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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않아도 괜찮아

영화 <유랑의 달>, 결말 포함

by 심고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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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Wandering,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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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소아성애자에게 유괴 당했다는 사실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사라사(히로세 스즈)'.

사람들은 그녀를 평범하게 대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그녀가 불쌍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성인이 돼서 일도 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살고 있는 사라사.


우연히 직장 동료와 들른 카페에서 15년 전 자신을 유괴했던,

아니 사실은 자신이 직접 따라나섰던,

그 시절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던 '후미(마츠자카 토리)'를 다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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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 비를 맞고 있던 소녀에게 한 남자가 우산을 내민다.

그것이 사라사와 후미의 첫 만남이었다.

세간에는 유괴로 알려졌지만 사라사는 자신의 의지로 후미를 따라나섰고, 그의 집에 숨어 있는다.

후미는 사라사가 저녁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집안을 가득 어지럽혀도 가만히 놔둔다.

그는 그저 그녀가 자신에 집에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그녀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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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소아성애자임은 사실이었다.

후미가 사라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후미를 손가락질하고 범죄자로 생각한다.

사라사 역시 어릴 적 몹쓸 짓을 당한 아이로 취급해 그의 남자친구인 료는

그녀를 마음속으로 함부로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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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포함>


사실 사라사를 괴롭힌 건 부모님이 사고로 죽고 가게 된 이모의 아들인데,

어린 사라사는 그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한다.

아무리 후미가 자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사라사는 다시 만난 후미에 대한 죄책감과 반가움으로 자꾸 그의 곁을 맴돈다.

다행히 후미에게는 여자친구가 있고, 카페 주인이기도 하다.

그 사실이 사라사는 다행이면서도 무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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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사를 모른 척하던 후미는 후미와의 관계 등으로

남자친구 료에게 폭행을 당한 사라사에게 다시 손을 내민다.

사라사는 어릴 적 사건 이후로 감추고 살아왔던 자신을 다시 찾고 싶어진다.

후미의 옆집으로 이사한 사라사는 후미의 곁을 맴돌고, 후미는 그녀를 받아들이지도 밀어내지도 않는다.


료는 이에 분노해 후미와 사라사의 관계를 폭로하고, 후미와 사라사는 다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비난보다도 자신이 어린아이가 아니면

누구와도 연결될 수 없는 부족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절망하는 후미.

사라사는 후미의 그런 모습에도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곁에 있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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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가 사라사에게 실제로 아무 짓도 하지 않지만

후미가 소아성애자라는 사실만으로 보면서 마음을 졸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제일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는 사라사를 사랑하지만 그게 어릴 적 사라사를 사랑하는 건지

지금의 사라사를 사랑하는 건지도 확실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오직 두 사람.

사라사와 후미의 앞날은 앞으로도 평탄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둘이 함께 있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머물지 못한다면 또 어디론가 흘러가면 그만이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차분하게 다가오는 사라사와 후미의 이야기가 이런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좋았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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