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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Dec 21. 2022

아크로바틱을 배우기 시작했다.

맨땅 위에서 하는 운동이 끌렸던 이유 

얼마 전부터 퇴근 후 서울을 왕복하며 아크로바틱을 배우고 있다. 아크로바틱을 배운다고 하면 그게 뭐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는다. 명칭이 익숙하지 않은 이 운동은 간단하게 ‘2PM이 하던 거, 혹은 스파이더맨의 톰 홀랜드가 하던 거‘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아크로바틱은 앞공중돌기, 뒤공중돌기, 백핸드 스프링, 옆 돌려차기 등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기계체조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다. 회사 차장님이 이제 조금 있으면 사무실에 “안녕하세요!”하고 텀블링하면서 들어오는 거냐고 놀리셨는데, 사실 그걸 바라는 게 맞는 것 같다.     


원체 힘든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주변 친구들은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 등 취미로 삼는 운동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데 나는 다 흥미가 없었다. 잘 해내도 그다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해야 한다는 걸 아니까 가끔 나가서 걷거나 뛰었고, 이따금 헬스장에 가서 근력 운동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WesJS3AIug&t=335s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아크로바틱 영상을 보게 되면서 처음으로 운동이란 분야에 눈빛이 반짝였다. 유튜브에 올라온 일반인의 1년 변화 영상이었는데, 막 시작했을 땐 넘볼 수도 없던 고난도 동작을 1년 여의 시간이 지나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노력하고 싶은 종목이 생긴 게 처음이었다. 나는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라 나와 맞는 걸 아직 찾지 못한 것뿐이었다. 물론 나는 코어 힘도 없고, 기본적인 근력도 평균에 한참 못 미치고, 살도 많이 쪘다. 못할 이유는 많았지만, 하고 싶었다. 그 길로 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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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인 선택 이후 첫 수업에 가기까지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왜 아크로바틱에 끌렸을까.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맨몸으로 하는 운동인 게 좋았다. 근력 운동에는 중량 치는 기구와 덤벨이 필요하고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은 공과 채가 필요하다. 복싱은 글러브와 겨룰 상대방이, 필라테스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운동은 하기 위해 준비 장비나 기구, 상대방이 필수지만 이 운동만큼은 달랐다. 매트 위에서 연습해도 땅바닥에서도 할 수 있다. 나와 내가 디디고 있는 땅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선보일 수 있다. 아무런 가진 게 없어도 괜찮았다. 누구나 똑같이 바닥에서부터 쌓아가야 하는 특성이 좋았다. 해야 할 건 오롯이 자신을 믿는 것. 그 노력을 바탕 삼아 목표로 하는 동작을 이루어내는 것뿐.     


내가 좋아하는 글도 비슷한 특성을 가졌다. 사진이나 영상 일을 하려면 장비가 필수적이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괜히 부족한 실력을 장비 탓으로 돌리게 되곤 했다. 사람들은 유명한 작업자들이 어떤 카메라를 쓰는지 매번 궁금해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작가의 노트북 사양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다. 좋은 글을 쓰는 데에는 저가형 노트북이든, 가장 비싼 옵션을 포함한 노트북이든 중요하지 않다. 더군다나 노트북이 없으면 종이와 펜만 있어도 충분히 씀을 지속할 수 있다. 도구의 존재가, 그 수준이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적어도 백지 앞에서 모두는 평등하다. 그 앞에서는 아무런 핑계를 댈 수 없다. 뭐든 돈이 있으면 더 우월한 시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모두에게 같은 상황이 주어지는 그 하나하나의 존재가 내게는 귀했다. 땅만 딛고 서 있으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아크로바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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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내가 목표로 하는 동작을 소화하기까지는 2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운동신경이 다른 이들보다 훨씬 둔하니까. 등록 첫날, 고등학교 체육 수행평가 시간 이후 처음으로 앞 구르기, 뒤구르기를 하느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머리에 피가 쏠리는 기분이 너무 생소했다. 선생님은 우선 물구나무서기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 상태를 보고는 3달 정도는 걸리겠다고 짐작했다. 나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기 위한 연습 동작을 꾸준히 학습하고 있다.     


잘하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즐겁게 운동하러 가는 날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 내가 구르기로 쩔쩔맬 때 옆에서 공중돌기를 마치고 완벽하게 착지하는 친구들을 보면 없던 에너지마저 생긴다. 좋아하는 걸 해나가는 행위는 이처럼 나라는 사람의 특성을 더 잘 알고 깨닫게 해 준다. 삶을 내가 즐거워하는 것들로 채워야 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야 내가 원하는 선택으로 자신을 이끌어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모두에게 동일한 시작점이 주어지는 일이 좋다. 변명을 댈 수 없게 스스로 정진하고 노력해서 뚜렷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특성에 끌린다. 이런 경험치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면 다음에는 그것이 어느 분야든, 나에게 잘 맞는 걸 더 빨리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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