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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지타 Oct 13. 2024

오늘은 밝음

밝음이가 사라졌다. 수술을 마친 우솜돌을 데려오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밝음이는 오년째 우리집에서 밥을 먹는 삼색이 고양이다. 처음에는 동네 맛집을 찾아냈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단골 식당을 놔두고 다른 가게를 이렇게나 오랫동안 찾을 리 없다. 밝음이는 나름 신념이 강한 고양이였다. 평소에 녀석을 꾸준히 봐온 터라 우리끼리 암묵적으로 통하는 ‘의리’란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솜돌이 밝음이를 침입자라 생각해 담장까지 달려가 쫓아낸 적이 있지만 그런 일로 삐질 아이도 아니었다. 게다 우솜돌마저 수술을 한 상태라 천적 없는 마당은 고양이들의 낙원이다. 


꼬마였던 밝음이가 어린 삼색이였을 때 우리집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들은 밝음이를 포함해 모두 여섯 아이였다. 놀숲, 짭얄이, 누돼, 탁구, 고니가 그 아이들이다. 그 중 몸이 유난히 약하고 아팠던 탁구는 가족이 되어 남편이 사는 아파트로 떠났다. 나머지 밥동무 아이들만 여전히 우리집으로 밥을 먹으러 온다. 시에서 진행하는 중성화 수술도 받아 뚱냥이들이 다 됐다. 야산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우리집은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난방유를 실은 주유차가 미끄러져 배달도 끊기는데, 이 뚱냥이들만은 일렬로 줄을 서서 빚이라도 받아내려는 사채업자들처럼 궁둥짝을 흔들며 당당하게 올라온다.  


밝게 빛나는 커다란 호박색눈을 가진 꽤나 새침한 밝음이. 어린 시절부터 나만 보면 항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거리를 두곤 했는데, 그것이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다. 고양이 눈이 워낙 똥눈이라는 설도 있지만 인간들 중에는 길고양이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 있는 반면 무서운 마음을 품고 접근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을 제외하고도 밝음이가 특별히 마음에 걸렸던 점은 연애를 자주, 그것도 아주 ‘못’ 했다는 것이다. 수컷 고양이들에게 너무 쉽게 사랑을 허락하는 편이어서 될 수 있으면 빨리 중성화 수술을 진행하고 싶었다. 길고양이들이 새끼를 낳으면 살아남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먹이가 부족해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새끼들이 성장해도 문제다. 내가 제공해야 사료며 중성화 수술 비용이며 다치거나 질병을 앓을 경우를 대비해 포획하고 치료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겁이 더럭 났다.      


아니나다를까. 작년 초봄에도 여전히 추운 날이 지속되었는데, 부비동염을 앓아 콧물과 재채기가 잦았던 밝음이가 우리집 부엌문 앞에다 그만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두 번째 출산이었지만 당황한 엄마는 새끼를 입에서 떨어뜨리다 주워물고 다시 또 떨어뜨리다 주워물며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놀숲은 지붕 처마 밑에, 짭얄이는 대숲에서 몰래 출산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새끼들은 밝은 대낮, 밝은 공간에 위험천만하게 놓여졌다. 갑작스럽게 진통이 와서 출산한 정황이 짐작됐지만 밝음이가 영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남은 한 녀석은 어미가 돌아오지 않자 나와 남편이 구조했다. 


다음 날 아침 밝음이는 나를 보자마자 앵앵거리며 담장을 넘어 왔는데 입에 물고 있던 새끼를 내려놓았다. 새끼는 축 처져있었다. 아기를 살리고 싶은데 당장 떠오른 사람이 나 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분명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새끼는 죽은 듯 보여 뒷산에 묻었다. 그래, 죽은 듯 보였다.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죽은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뒤 생각해보니 살짝 드러난 혓바닥이 여전히 분홍빛이었던 것으로 보아 저체온증으로 잠깐 기절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진실의 저울은 살아있던 것이 분명하다로 기울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며 은근슬쩍 밝음이를 비난했던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백하자면 내 무의식 속에는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강박이야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평범한 캣맘들에게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무의식은 위험을 감지하고 생명을 살리려 하는 나의 촉을 무디게 해서 빠른 시간 안에 아이를 묻도록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나 또한 경험이 부족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싶었으나 추위에 떨며 어린 새끼를 살리려 잠을 못이루었을 밝음이를 생각하니 갑자기 시야가 어둑해지며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단 한 번만이라도 방 안으로 들여 몸을 따뜻하게 해 준 뒤 숨을 쉬는지 확인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심장이 뛰고 있지 않다는 무모한 판단은 왜 그리 빠른 것일까? 단지 길에서 사는 떠돌이 고양이 새끼라는 이유만으로 소중하게 대하지 않은 것일까? 새끼가 늘어나면 사료비가 두 배로 뛸까 두려움이 들었던 거야? 왜 늘 우유부단하거나 신중하지 못하게 행동하는 것이냐. 고양이는 모성이 강한 동물인데 나를 믿고 아이를 맡겨준 밝음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더구나 부부가 함께 구조한, 안에 있는 새끼마저 온전히 돌보지 못했다. 단열이 부실한 우리집은 초봄에도 상당히 추운 단독주택이었다. 유리병에 뜨거운 물을 넣고 수건으로 감싸 작은 종이 상자 안에 넣은 채 계속 초유를 먹였다. 새끼는 움짤거리며 상자 안에서 부지런히 엄마품과 젖을 찾았다. 상자 바닥에 깔아줄 작은 전기담요라도 사야 했지만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퇴근하고 난 뒤 상자를 들여다보는 순간 새끼가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힘 없이 쳐져 있었고 설사를 한 상태였다. 저체온증이었다. 당황한 나는 항시 가는 병원으로 달렸지만 대략 30분이 걸렸고 의사가 처치하는 도중에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어리석음은 타고 난 것인가. 갓난쟁이 고양이는 오늘 처음 스스로의 힘으로 힘껏 초유를 빨며 배를 둥실둥실 불렸단 말이다. 왜 즉각 체온을 올릴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만 드는가? 







우솜돌이 회복하는 동안 밝음이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사라지기 전날 현관유리문 앞에서 밝음이가 잠시 쉬어가던 참이었다. 일요일이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밝음아,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모르겠네. 네 애기들 말야, 흰냥이들. 내 실수로 떠나게 했어.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할게.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 밝음이는 뒤를 한 번 돌아봤지만 무심한 그 표정과는 달리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나는 문을 닫은 채 마루에 앉았다. 밝음이와 나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아주 오랫동안 앉아 비 내리는 마당을 바라봤다.  


밝음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안 것은 밥동무 고양이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집단 감염이 일어난 것이다. 허피스 바이러스. 고양이들의 눈 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가 눈물에 젖어 퉁퉁 부어 있었다. 마침 상당히 많은 지역상품권이 들어왔던 터라 항생제와 생선이 들어간 주식캔을 구해 긴급 진화에 나섰다. 면역력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부비동염을 앓고 있는 밝음이가 일주일 넘게 모습을 감춘 것은 바이러스 감염과 긴밀한 연관이 있어 보였다. 


토요일은 쉬는 날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운이 좋은 날이기도 했다. 익숙한 색. 아름다운 주홍빛과 선명한 검은빛 그리고 흰 코트. 사라졌던 밝음이가 마당에 드러누워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왠걸. 누군가가 쓰다 버린 헝겊처럼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눈가가 빨갛게 부어 있는 것으로 보아 비염이 심해졌나보다. 냄새를 맡지 못하거나 입 안이 헐어 밥을 먹을 수가 없었을테고, 그루밍조차 할 수 없어 털이 엉켜 있는 것이다. 나는 남은 생선캔을 찾아 헤맸지만 왠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초조했다. 작년 가을에는 집마당에 들어온 큰 뱀을 잡아줘 ‘용감한 동네냥’ 시상식을 열고 참치덩어리를 줬다. 자신의 아이들을 잃게 사람이 나인지도 모른 뱀까지 잡아줬던 밝음이. 뱀은 똬리를 틀고 계속해서 공격적이었는데 밝음이는 여유를 부리며 계속 '냥펀치'를 날렸다. 이 광경을 목격한 나는 놀란 나머지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느라 빠진 틀니를 입으로 밀어넣는 할머니처럼 정신없이 우물거리며 119 대원에게 호소했다. "배애미... 들어와서..들어왔어서... 빨리 오세요.""신고자분, 신고자분,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나의 영웅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반드시 약을 먹여야 한다. 


나는 전속력으로 쌩돌이를 몰아 캔을 구하러 펫매장을 찾았다. 도착한 매장은 부부가 운영하는 듯했다. 캔을 몽땅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갑자기 심기가 거슬렸다. 남편인 듯 보이는 사내가 자신의 반려견을 향해 “앉아, 앉으라니까!”라며 거의 협박하는 말투로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요즘에는 병원이든 펫숍이든 입구에 들어서기만 하면 개나 고양이가 사람을 맞는다. 집사가 가게 사장인데 아이를 집에 놔둘 없어 가게에 데려왔고 적응을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낯선 사람들과 계속 접촉해야 하는 동물들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개나 고양이들은 손님들의 재미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전시해두는 장난감 같아 비위가 거슬린다. 이들은 신장개업한 주유소 앞에서 춤추는 풍선인형 같은 존재다. 나는 동물을 이용해 돈을 버는 장사치들이 정말이지 싫었다. 시급히 치료를 해야 하는 밝음이를 놔두고 J시로 건너가 동물을 전시하지 않는 펫숍을 찾기로 했다. 밝음이를 위해 당장 캔을 사야 했겄만 엉뚱한 용기에 발동을 건 나는 간만에 찾아온 행운을 날려버리고 있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나를 볼 때면 내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남들은 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거나, 타인보다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렇다. 남들보다 타이핑이 빠르다거나 내 소신에 따라 "아니오!"라고 말하는 용기를 발휘하는 일 따위 말이다. 그날도 그랬다. 나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신념이 있고 불매를 통해 무식한 가게 주인들을 응징하고 싶었던 것이다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시간이 길어질수록 밝음이는 나를 오래 기다릴 것이고 그의 이름은 점점 '어둠이'가 될 것이다. 가잖아도 그곳에서 캔을 샀어야 했다. 두 시간을 낭비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밝음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밥동무 아이들이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담장 위에 올라가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는 밝음이를 보고나서야 아차 싶었다. 그의 몸짓에는 친구들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친구들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혼자 있을 시간을 기다려 밝음이가 나타났다는 것을. 아픈 몸을 이끌고 도움을 구하러 왔는데 보자마자 차를 타고 쌩 사라졌던 나. 나는 서둘러 ‘캔따개’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항생제를 탄 생선살을 그릇에 담아 담장 위에 올려놓았는데 밝음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산책을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다 얼핏 담장을 봤을 때 밝음이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릇에 입도 대지 않고. 


나는 밝음이를 기다렸다. 시간이 아주 더디게 느껴졌다. ‘밝음이는 죽었다’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땅굴 속 두더지처럼  여기저기 솟아날 때마다 망치로 힘껏 때려야만 했다. 우솜돌의 항암을 결정하는 기간이기도 했기에 복잡해지는 마음이었지만 밝음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밝음이가 대이파리가 쌓인 낙엽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드는지, 동네 주민의 헛간에서 몰래 숨어사는지 그것조차 몰랐다. 도대체 밥동무 아이들은 어디에서 잠을 자는 걸까. 쓰레기 소각을 법으로 금지했지만 시골 노인들은 여전히 비닐이며 심지어는 깡통까지 태운다. 굴뚝이 달린 화덕이 집집마다 놓여져 있어 겨울밤이면 고양이들은 그곳에 숨어든다. 이튿날 아침에는 철야한 광부들처럼 온 몸에 검댕을 묻힌 채 밥을 먹으러 오기도 한다. 


고양이가 사라져 찾고 있다며 양해를 구하고 몇몇 이웃집을 방문했다.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거둬 장례라도 치뤄줄 셈이었다. 하지만 내가 짐작했던 공간에 밝음이는 없었다. 샅샅이 훑어보면 훑어볼수록  틈이라는 것이 없었다. 보일러문은 굳게 닫혀져 있고 화덕 또한 나무판자로 막아놨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잠을 자고 나에게 오는 걸까? 돈을 모아 창고라도 지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만 더 스산해졌다. 길고양이들에게 내어줄 따뜻한 한 평의 공간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보름이 가까워졌다. 우솜돌의 항암을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밝음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는 게 답답할 때 자주 하는 버릇은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은 달이 어떤 별자리에 걸려 있는지 살펴보거나 뒷산에 올라 찾기쉬운 오리온이나 카시오페이아 주변의 별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북극성이 머리 위에서 빛날 때면 까마득한 과거의 시간을 안고 도착한 이 별빛이 지금 현재의 밝음이를 환하게 비추어주길 염원한다. 조명탄처럼 말이다. 밝음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고만 싶었다. 바다의 날, 하늘의 날이 있듯 매일 시작하고 저물며 반복되는 오늘이 밝음이의 날인 것처럼. 나머지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불교에 매력을 느끼며 집단무의식을 연구한 융의 철학에 관심이 있고 도깨비나 요정을 믿으며 사물에 전기자극을 가하거나 영혼을 불어넣으면 그것 또한 생명력을 갖는다는 프랑켄슈타인주의자 아니, 아니다. 통틀어 정령론자다. 기도를 하다보니 애타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저 밝음이가 어려움을 잘 견디어주기를 바라거나 지구라는 흙의 세계를 떠났다면 바람처럼 자유롭게 원하는 곳으로 훨훨 날아가기를 바랐다.   


아침 햇살이 밝고 부드러운 4월 중순이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부엌 문턱에 두 발을 올리며 누군가가 앵앵 자지러지게 울었다. 놀랍게도 밝음이었다. 이게 어찌 된 건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살아 있었구나! “나 많이 아팠어! 나 너무 힘들었어." 아이는 분명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돌아왔다는 기쁨과 더불어 재빨리 항생제를 먹이라는 대뇌의 명령에 따라 서둘러 캔을 땄다. 우솜돌을 비롯한 아이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방에서 우르르 나와 통창을 통해 밝음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참치덩이를 할짝거리는 밝음이 얼굴을 확인하니 엉망이었다. 프로에게 두들겨 맞은 아마츄어 복서 같았다. 피딱지가 엉겨붙은 눈은 간신히 뜨고 있었고 온 얼굴이 퉁퉁 부었다. 그래도 우리가 함께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살아있다는 것은 이렇게나 좋은 것이다. 그날부터 밝음이는 빠짐없이 밥자리에 출석했다. 연말에 개근상을 타지 못하겠지만 병력을 인정해 크리스마스에는 가다랑어 츄르를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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