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는 만큼 존중받는 사람이 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주까지 휴강이던 아이 학원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이 됐다. 매번 아이 편에 카드를 맡겨서 수업료를 결제했는데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는 바람에 이번 달 수업료 결제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계좌이체도 가능하지만 사용하고 있는 신용카드가 학원 수업료를 일정 금액 이상 결제할 경우 매월 할인 혜택이 있기에 그냥 학원을 방문해서 결제하기로 했다. 저녁식사 준비를 앞두고, 학원비 결제를 오늘도 못하면 또 잊어버릴 것 같아서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서둘러서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에 들어서니 체온 체크를 하는 기계가 있었고, 정상 체온임을 확인한 나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결제 데스크로 향했다. 그런데 데스크에 있던 분이 화장실로 향하다가 나를 향해 물었다.
"체온은 확인했니?"
잠시 당황한 나는 그분을 뚫어지게 봤고, 그분은 내가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번 물었다.
"체온 확인은 했냐고?"
나는 잠시 모자를 살짝 들고, 좀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네, 했는데요. 그리고 저 학생 아니고, 학부모입니다."
그러자 상대방은 학생인 줄 알았다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얼른 화장실로 사라졌다.
마르고, 키가 작은 나는 종종 이런 오해를 받곤 한다. 특히 요즘 두 딸들의 폭풍 성장으로 인해 셋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 보면 세 자매인 줄 알았다는 분들도 계시고, 마스크를 쓰고 아이와 함께 문구점에 갔다가 계산을 하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현금 영수증 해줄까?"
라고 해서 당황했던 일도 있다. 나를 아는 분들 중에는
"어려 보여서 참 좋겠어."
라고 말을 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잦다 보니 그런 말을 듣는 것조차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오해하기 쉽도록 내가 너무 아이 같은 옷, 편한 옷차림을 했던 건 아니었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겉모습을 보고 쉽게 판단하고 하대하는 일은 옳지 않다. 친한 사이라도 서로 존중해야지만 그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 하물며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존중을 해줘야 한다.
몇 달 전, 신문에서 봤던 초선인 한 국회의원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이 난다.
"국회는 카메라 버튼과 반말 사이에 스위치가 연결돼 있는 곳인가 싶다. 놀랍게도 카메라가 꺼지면 많은 의원들이 반말로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그분들에게 '반말하지 마세요. 아름다운 존댓말이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은 분들은 당황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주엔 자주 듣는 방송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라디오 DJ가 청취자에게 온 사연을 읽다가 본인 학교 후배인 듯 하다며 반말로 청취자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노래가 한 곡 나간 후
"후배라고 해도 말 놓는 것 좋지 않아보입니다. 후배라도 존중해줍시다."
라고 또 다른 청취자 한 분이 사연을 보냈던 것이다. PD가 시켜서 그렇게 한 것이라며 사과를 한 DJ의 모습이 살짝 구차해보였다. 생각해보면 서로 반말을 주고 받는 쇼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방송에서도 선후배,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서로 존대말을 쓰는 게 대부분이지 않던가?
사실 이러한 예들은 국회에서나 방송이 아니더라도 우리 생활에서도 매우 흔한 일이다. 부끄럽지만 우리 아버지 조차도 음식점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에게 반말로 이래라저래라 할 때가 많다. 말씀하실 때 그렇게 하지 마시라고 해도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고쳐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작년까지 나는 아이들 학교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했다. 매주 아이들과 그림책을 함께 읽고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했는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대화를 나눌 때 존댓말을 썼다. 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반말을 사용하기에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처음엔 조금 어색하기도 했으나 내가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만큼 아이들 또한 나를 존중해 주는 것이 느껴졌다. 존댓말로 질문을 받는 아이들은 스스로 존중을 받는다고 느끼기에 그만큼 상대방을 더 존중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반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의 특수성을 생각할 때 존댓말의 사용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사실이다.
의도적이지 않았으나 순간의 하대로 당황했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혹시 내가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만큼 실수했던 일은 없었는지? 우리 아이들에게도 '넌 어리니까' 식의 사고로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은 없는지 나를 되짚어 보았다. 推己及人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자신의 마음으로 미루어 헤아려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어려운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이라면 배운 대로 행하고, 받은 만큼 감사히 여기며 상대를 대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일에는 외모, 나이, 국적,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역시도 누구나 알 것이다. 존중받는 일을 거부할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자주 잊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