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저녁이었다.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시계를 보니 저녁 8시가 다가온다. 우솜돌을 차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집에 남은 네 아이들은 아마도 내일 만나게 될 터였다. 모든 문을 걸어잠궜다. 아이들 스스로 잠들어야 하는 밤이 되겠군. 우솜돌은 언제나 그렇듯 방석 위에 조용히 기대고 있다. 이 아이는 출발하자마자 눈을 꼬옥 감고 있는데, 장거리 여행이 얼마나 피곤한지 지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눈치다.
사위는 이미 어두워 풍경을 볼 수 없다. 검은 벨벳같은 아스팔트가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에 실린 원단처럼 부드럽게 밀려온다. 우솜돌은 내일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 것이다. ㅁ시 근처 병원에 예약을 잡아뒀다. 온라인 카페에서 알아보니 종양 수술이나 항암으로 이름이 조금 알려진 병원이다. 밤의 아스팔트는 단조롭다. 검은 길. 희게 반사하는 선. 군더더기가 없다. 누구에게 이런저런 마음을 털어놓기보다 아스팔트 앞에서 생각을 풀어놓기에 좋은 상황이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시골집이었다. 닭이나 토끼, 고양이를 즐겨 보았고 가끔 개와 놀았다. 엄마는 미아가 될 수도 있고 남자 어른들에게 무서운 일을 당할까 부러 대문을 잠궈 놓았는데 생각해보니 친구를 만나지 못해도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안정감이 들기도 했다. 또래들보다는 식물을 관찰하거나 가축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혼자 있는 마당은 내가 통치하는 왕국이었고 가축들은 나의 신민들이라기보다 친구에 가까운 충신들이었다. 아니면 내가 충신이고 그들이 통치자인지도 모른다. 닭은 눈을 뒤룩거리며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보이지만 느긋했다. 느긋하다기보다는 한 다리를 들어 걸음을 옮길까 말까 고민에 빠진 것 같다. 토끼는 귀여워보여도 제법 사납다. 만지려하면 이빨로 물어버린다. 고양이는 텃밭에 몰래 똥을 갈기고 얌체처럼 덮는다. 개들은 말괄량이였다. 온 동네를 신나게 뛰어 돌아다니다 걸어오는 나를 발견하고는 두 발로 덮치며 어깨를 살짝 문다.
부모님은 가끔 다투었다. 돈 때문이었다. 고함과 욕설이 오고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무서웠다. 나를 둘러싼 병풍이나 울타리가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다.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는 장면을 본 적은 없다. 어두운 부엌에서 엄마가 무릎을 끌어안은 채 울다 대문을 나섰고, 옆 집 아줌마가 엄마를 만류하는 것으로 보아 심상치않은 폭력이 일어났음을 짐작할 뿐이다. 소란스러움을 피해 광으로 도망가면 나를 찾는 이는 유일했다. 우리집 '검웅이'였다. 검웅이는 귀찮을 정도로 내 볼을 핥아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최고의 위로였다. 그들은 눈부시게 명랑하고 신기하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동물친구들과 함께 한 평화로운 시간들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예방약이 귀하던 시절이라 검웅이가 낳은 새끼 중 한 녀석이 광견병에 걸렸다. 다 큰 녀석이었다.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잡으려 하자 헛간 속에 숨었는데 두 눈이 파랗게 빛났다. 그 아이는 결국 잡혀 수문으로 끌려갔고 그곳에선 연기가 치솟았다. 질병에 걸리지 않아도 개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수문으로 가거나 개장수에게 잡혀갔다.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똬리처럼 틀어지는 닭목을 봤다. 닭은 졸려 하는 거 같았는데 닫혀가는 회색 눈꺼풀이 무서웠다. 토끼는 귀를 묶어 닭장 옆에 걸어놨다. 먼 훗날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흙이 드러난 남극과 불타는 아마존을 담은 사진 속에서 추레한 펭귄과 터전에서 쫓겨난 표범들을 봤다. 플라스틱을 먹고 죽은 알바트로스나 비닐이 목이나 발에 감겨 헤엄을 치지 못하는 바다거북을 들여다봤다. 어린 시절에 헤어졌던 동물 친구들이 떠올랐다. 역설적으로 평온하게 죽는 꿈을 소망하는 종은 인간 밖에 없는 것일까?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구름이 되게 해달라 빌었다. 가까이에서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흩어졌다 뭉치거나 멀리에서 의미없이 흘러가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개들과 방을 함께 쓰기 시작한 나이가 서른 여섯이었다. 부모로부터는 진즉 떠나왔다. 가축이 아닌 진짜 가족이 된 것이다. 어린 시절에 만난 개들은 친구에 더 가까웠다. 마당이 아닌 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 바깥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맺어지고 역할이 생긴다. 서로 눈빛을 마주하고 호흡하고 함께 밥을 먹고 체온을 나누며 잠든다는 것은 서로를 믿고 서로를 보호한다는 말과도 같다. 이 위험하고 불안한 세상 속에서. 프로메테우스의 간은 독수리에게 쪼아먹혀도 매일 새로 돋아난다고 한다. 함께 거주하는 공간은 우리를 매일 새롭게 치료한다. 우리는 친구거나 우두머리거나 혹은 엄마, 아빠,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
첫 아이는 발바리 새끼였다. 떠돌이였다. 태어난지 몇 달 되지 않은 새끼 강아지를 누군가가 어르신 노모차 위에 장난스레 앉혀놨다. 외로울까봐 학대 받다 구조한 아이를 더 입양했다. 발바리 녀석은 몇 년 뒤 도로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나머지 아이는 밖에 나가 대형 사고를 쳤다. 연애 사고였다.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 중성화수술에 대한 무지와 가난 때문에 새끼들끼리 근친교배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근친교배는 선천적인 기형과 질병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 우솜돌은 근친교배로 태어난 아이들 중의 하나였다.
아이들이 열 두 마리로 늘었다. 예수가 데리고 다니던 제자도 열 둘이었다. 무서워졌다. 내 소유의 집이 아닌 폐가를 빌린 집이었다. 강아지들이 순식간에 불어나는 상상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SBS방송국에 민원을 넣을 것만 같았다. 어떤 미친 여자가 개를 백마리나 키우고 있어요! '앗, 세상에 이런 일이!'를 만드는 담당 PD가 카메라맨을 대동하고 우리집에 찾아온다. '저기요, 선생님!' 인터뷰를 요구하며 도망가는 나를 불러 세울 것만 같다. 뒤이어 면사무소 사회복지사가 찾아와 아이들을 보호소에 집어 넣으려 한다. 기자들이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고...
집 근처 자동차 공장에 취직을 했는데 남자 아이들부터 중성화수술을 시작했다. 비용이 그나마 저렴했다. 여자 아이들은 중성화를 늦게 했다. 물론 질병의 위험은 높아진다. 애니멀호더는 아니지만 엄밀한 기준에서 말하자면 나야말로 모호한 경계에 서 있다. 경제적인 부양능력이 턱없이 모자란다. 모자라면 모자란다고 인정을 하면 되는데,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대책없는 낙관이 내 인생을 험지로 몰아넣었다. 아이들에게는 몇몇 질병의 고통을 안게 했다.
열 두 아이들. 한 아이는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떠났고 두 아이는 지인들에게 입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머지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했다. 심장마비, 혈관육종, 심장병 등 다양했다. 집을 나가 실종된 아이도 있었다. 탄생과 성장과 소멸이 지구의 자전처럼 자연스러운 일인데 오랫동안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했다. 펫로스를 앓았다. 몇 년 동안 여기저기 터진 둑을 막는 느낌이었다. 정신차려 보니 다섯 아이들만 남았다. 남은 아이들조차 이미 늙어버렸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탄식한다. 늘 언제나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 혼자인 미래를 꿈궜다. 분명한 것은 혼자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 미래의 자유로움과 현실의 책임감 사이에서 가슴을 흐르는 막막함이 있다. 마지막 남은 아이가 떠났을 때 나는 울고 있을까? 너무 얼떨떨해서 말을 잃어버리게 될까? 홀로된 자유로움과 나 혼자라는 충격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상상을 그만두자. 부질없는 짓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도 역시 잘 했다 싶은 것은 떠난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남은 아이들을 위해 산책을 멈추지 않았던 일이다.
터널을 지날 때 소음이 굉장하다. 재빠르게 우솜돌을 훑는다. 배우가 아무리 죽어 있는 연기를 해도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아이의 눈썹도 흔들린다. 여행의 스트레스를 그저 견디고 있구나. 고개를 쓰다듬어준다. 두껍고 단단한 이마. 이 아이는 소멸한다, 곧. 가슴이 먹먹하다. 휴게소에서 두 번을 쉬고 ㅁ시에 도착했다. 시간은 벌써 밤 11시 30분을 넘겼다. 도착하면 우솜돌을 위해 산책을 하기로 약속했다. 장소는 대우아파트 앞 강둑이었다. 우솜돌과 함께 강둑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서는데 풀내음이 농밀하다. 적막한 밤이다. 설레임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설레임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강둑에 올라서자 어둠 속에서 힘차게 흐르는 강물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우솜돌과 나 뿐이다. 우리는 그저 환한 빛 속에 서 있다. 어둠이 짙어 더욱 환하다. 예상했지만 어리둥절하다. 물리적인 죽음 이후에 도착한 곳이 이런 장소라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본다.
이제 막 꽃송이를 터트리기 시작한 굵고 오래된 빛나무 아니 벚나무들이 강둑 끝자락까지 터널을 만들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밀원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낮에는 바람과 햇빛에 증발해버린 꽃향기가 밤에는 포자처럼 둥둥 떠다녔다. 달콤한 벚꽃 내음이 가득했다. 군데군데 청사초롱에 불이 밝혀져 다가가니 가로등이다. 붉고 파랗게 염색한 천 너머로 전구인듯 불빛이 어둑하다. 우솜돌은 풀섶에 코를 대고 벌레라도 찾고 있는 것일까. 그의 얼굴은 빛과 그림자로 뒤덮였다. 작은 얼룩말 같다. 강둑을 내려서서 잔디밭을 힘차게 걸었다. 우솜돌은 빠르게 걷는다. 내 발걸음도 상쾌하다. 우솜돌이 풀냄새를 맡는다. 나는 벚꽃을 본다. 짜리몽땅한 그림자 둘이 어슬렁거린다. 그림자들도 신이 났다. 풀려난 노예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