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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지타 Sep 15. 2024

악마에게 줄 파이는 없어

우솜돌이 태어났을 때 좀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치가 컸다. 동생 까비뇽도 나중에 태어났으나 우솜돌이 훨씬 우세했다. 동생의 영양분까지 쪽쪽 빨아먹은 걸까. 게다 남동생 루나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근친교배 탓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신체와 인지에 장애가 생길 것만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동생 까비뇽은 혀가 너무 길어 항시 혀를 내밀고 다녔다. 혀가 취약한 상태여서 어린 시절부터 까비뇽은 두려움이 많았다. 이 아이는 소리와 형태에 민감해 물을 먹다가도 물그릇에 자신이 비치거나 주변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면 자지러지게 놀라 도망친다. 물그릇을 사기로 바꿔주었더니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말이다. 


우솜돌은 자라면서 조금 독특한 외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흰 바탕에 검거나 회색 점박이 무늬가 깔려 어지러웠다. 검은 시츄 할머니를 둔 덕분에 먼 이웃나라에 사는 삐족빼족한 달마시안과 거의 동급의 코트를 입게 된 것이다. 하지만 털이 웃자라게 되면 평범한 점박이가 되어 버린다. 점박이 우솜돌은 여자 아이지만 귀엽거나 예쁜 강아지가 아니었다. 사람으로 치면 ‘난닝구’만 입고 부채질을 하며 야구를 보는 펑퍼짐한 사십대 구멍 가게 주인 아저씨 같다. 길고 뾰족한 두상과 크고 구부정해 보이는 몸은 부드럽지만 간혹 뻣뻣한 털로 뒤덮여 있다. 작은 눈은 항시 무언가를 걱정하거나 염탐하는 듯한 눈빛을 보인다. 어쩔 땐 책상 아래 그늘에서 사랑을 가득 담아 나를 쳐다보곤 하는데 그럴 땐 까만 등에서 빛이 나는 곤충 같다. 무엇보다 발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우솜돌의 발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강아지발 같지 않았다. 발이 뭉툭하니 이상하게 커보였다. 어린이 시절부터 우솜돌은 개가 아닌 야생동물을 닮았다. 예를 들면 멧돼지?


저녁이 되면 아이들은 단독으로 사랑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어야만 했다. 연애 사고를 쳐 대가족을 이룬 원조 원흉 '뚜니'가 낳은 두 아이가 다른 집으로 입양되어 떠나는 바람에 사랑의 파이는 아홉 개로 줄었다. 한 아이가 심장발작을 일으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파이는 여덟개가 되었고 부피는 개체수가 줄어든만큼 더 커졌다. 가족이었기에 파이 한 조각을 가졌지만 우솜돌은 사실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아이가 아니었다. 끌어당기기는 커녕 할무니를 집 안에 영원히 유폐시키려 하는 음모론자이며 하울링으로 소란을 부추기는 난동꾼에 가까웠다. 


언젠가부터 나는 우솜돌과 눈이 마주치면 그의 눈빛에서 나의 표정과 마음을 읽어내려는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그 눈빛은 어린 시절보다 더욱 의뭉하고 미스터리해 보이기까지 했다. 모른 척 했지만 내 표정과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더 많은 파이를 달라고 내 앞에서  발라당 드러누워도 우솜돌은 가까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내 손길은 우솜돌에 가닿지 않았다. 가끔 포악하게 으르렁거리며 동생 까비뇽에게 달려들어 꼼짝 못하게 만든 뒤 얼굴을 핥아줄 때 나는 불쾌한 폭력성을 느꼈다. 우솜돌이 조폭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엄마인 다롱이에게는 언제나 정중하고 상냥했다. 개들이 단순하나마 감정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솜돌을 통해 느껴왔다. 오랫동안 인간과 지내왔기에 개는 인간의 감정을 습득할 수 밖에 없고 어쩌면 미래의 개들은 물리적으로도 인간과 더욱 가까워지기에 감정이 더 발달할 수 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우솜돌은 엄마 다롱이와 까비뇽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집 대장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듯 하다. 사실 다롱이와 까비마저 그런 역할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머지 아이들조차 우솜돌에게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우솜돌 혼자 있지도 않은 반장 선거에 나가려고 준비를 하는 모양새였다.  


우솜돌은 다른 아이들과 확연히 달랐다. 어찌나 성격이 급한지 산책을 마치고 대문 앞에서 차문을 열면 갑자기 의자에서 뛰어내리다 바닥에 턱을 찧어 상처를 입곤 했다. 현관 유리문이 그리 깨끗하지도 않은데 열려진 상태로 착각해 그대로 돌진하다 퉁 소리가 나도록 튕겨나가기도 한다. 산책 도중에 구멍이란 구멍은 다 찾아내 고개를 들이밀어야 직성이 풀린다. 한 번은 느티나무가 우거진 정자 구멍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온 얼굴에 거미줄을 달고 나왔다. 목욕을 좋아하지 않는 우솜돌은 물이 닿으면 슬슬 도망갈 궁리를 한다. 비누칠을 한 채계속 도망가려 하기에 허리라도 잡으려하면 10kg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선수는 어느새 대야를 엎고 잽싸게 빠져나가버린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발톱을 자르다 혈관을 건드려 피가 멈추지 않았는데, 지혈을 한 뒤 촘촘히 붕대를 감아 자리에 눕히고 얇은 이불을 덮어주자 사람처럼 계속 ‘으으응~’앓는 소리를 낸다. 마치 독감에 걸려 신열을 앓고 있는 환자를 흉내내는 것처럼 말이다. 


확실히 우솜돌은 지능이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솜돌 또한 다른 아이들처럼 재롱 컨테스트에 참여하게 됐는데 예쁘게 봐달라는 표정으로 엎드린 자세에서 한쪽 다리를 쭉 빼며 유혹하는 자세로 고개를 돌려 살포시 쳐다본다. 언제나 나만 쳐다보면 낑낑 걱정을 입에 달고 사는 우솜돌이라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 정도면 수백번 마음을 고쳐먹어 귀여운 편이라 해 두자. 공원에서 함께 걷다 우연히 만나는 개집사들이 있다. 자연스레 서로의 개에 관해 말이라도 섞을라치면 상대편 개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는 척 하다 갑자기 “왁!” 놀래킨다. 초면에 다정히 인사를 나눈 집사는 불쾌한 표정을 띄며 "개가 사납네요, 우리 개는 순한데!"라며 개를 안아 가버리곤 하는데, 집사의 등 뒤에다 대고 “아유, 죄송해요, 저희 개가 사회성이 부족해서요, 녜..”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또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내 짐작으로는 우솜돌이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아이들에게 장난을 치고 있는 셈인데 이 특유의 똥매너 때문에 숲이 아름다운 공원마저 피하게 됐다. 물론 마을 근처 강가를 찾아 아이들과 조용히 걷는 산책이 더 마음이 편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모든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그 시절에 조금 더 눈길이 가는 아이는 보늬였다. 우솜돌에게 이모가 되는 이 아이는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는 발레리나와 같다. 풀밭 사이를 뛰어다닐 때 보송보송 희거나 잿빛을 띄는 털은 바람에 여행을 떠나는 민들레 홀씨와 같다. 보늬는 적당히 긴 다리를 가진 민첩하고 아름다운 개였다. 명랑하고 순했지만 힘에서는 동생 다롱이에게 밀리지 않았다. 아주 어린 시절 다롱이의 엉덩이에 올라타는 마운팅을 마무리하고, 여자 아이들끼리 서열을 정했는데 우솜돌이 이 꼴을 참아넘기지 못했다. 서열은 보늬와 다롱이가 평화롭게 합의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엄마를 공격하는 줄 착각하고 내가 없는 사이에 보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다롱이도 가세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보늬의 털은 물어뜯겨 엉망이었다. 어느 날에는 피가 묻어났다. 보늬는 점점 위축되어 갔고 결국 서랍장과 벽 틈 속 아주 좁은 공간에 숨어 나오지 않았다. 


한 번은 내가 안방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솜돌과 다롱이 한패가 보늬를 공격했다. 아마도 내가 보늬를 쓰다듬으며 티비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보늬는 다롱이를 쉽게 제압했지만 우솜돌이 보늬의 꼬리를 힘껏 물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소리를 지르며 수건을 휘둘러 채찍처럼 사용했는데 틈을 노려 우솜돌을 떼어냈다. 떼어냈다기보다는 낚아챘다는 표현이 더 맞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방에 가둬버렸다. 그 시기에 셋을 뜯어말리느라 아주 폭싹 늙어버릴 지경이었다. 개통령에게 도움을 청할까 고민도 했다. 우리집 사정이 카메라에 훤히 담길 것만 같았다. 나 혼자 해결해보겠다는 심정으로 아무리 바빠도 빠짐없이 산책을 시켰다. 우솜돌은 산책을 몹시 즐거워했다. 학폭을 저지른 아이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특혜를 누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와 함께 걷는 중이었는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악마 새끼..." 내 입 속에서 불현듯 내갈긴 목소리에 신나게 걷던 우솜돌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입을 다물었지만 마음 속으로 뇌까렸다. '악마에게 줄 파이는 없어.' 


타로를 배운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반려견들의 생년 카드를 파악한 것이다. 우솜돌은 메이져 15번을 부여받았다. 가만 보자, 15번이라. 타로 선생님이 나눠주신 책자를 열어 15번을 찾았다. 아뿔싸.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이런, 악마라니.. 메이져 카드 중에서 가장 추하고 보기 싫은 카드가 악마 카드가 아닌가. 보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카드를 뒤집을 때마다 심장 약한 사람이라면 협심증을 일으킬 것만 같은 무서운 이미지의 카드였다. 염소 머리를 한 덩치 큰 털복숭이가 다리를 쩍 벌린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 악마 카드 말이다. 나는 적잖이 실망했다. 그런데 한편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스미스가 그린 악마의 모습이 우솜돌과 미묘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꺼림칙했다. 


악마 카드는 댠졀과 분리가 최우선이다. 이 카드는 신체적인 측면에서 갑상선과 같은 비교적 가벼운 질환에서부터 불치의 심각한 종양 즉 암이나 우울증, 중독, 만성 질병을 가리킨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대상을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하는 착란을 암시한다. 예를 들면 뱀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풀숲을 걷다 맞은편에 기다란 무언가가 땅에 놓여 있으면 꼼짝도 못한 채 얼어붙는 것과 같다. 용기를 내어 다가가보면 그저 누군가가 흘린 끈이었는데도 말이다.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신, 지배욕과 폭력성, 헛된 집착과 탐욕. 잘못된 환상과 오류 등 온갖 부정적인 의미들은 악마 카드 안에 몽땅 들어 있는 셈이다. 한 마디로 악마는 프로이트의 망나니 이드이며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다. 가학적인 성적 쾌락, 끝을 모르는 식탐, 배우지 말았어야 할 담배나 취해야만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술 등 인간 내부의 온갖 어두운 충동을 의미한다. 초보 타로쟁이는 우솜돌에 대한 편견을 키워만 갔다. 가족은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 가족 누군가의 에너지가 나의 에너지와 상충하거나 보완하면서 어우러진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수용적인 태도보다는 단절이 우선일 것이다. 보늬와의 다툼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우솜돌을 입양보내야만 한다. 


우솜돌이 쳐다보는 통에 뜨끔했지만 마저 산책 코스를 다 돌았다. 저녁에 돌아와 보늬와의 다툼을 해결할 지혜를 얻고자 타로 스프레드를 펼쳤다. 메이져 2번에 위치한 '고위여사제'가 나왔다. 지혜를 찾아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여사제, 악마는 분리와 단절이 최고의 해결 방법이다...? 문득 사제의 등 뒤에 병풍처럼 둘러진 석류에 눈이 갔다. 석류...에스트로겐...한 장을 더 뽑아야했지만 내 영감이 움직였다. 문득 타고난 기질 뿐만 아니라 호르몬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미치자 중성화수술을 결심했다. 늦은 수술이었다.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성공했다. 우솜돌의 공격성은 조금씩 사그라들었고 더 이상 보늬를 물지 않았다. 하지만 여섯 살이 넘도록 중성화수술을 하지 못한 우솜돌은 몇 년 뒤 위기에 처하게 된다. 중성화수술을 해주지 않으면 여자 아이인 경우 유선종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예방에 안일했다. 설마가 함께 사는 개를 잡는다.


우솜돌이 떠나버린 지금 예전에 가졌던 나의 부끄러운 생각이나 행동을 되돌이켜 회상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돈이 없었기에 중성화가 미뤄진 측면이 크다. 그 정도로 힘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왔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마땅히 해야 할 무엇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아이들은 늘 웃음을 주며 나와 놀기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었고 나 자신만을 바라봐야 했다. 나는 분명 인간이고 개들인 너희와는 다르다. 너희와는 소통할 수 없고 너희들은 그저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라고. 내가 싫어하는 단어이며 생명을 하대하는 듯한  '애완'의 시각조차 없었다. 지금은 공장에 다니지만 언젠가 나는, 나는 말이다, 나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그 무언가가 되려 노력하지도 않았고 언제나 상상 속에서 그 '무언가'를 쫓고 있었음에도. 내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 예를 들면 가난, 소음, 골치 아픈 문제들은 사라져야 한다. 특히 우솜돌, 너 말이다, 너! 


불안과 두려움이 많아지면 내게 일어난 문제를 정확히 바라볼 수 없다.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것이란 부정적인 예측은 걸어나가려 하는 사람을 주저앉힌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은 상상력을 포기하게 만든다. 미래는 암울할 뿐이라는. 계절은 변화하지만 삶은 변화하지 않고 그렇게 나는 헛되이 소멸할 것이라는 믿음. 연락해서 소통할 수 있는 친구들이 분명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이지 않는 우울증을 앓았다. 나 스스로가 염소 머리를 단 악마였던 것이다. 우솜돌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세상 만사가 귀찮아 아이들의 건강에 대한 돌봄조차 최소화하려 했다. 물론 개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사회다. 장시간 노동과 건강을 해치는 노동 환경, 의료비 지원 없는 반려견 제도. 하지만 그것을 알아야 했다. 더 빨리 알아야 했다. 지금의 나는 내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누구도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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