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사람을 생각한다.
나는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사람을 생각한다. S는 그날 눈물을 흘렸을까? 아니면 비명를 질렀을까? 혹시 자기도 죽을 결심을 했던 건 아닐까?
지난달, 남편은 새로운 직장에 취직했다. 집들이에 초대받았다며 나와 딸을 데리고 효자동으로 향했다. 남편을 유난히 따른다는 MZ세대의 청년, 궁금했다. 요즘 보기 드문 예의 있는 청년이라가고 들었다. 기특하게 집들이를 하고 가족까지 초대한다는 게 참으로 인상깊었다. 총각이 혼자 살면서 무슨 음식을 마련해서 우리를 불렀을까, 어떤 만남이 될까, 기대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나는 당연히 새아파트를 분양받았거나, 아파트를 리모델링했을 거라 생각했다. 원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또 한 번 생각했다. 나의 오만함을 마주하고 잠시 반성했다.
총각이 혼자 사는 집은 아주 깨끗했다. 오래된 원룸이었지만 디퓨저 향을 화장실, 주방에 놓고 살고 있었다. 나는 향이 좋다고 칭찬을 해줬다. 옷도 반듯하게 개 놓고 먼지 하나 없게 잘 닦아 놓았다.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청년이라 말해 주고 장가만 가면 되겠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일행은 직원 3명, 나, 그리고 딸까지 6명이었다. 그런데 배달 음식이 계속 오기 시작했다. 족발, 보쌈, 치킨, 피자, 떡볶이, 오뎅탕, 우동, 김밥 등 열 명도 넘게 먹고도 남을 양을 시켰다.
“S 씨,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요?”
“부족한 거보다 남는 게 더 낫잖아요. ”
음식이 많이 남았다. S은 내게 “형수님, 이거 싸 가세요.”라고 말했다.
배부르게 먹고 기억에 남지 수다가 계속 되었다. 남편의 다른 동료와 차를 함께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S가 참 마음이 넉넉하네요. 배달을 너무 많이 시켜서 음식이 많이 남았는데, 버리긴 넘 아깝더라요.”
“S이 오늘 행복했을 거예요. 원래 사람 많은 걸 좋아해요. 부모님도 안 계시는 고아였대요. 그래서 위탁 가정에서 형제를 키웠는데 잘 지낸 건 아닌가 보더라고요. 걔네 형은 뉴스에도 나왔어요. 10년 전인가. 완주 펜션에서 자살 인터넷 동호회에서 모여 죽은 애들있어요. 번개탄 피워 집단자살해서 뉴스에도 나왔어요. 이 집도 청년전세자금대출 받아서 어렵게 들어온 집이라고 했어요.”
말문이 막혔다. 한 사람의 인생이 너무 딱해서 가슴이 먹먹했다. 대학도 나오지 못해 약공장에서 단순 노동인 약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워낙 성실하고 똘똘해서 사무직으로 올라오게 된 이야기도 들었다. 문득 생각했다. 삶에 나태하고 권태로운 나의 지난날이 사치스럽지는 않았을까 나도 모르게 자기혐오가 올라왔다.
겉으로 보기에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삶의 무게, 그것을 감당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어떤 시선으로 봐야할지 고민이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는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사람을 생각한다. 사회에는 수많은 S들이 살아가고 있을 텐데 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어 가는지 관심이 간다. 내 주위 T 친구들은 말한다.
“네가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 너는 네 일 열심히 하면서 사는 수밖에 없지. 별 수 있어?” 정말 그래야만 할까?
백은별 작가의 [시한부]에 중학생 황윤서와 유수아가 등장한다. 크리스마스에 학교 옥상에서 떨어진 윤서의 죽음을 우리는 막을 수 있었을까? 부자집 딸이었던 윤서의 집안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게 되고, 윤서의 부모님은 사업실패로 동반자살을 한다. 그러다 할머니와 둘이 살게 되고 전학을 가 새로운 학교에 가게 된다. 이 소설은 유수아의 1인칭 시점으로 이루어졌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유수아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청소년의 우울과 충격... 그리고 공포, 그 우울함. 과장된 감정을 몰래 훔쳐볼 수 있었다.
유수아라는 주인공은 윤서와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어느 날 윤서는 크리스마스를 죽는 날짜로 정하고 중학교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게 된다. 남겨진 유수아는 죄책감에 쌓여 자기도 다음 해 크리스마스에 죽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후 수아는 우울증이 심해지고 학교 생활도 무너진다. 평범한 가정에서 잘 자란 아이도 우울증을 겪을 수 있게 되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고,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난 유수아의 엄마가 된다. 내가 유수아의 엄마라면 과연 윤서랑 노는 것을 허용했을까? 내 딸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나는 또 내 자신에게 실망을 한다.
직접적으로 도울 수 없을 거라는 무기력함. 출발선부터 다른 인생의 불공평함을 새삼 인식한다. 보통의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하는지, 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취하는 것, 누리는 것은 무엇인지, 욕심을 부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소개된 강지나 작가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책을 만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작가는 학생 때 만났던 아이들을 10년 후에 추적 관찰한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기록했다. 책을 읽으며 그들의 참이 얼마나 처참하고 잔혹한지 더 깊이 훔쳐 보았다. 아이들이 원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계속 책을 읽었다. 작가가 아이들을 인터뷰하며 가장 자주 들은 말은 “돈이 많지 않지만 화목하고 평범한 가정”이라고 했다. S는 우리 가족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며 참 많이 웃었다. 그 모습이 부러웠을까?
그동안 애써 버텨온 S에게 대견함을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애착, 그리고 통찰과 지혜. 어른이 되고 사회의 일원이 된 게 기쁘다. 나는 요즘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S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