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새벽 3시였다. 거의 정확했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불을 켤 수가 없었다. 쿠싱을 앓고 있는 두부는 늘 밤에 깨어 있다. 내가 불을 켜려고 일어서는 순간 잠 못 드는 두부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 모두가 깬다.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라도 켜면 내가 움직이는 소리와 액정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녀석들은 여기저기 고개를 치켜들 것이다. 누구보다 우솜돌이 아프다. 아픈 환자를 깨우면 안 된다. 나는 동굴에 달라붙은 박쥐처럼 웅크린 채 어둠 속에서 눈만 말똥거린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건 결박이잖아. 괴로운 마음에서 벗어나려 책이라도 읽고 싶다. 하지만 불을 켜면 아이들도 눈을 켜겠지. 잠만큼 몸에 좋은 게 어딨다고. 안 될 말이다.
우솜돌은 3년 전 유선종양에 걸려 유선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조직 검사를 했는데 악성이었다. 항암을 할 것인지, 추적 관찰을 할 것인지 모호한 상황에서 추적 관찰을 선택했다. 일정한 기간 동안 폐사진을 찍으며 전이 여부를 추적하는 것이다. 왜 항암을 선택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돈 때문이었을 것이다. 항암은 돈이 많이 든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고통스러운 항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선택은 추적관찰이었다. 물론 동네병원 의사의 권유가 핵심이었다. 2년 동안 6개월마다 폐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1년을 남겨두었을 때 우솜돌에게서 ‘헛구역질' 증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의사는 폐가 깨끗하다고 했다. 심장이 비대해져 헛구역질이 나타나는 증상 같다고 말했다. 다음 번 폐사진이 마지막이 될 것이고, 이번에도 별 문제가 없다면 추적관찰은 종료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완치를 의미했다. 물론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비와 지식에 근거해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5월에 폐사진을 촬영했는데 종료 시점인 10월에 마지막 사진을 촬영하지 못했다. 내 실수였다. 사는 게 바빴던가. 아니다. 잊을 게 따로 있지. 안일했다. 아니, 언제나 환상처럼 떠도는 직업에 대한 고민 속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마칠 무렵이었다. 처음부터 유선종양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거나 정보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의사의 추천에 따라 추적검사를 했지만 어떤 문제가 닥치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잘 되겠지라며 방심하다 뒷통수를 얻어 맞는다. 헛구역질이 심해졌고 심장이 비대하다는 의사의 말만 믿었던, 아니 믿고 싶어했던 나는 지난 몇 년 동안의 내 모습과 직면했다. 아이는 폐에 달라붙은 암덩어리가 너무 커져 삶의 막바지에 와 있었다. 그 순간 유체이탈하듯 지금까지 나를 이루고 있는 내 모습이란 것을 확연히 보고야 말았다. 나를 이루는 모든 물질적인 것들 즉 눈, 코, 입, 손과 발을 포함한 심지어 내 영혼까지 샅샅이 한 눈에 살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 대한 이미지는 뇌가 없이 무거운 몸만 가진 기이한 생명체처럼 다가왔는데 몹시 혐오스러웠고 그 이미지마저 마침내 붕괴했다.
나란 사람은 무엇인가. 사실 알고 보면 꽤 괜찮은 사람, 우솜돌과 아이들을 사랑하며 길고양이들의 중성화에 애썼고, 동물단체와 영아원에 적은 금액이나마 기부를 하며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진보적인 개념이라 여기는 사회 평등이나 정의에 관심이 있고..그래서 뭘 어쨌다는 것인가. 우솜돌이 폐암에 걸렸는데 그것도 모른 채, 아니 폐암 말기가 되도록 아이에 대해 철저히 무심했던 이 빌어먹을 인간아. 너는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다. 오로지 너 자신에게 취해 그저 현실과 이상 사이를 왔다갔다 넋이 빠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떴다 마른 입 안을 느끼며 한탄하다 절벽에서 떨어지듯 새벽녘에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솔직히 너무나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이라도 끊고 싶었다. 어떠한 자격도 없는 바보천치에게 스며든 우솜돌이 불쌍했다. 그 아이는 아주 오랫동안 질병의 신호를 보내왔단 말이다! 잦은 기침과 불규칙한 호흡, 산책할 때마다 주저 앉는 행동을 단순히 심장이 비대한 노령견이라 착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폐가 나빠지면 심장에 문제가 생긴다는 기초적인 상식조차 몰랐다. 또 우솜돌은 악성유선종양을 앓았던 과거 이력이 있지 않은가.
저승사자가 아이를 뺏기 위해 속임수를 쓰기 가장 좋은 상대는 나처럼 멍청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곤죽이 되도록 내 뺨을 때리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 머릿 속은 자아분열에 가까울만큼 미래에 가 있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문성을 갖춘 무엇. 전문성이란 안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상담이나 사회복지 따위를 공부하며 아주 오랫동안 헤맸다. 헤매는만큼 아이들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한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자 우솜돌과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죄책감 때문에 눈꺼풀이 자동으로 닫혔다.
수술을 받기 전인 3월 말에 항암으로 유명한 동물병원 두 곳에서 의사들을 만났다. 프로필만 보아도, 어디에 내놔도 임상 경험이 많은 의사들이었다. 그들은 수술 뒤 최장 6개월 생존을 이야기했다. 그것도 항암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 6개월을 살 수 있다. 항암을 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을 장담할 수 없다. 빠른 시간 내에 수술도 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분명한 것은 우솜돌이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고통의 완화다. 고통이 완화되지 않는 항암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항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조직 검사를 담당했던 로컬병원의 한 의사는 수술 이후 항암의 장점과 부작용을 이야기했다. 나는 부작용을 우려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항암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이 무엇이든지 보호자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에요. 죄책감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항암을 하지 않아도 아이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곧바로 최선을 다해 처치를 해 드릴 겁니다.”그는 내가 사는 지역에서 꽤 유명한 병원의 노련한 수의사였다. 감동적인 말이었지만 나는 그가 왠지 보호자 상담과 관련한 세미나에 지금 막 다녀온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가질 정도로 내 감각은 충격으로 마비되어 있었다.
이 모든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솜돌을 남편에게 보내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아이들의 죽음을 겪을 수 없다. 과거에 혼자서 여러 아이들의 질병에 부딪혔고 긴 시간을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목격한 터라 내게도 치료할 수 없는 상흔이라는 것이 있다. 5년 전 혈관육종을 앓아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던 부니는 병원에서 수혈 도중에 심정지가 왔다. 심폐소생술로 살아났지만 그것은 커다란 불행이었다. 뇌를 다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물기 없이 끈적하게 멀어버린 부니의 회색눈에 자꾸만 먼지가 달라붙었다. 우는 내 목소리를 듣고 힘겹게 고개를 돌리던 부니 얼굴이 떠오른다.
부니가 떠난 뒤 나는 개에게 진행하는 수혈이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 피를 뽑기 위해 공혈견 아이까지 희생시켰다는 사실은 부니의 죽음과 함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왜! 왜! 나에게 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더 이상 안 된다. 못 한다. 고통을 인내할 자신감도 죄책감을 떨쳐버릴 용기도 없었다. 죽어가는 시한부 아이를 돌볼 기력은 커녕 죽어가는 아이 얼굴을 바라볼 자신도 없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무능하다! 아이들을 책임지는 삶을 살겠다는 내 각오는 곧장 나를 연민하는 태도로 바뀌었다. 나는 우솜돌 대신 나를 선택했고, 결국 우솜돌은 내가 사는 지역과 멀리 떨어진 Y시에서 홀로 수술과 통증을 견뎠다.
가끔씩 생각난다. 그 날 말이다. 퇴원하는 날. 3백 80만원이 넘는 의료비가 나왔다. 지금까지 조직 검사비와 의료비를 합하면 우솜돌에게 들어간 비용은 더 많아질 것이다. 펫산업이 10조원을 향해 달리고 있고 반려견 인구가 천만을 넘는다는데, 반려가족을 위한 의료보험제도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금을 낼테니 제발 사회보험을 만들어 달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항암이니 뭐니 몇 개월을 더 살 수 있다는 의사의 말 또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모르고 싶었다. 더는 아무 것도. 우린 그저 걷는 거다. 벚꽃이 만발한 대우아파트 앞 강둑을 나와 우솜돌은 함께 걸었다. 정오를 넘긴 시각이었다. 벚나무 그늘 아래에서 김밥을 먹으며 우솜돌을 보았을 때 무언가를 먹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는 많이 아파보였다. 등에 마약 패치를 붙인 채. 그러한 그를 두고 홀연히 떠나왔다. 나머지 아이들이 집에서 기다린다는 핑계로.
우솜돌은 할무니가 잠시 나갔다 돌아오겠거니 계속 기다린 모양이다. 돌아오지 않자 오후 8시부터 자정이 넘도록 울었다. 아팠을텐데 많이도 울었다. 대여섯 시간을 내내 우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울다가 지쳐 까무라칠 것이다. 그 울음은 '할무니 보고 싶어, 네 곁에 있고 싶어'였다. 동물행동학자들이 “이봐, 착각하지 마. 분리불안은 사랑이 아니야! 정신질환이야! 애한테 약이라도 멕여!” 이렇게 힐난한다면 손가락을 입에 대고 "뚝!"이라고 말할 것이다. 남편의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우솜돌의 하울링은 '할무니 어딨어'가 분명해 보였다. 울음 때문에 남편이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민원이 들어올까봐 우솜돌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아파트를 강제로 나와야만 했다.
해인사 톨게이트에서 우솜돌을 인계 받았을 때 목에서 쇳소리가 났다. 도대체 얼마나 울었던 거야? 어휴, 몸도 안 좋을텐데. 우유 거품이 들어간 카푸치노라도 마신 듯 입술은 하얗게 부르텄다. “길라임이냐? 뽀뽀라도 해 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하기를 바랬지만 마음이 아팠다.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억지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안다. 물이 거꾸로 흐를 수 있을까? 우솜돌은 내게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의 죽음을 품을 수 밖에 없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새벽녘에 집에 도착한 뒤 우솜돌은 아이들의 마중 속에서 '우우' 소리를 내며 자신의 체취가 묻은 방석으로 걸어들어가 납작 엎드려 울음을 멈추고 아주 긴 잠에 빠져들었다.
지구의 위성은 달이다. 목성과 토성에도 제 각각 위성이 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태양빛을 반사시키는 위성이라 하지만 나는 달처럼 아름다운 위성을 본 적이 없다. 지구의 유일무이한 위성이라는 점에서도 사랑스럽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은 대략 한 달 남짓이다. 삭망월은 달의 모양이 변하는 모습에 따라 한 달 기준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점성학에서 달은 바쁘게 지구를 돌보는 엄마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기도 하고 내면의 변화를 달의 모양으로 빗대기도 한다. 태양의 길을 따르는 황도대에 놓인 12궁 자리에서 달은 4하우스 즉 집과 가족을 다스린다. 타로에서 달은 메이져 2번 고위여사제와 메이져 18번 달로 나뉜다. 2번 고위여사제가 모든 존재를 침착한 태도로 지혜롭게 길을 이끌어주는 존재라면 18번 달은 정반대다. 그것은 마법사의 달 그것도 매우 위험한 달이다. 그의 마법에는 바다가 담겨져 있다. 달은 바다의 본능을 꾀어낸다. 잔잔해보이는 파도를 만들어 움직임을 만들고 나아감과 물러남을 지시한다. 지구의 생명들은 소리를 지르고 동요한다.
달이 일으킨 격정적인 밀물과 썰물이 나의 내부를 강타했다. 오랫동안 가라앉아 있던 무의식에서 온갖 부유물들이 섞였다. 그 부유물은 모두 칙칙하고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묻어버리고 싶어 하는 나, 지식과 경험의 기술을 가진 의사에게 압도당하는 나, 평소 부당한 일을 당했음에도 항의하지 못하는 나, 나란 존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 골치 아픈 문제를 회피하고 싶어하는 나,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 고통이 무섭고 죽음이 두려운 나, 헤어짐만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나, 맹목적으로 실력이라는 권력을 갖고 싶어하는 나, 보호자로서 너무나 게으르고 허약한 나를 보았다. 무의식의 바다는 완벽한 혼란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달은 내면의 진실을 직시하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지구라는 물질 즉 신체를 돌보는 이 아름다운 달은 내면의 쓰라린 상처도 치유한다. 18번 달 카드에는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집단무의식, 다른 의미로 서술하면 고대인들, 더 멀리 나아가면 원시 조상들의 경험과 지혜가 들어 있다. 뇌의 힘과 집단의 힘을 뭉쳐 야생이 가져오는 공포와 싸워 이겨야만 했던 그들의 지혜는 일종의 제안과 같다. '인간은 모두 똑같아. 원래 나약하고 원래 불안해. 너처럼 기억하기 싫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를 바라본다는 것 또한 공포일 수도 있어. 자, 숨겨진 나를 알게 됐으니 이제 변화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겠는가?'
집으로 들어설 때 달을 보았던 거 같은데...보름을 지난 달이었던가. 기우는 달은 어떤 형태로든 과정이 아닌 결과에 가까운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했다. 우솜돌 곁에 비로소 드러눕자 파랗게 동이 트려했다. 미안해, 우솜돌. 이제 나는 너와 함께 할거야. 우리가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거야. 깊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어. 나도 네 곁에 있고 싶어, 지금처럼. 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새벽이었다. 우솜돌이 잠든 방석에서는 약간의 꼬린내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