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 결말 포함
※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1920년대 스웨덴 시골의 10대 소녀 '아스트리드(알바 어거스트)'는
자신에게 춤을 청하는 남자가 없다면 스스로 일어나서 춤을 추는 당찬 소녀다.
글쓰기에도 소질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준 지역 신문사 편집장 블룸버그 덕분에
지역 신문사에 인턴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러나 아스트리드는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믿어주고,
이야기가 통하는 블룸버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가 아스트리드 친구의 아버지이자 결혼을 두 번이나 하고, 현재 이혼 소송 중이라는 사실.
위험한 사랑이 지속되던 중 아스트리드는 블룸버그의 아이를 갖게 되고,
결국 마을을 떠나 다른 도시로 가게 된다.
아스트리드가 자신의 아빠 뻘인 블룸버그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겠는 건 아니다.
아스트리드의 어머니는 그녀가 시골에서 요란하지 않고
평범하게 집안일을 도우며 사는 것을 바랐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만큼
자신의 딸에게 정숙함을 강요한다.
그래서 아스트리드가 아이를 낳은 후에도
그녀가 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고 그냥 본인의 길을 가기를 바란다.
어느 정도는 동네에 소문이 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신을 온전히 재능으로 평가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사랑해 주는 블룸버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블룸버그가 아스트리드를 거부했어야 맞지 않았을까... 싶다.
<결말 포함>
아스트리드는 이혼 소송에 불리할 수 있다,
감옥에 가야 할 수도 있다는 말에 몰래 출산을 감행하고 아이를 위탁 가정에 맡긴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생각보다 약한 벌금형을 받게 되고,
아스트리드는 겨우 그 정도의 벌금이 두려워 아이를 혼자 두게 만들었다는 분노에
그를 거부하고 떠나게 된다.
하지만 이미 위탁 가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생길 만큼 커버린 아들 '하세'는
그녀가 엄마라는 사실을 거부한다.
하세와 어머니의 계속되는 거부에 아이 키우는 것을 포기했던 아스트리드.
하지만 위탁모가 건강이 안 좋아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되자 하세를 데려온다.
자신을 계속 거부하는 하세를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하세와 친해지게 된 아스트리드는
하세를 데리고 고향 집에 내려가고,
그녀의 어머니 또한 그녀와 하세를 데리고 교회에 감으로
아스트리드와 하세를 인정해 준다.
영화가 시작될 때부터 끝까지 노년이 된 아스트리드라는 작가에게
아이들이 너무 좋은 책을 써줘서 감사하다는 편지의 멘트들이 나온다.
그때까지 나는 아스트리드가 '말괄량이 삐삐'를 쓴 작가인지 몰랐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사실 나는 '말괄량이 삐삐'를 읽은 세대는 아니어서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영화가 그녀가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보다
그녀의 사랑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에 너무 초점이 맞춰 있어서 아쉬웠다.
불륜 이야기와 거기서 벗어나는 과정이 러닝타임 중 2/3을 차지하고,
마지막 30분 정도만 아이와 교감하게 되는 아스트리드의 모습이 나와서
그녀가 어떻게 아이들 마음을 읽는 훌륭한 작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나 감동은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작가로서의 그녀의 삶을 알고 싶어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