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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Nov 14. 2019

수능 전야

밤에 쓰고 낮에 올리는 글

밤에 쓰고 낮에 올리는 글

“우리 벌써 고등학교 졸업한 지 10년 됐어."

친구들과 종종 이런 말을 나눈다.
그리고 정말 그 시간만큼 수능이라는 단어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사촌 동생들이 어려서 누가 이번에 수능 본다더라 잘 보라고 연락 좀 해라, 라는 엄마의 말을 듣던 것도
작년으로 끝이 났다.
다들 내가 나이 먹는 동안 훌쩍 커버린 것이다.

그래도 수능을 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이유는 출근 시간 조정 때문이었다.
10시 출근으로 출근시간이 늦춰졌는데 그나마도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사무실에 혹시 올지 모를 사람을 기다려야지.
그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작년에도 나였고 올해도 나라는 것이 조금 억울할 뿐이다.

아무튼 생각하다 보니 10년 전에 나는 어땠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수능을 보던 날 점심으로 먹은 죽이 체하고 난 후 아직까지도 죽을 먹으면 체한다.
보통 아프면 죽을 먹는데 희한한 일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죽을 잘 먹지 못한다. 수능을 못 본 핑계일 뿐일 수도 있지만,

해가 질 때까지, 제2외국어까지 시험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 펑펑 울었다.
내 인생이 딱 하루에 결정 난다는 것과 그 하루를 망쳤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하지만 울다가 드라마를 보고 기운을 차렸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었던 그 드라마가 절망에 빠진 나를 웃게 했다.
그래서 그때도 지금도 좋아하는 드라마. 제목은 비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나
평소 모의고사보다 더 망친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도 전공도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후회가 되진 않는다.
그날 운이 없었던 것도
그냥 나의 운명이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해도 이미 지나간 것을 어떻게 할 것이며-
온전히 내가 만들어 낸 하루니 누굴 핑계 댈 것인가.

이 밤 잠 못 들고 있는 아이들이 있을까.
누군가를 향해 기도하고 있는 엄마들이 있을까.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를 가장 잘 증명해 주는 시험.
어떤 결과가 기다린다고 해도 너는
"고생했다."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다.

시험을 망쳐 엉엉 울고 있는 딸에게
"괜찮아, 잘했어. 울지 말고 TV이나 보자."라고 말해 줘 다시 웃게 해 준 우리 엄마처럼

이건 끝이 아니야, 또 다른 시작이고 하나의 과정일 뿐이야.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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