서 안아 올리다 충격과 움직임을 흡수하기 위해 정성스레 말아놓은 흰 패드를 봤다. 아이와 보호자를 위해 애쓴 주치의와 젊은 동료 의사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패드에서 라벤더 냄새가 났다. 라벤더는 고통을 다스리는 신비한 힘이 있어 숙면을 돕는다고 전해진다. 잠은 또 다른 죽음이고 죽음의 공간은 물질인 우리를 묶어놓았던 중력이 사라져 안과 밖, 너와 나의 경계가 뭉그러져 차이가 없는 신비한 우주 공간과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계약은 끝났다. 모든 과정이 더할 나위 없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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