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의 조각들>, 결말 포함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가정분만 중 아이를 잃게 된 '마사(바네사 커비)'.
그 사고로 그녀의 일상은 무너져버린다.
가족들은 조산사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물어야 한다며 그녀를 다그치고,
남편과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멀어져 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부서진 것은 그녀 자신이다.
영화에서는 줄곧 조산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영화 속 출산이 진행되는 장면을 보면
마사가 원하는 조산사 바바라가 다른 출산 때문에 오진 못하지만
대신 온 에바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느끼기에는 '책임을 물을 누군가가 필요해.'
이게 에바에게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사의 엄마나 남편의 주장인 것 같다.
그리고 마사는 이에 대해 계속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그녀의 남편이 슬픔을 토로할 때도
그녀는 냉정해 보이기만 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녀는 정말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일까.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주인공의 심리겠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굳이 그래야 한다면 엄마로서 마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녀의 대사처럼 '와인을 마신 것, 초밥을 먹은 것'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나 때문인 게 아닐까.
엄마로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근데 조산사와 소송을 진행한다면,
만약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엄마의 탓이라는 부분이 나온다면
과연 마사는 온전하게 버틸 수 있을까.
나라면 그게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마사는 계속 남편과 엄마와 부딪히고, 결국 남편과 이혼하게 된다.
그리고 가게 된 조산사의 과실치사 재판에서
그녀는 출산 당시의 질문을 받으며 혼란스러워한다.
가정분만을 원했던 것도, 병원에 가야 한다는 조산사의 말에
집에서 낳겠다고 말한 것도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분명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잠깐이지만 딸을 품에 안았던 기억.
그녀는 휴정 중 남편이 찍은 아이의 사진을 인화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어떠한 보상도 그녀에게 딸을 잃음을 대신해 줄 수 없고,
그렇기에 보상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사건이 있은 후 마사가 사과를 먹는 장면과,
먹은 사과 씨앗을 발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이 아기에서 사과향이 났다는 기억 때문이라는 것을
법정 진술 장면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조산사 또한 최선을 다해 건강한 아이를 받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법정에서 인정해 주고,
자신의 아기를 온전히 떠나보낸다.
그리고 후에 그녀가 발아 시켜 키웠을 커다란 사과나무에서
그녀의 아이가 사과를 따먹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슬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그녀에게 다시 찬란한 내일이 찾아온 걸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무거운 영화였지만 에바의 탓을 하지 않는 마사의 모습과,
희망적인 마지막 장면이 좋아서 기억에 남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