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고 Mar 07. 2021

'나'로 죽고 싶어

[2020 드라마스페셜] 나들이

이 포스팅에는 작품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작품을 안 보신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한때는 유명 식당의 사장이었지만 지금은 자식들이 다 떠난 집에 혼자 살고 있는 영란(손숙). 그런 영란의 집 앞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순철(정웅인). 영란은 순철에게 조금 까탈스러운 고객이지만 순철은 웬만하면 영란을 맞춰주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영란은 자신이 치매라는 진단 결과를 받게 되고, 현실을 부정하려고 애쓴다. 본인이 치매 걸린 어머니를 부양하며 어린 아들 둘을 키워봤기 때문에 치매라는 병이 얼마나 자식들을 지키게 하는지 너무도 잘 아는 영란. 지금까지 혼자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영란은 자식들에게 어떤 못 볼 모습을 보일까 걱정되기만 한다

영란은 순철이 과일을 사러 강원도까지 간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자신을 데려가달라고 말한다. 얼떨결에 영란과 함께 과일을 사러 나선 순철은 영란 때문에 난처해지기도 하지만 묵묵히 그녀의 옆을 지킨다.

영란은 항상 외국에 나가있는 큰아들과 사업을 하는 작은아들 자랑을 하지만 사실은 둘 다 영란에게 돈을 더 받아낼 궁리만 하고 있었고, 영란이 큰아들이 보고 싶어 금전적 지원을 해준다는 빌미로 해외에서 들어오라고 부르자 작은 아들이 찾아와 형에게만 돈을 주면 가만 안 있겠다고 난리를 친다. 그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는 영란.

순철 또한 이혼한 부인과 살고 있는 딸이 돈을 달라고 해서 영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한다. 죄송하다고 무릎을 꿇고 우는 순철에게 자식이 원하면 뭐든 다 해주는 게 부모라며, 자신도 자식을 위해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다며 이해해 주는 영란. 그녀는 순철에게 흔쾌히 돈을 빌려준다고 하며 다음 날 아침 자신을 찾아오라고 말한다.

영란과의 약속을 지키려 영란의 집을 찾아간 순철은 머리맡에 자신에게 줄 돈을 두고 약을 먹어 의식이 없는 영란을 발견하고 급히 병원에 옮긴다. 사실 영란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인데, 그럼에도 자식들이 홀로 죽어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힘들어할까 걱정해 순철이 자신이 발견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혹시 영란이 깨어나지 않아, 아니면 기억하지 못해 순철이 난처한 상황에 처할까 전전긍긍하면서 지켜봤는데 다행히 영란은 모든 걸 기억하고, 두 아들보다 순철에게 더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드라마는 영란이 결국 요양원으로 가지만, 순철이 영란을 찾아와 나들이를 함께 다니는 모습으로 끝난다. 

순철과 영란의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자식을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는 영란과 딸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지만, 정말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인간의 도리와 부모의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철. 모자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힘이 되어주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함께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사실 정웅인은 이제는 어떤 역을 해도 악역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역이던 찰떡같이 연기를 잘해서겠지.

그리고 영란 역의 손숙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찍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 예전보다는 아름다움과 멀어졌다고 해도 포도밭에서, 바닷가에서, 노을 밑에서 행복해하는 영란의 모습은 젊음이 주는 미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죽음이 멀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에 거리에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저 '나'로 죽을 수 있는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훈훈함과 동시에 씁쓸함이 조금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의 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