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우기 전으로 돌아 갈 수 없다
“꾹꾹이를 보고 골골송을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모르겠어. 감자랑 맛동산을 캐는 것도 재미있고, 식빵을 하고 우다다하는 모습도 사랑스러워 죽겠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이 문장을 읽고 무슨 뜻인지 바로 안다면 아마 우리는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말이다. 하염없이 바라본다. 내가 사랑하는 그 생명체를...
요즘 사람들은 ‘멍 때리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때리다’의 어휘의 느낌이 우아하지 않아서 나는 되도록이면 쓰지 않는다. 더 자극적이고 더 쎄 보이는 어휘를 선택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멍 때리다’ 대신 ‘멍하니 봤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뭔가 요즘 사람들에게서 뒤쳐진 것 같기도 하고 유행을 못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 이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말한다면 ‘ 꼰대처럼 보이겠지’라며 혼자 피식 웃었다. 이와 맥락이 비슷한 또 다른 어휘가 유행하고 있는데 바로 ‘0멍’이다. ‘불멍’, ‘물멍’, ‘꽃멍’... 사람들의 취향도 참 가지가지다. 사람들은 불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꽃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한다고 한다. ‘너는 뭐하고 멍 때리냐?’라고 물어본다면 바로 ‘고멍’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고멍’을 추천하고 싶다.
‘고멍’은 무엇일까? ‘고’로 시작하는 무언가이니 ‘고구마’, ‘고추장’, ‘고사리’일까? 여기서 ‘고’는 고양이이다. 고양이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나도 내가 고양이를 이토록 바라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인생은 오래 살고 볼일이라는 말이 나를 보고 한 말인가 보다. 우리의 묘연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펫샵을 지나가는데 아이가 들어가 보자고 말했다. 펫샵에서 동물을 데리고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아이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내 발길은 이미 픽미픽미(pick me pick me)를 외치던 고양이들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귀가 접혀 있고, 회색 빛깔을 하고, 눈이 유난히 슬프던 고양이 한 마리. 눈이 마주치는 순간 책임져야 할 것만 같아서 자리를 피했다.
“싸게 드릴 테니 한 마리 데려다 키우세요. 딱 보니 잘 키우게 생기셨네...”
잘 키우게 생겼다는 말은 뭘까? 사랑을 많이 줄 것 같다는 얘기일까, 버리지 않게 생겼다는 걸까. 강아지라면 모를까 고양이와 같이 사는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양이는 사람한테 정을 안 주다느니, 해코지를 한다느니 부정적인 말이 스쳤다. 아이한테 빨리 나가자고 했다.
“내일 폐업해요. 오늘 안 데려가시면 안락사 시켜요. ”
사장님이 우리를 꼬시기 위한 말일 것이다. 영업하는 방법도 정말 가지가지네... 우리가 안 데려가면 죽는 건가? 모르겠다. 그래, 한 마리 키워보자. 그렇게 한 묘생을 책임지기로 했다. 펫샵 사장님이 거짓말을 했는지 우리한테 팔려고 했는지 그 길을 다시 가 보았다. 정말 가게는 없어졌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우리랑 살게 되어서... 죽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다. 우리의 묘연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양이를 키울까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뜯어 말리고 싶다. 세 가지 이유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털과의 전쟁이라서. 두 번째, 돈 먹는 귀신이라. 세 번째, 너무 사랑하게 되어서.
고양이가 온 순간부터 털반밥반으로 끼니를 채운다. 밥 위에, 반찬 통 위에, 국에 떠 있는 털을 보면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검정색 옷을 입으면 빨래 안 한 옷을 입은 것처럼 먼지가 뭉태기로 묻어 있다. 마치 귀마개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 같다. 밥이나 국에 털이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빼고 먹는 나를 보니 제 정신은 아니다. 옷 위에 털이 묻어 있으면, 얼마나 따라 오고 싶었으면 여기까지 따라왔냐고 혼잣말을 한다.
고양이에 호기심이 많아 한 번 키워볼까 하는 사람들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한 달에 대략 얼마정도 드냐고. 이에 대한 대답은 ‘알 수 없다’이다. 고양이는 돈 먹는 귀신이다. 사료, 화장실 모래, 간식 뭐 예상할 수 있는 돈이다. 내가 커피숍 한 번 안 가고 보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화장품 중에 바르는 것 하나 안 사면 된다. 고기 한 번 안 사 먹으면 된다. 그런데 병원을 가 보니 부르는 게 값이더라. 한 여름 오후,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아이가 가져온 실뜨기 실을 맛있게 드셨나 보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울며불며 눈물 세수를 하고 고양이 전문 병원에 갔다. 마취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실을 꺼냈다. 그 이후 청구된 금액은 몇 십 만원. 아. 전기밥통과 바꾼 병원비. 그 다음 주에는 펫보험에 가입하였다. (이 생명에게 매달 고정비용이라는 게 발생한다.)
고양이를 키울까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절대 키우지 마시라고. 너무 사랑하게 되어서 헤어짐이 두렵다. 직장 동료는 고양이를 14년을 키웠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던 날, 직장 동료는 출근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1주일을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많이 슬픈가 보다, 마음이 안 좋겠다고만 생각했지 얼마나 큰 슬픔일지는 상상할지 못했다. 동물이 인간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깊어지는 사랑만큼 생길 상실감이 두렵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라는 말이 나를 위로한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 누군가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면 나는 키우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의 삶은 더 이상 고양이를 키우기 전으로 돌아 갈 수 없다. 내 선택은 옳았다. 나의 삶이라는 주머니에 고양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더 듬뿍 넣고 싶다. 우리집 고양이의 첫 번째 이름은 볼트, 두 번째 이름은 고선생이다. 그에게서 인생의 태도를 배운다. 고양이는 딱 거리를 두며 바라본다. 가까이 가려고 하면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며 저만치 물러선다. 인간관계도 고양이처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을 만나면 발발걸리는 강아지처럼 마음을 퍼 주는 탓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고양이를 조금 일찍 만나 고선생한테 인간관계 이론을 들었어야 했는데... 또 다른 교훈을 얻었다. 성실함.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반복한다. 지겹지도 않을까? 늘 같은 자리에서 창밖을 보며 그루밍(자신의 몸을 핥아 털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일주일 했으면 하루는 쉴 만도 한데 오늘도 열심히 한다. 세수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른다. 세수를 매일 했다는 얼굴에 눈꼽이 디리디리 꼈는데도 결과가 좋으나 안 좋으나 항상 한다. 사람은 뭔가를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고선생은 결과에 상관없이 의연하게 살아간다. 또 한 번 배운다.
가끔 운전을 하다 보면 로드킬을 당한 생명을 보게 된다. 아파트 도로에 치여 저 세상으로 간 아이를 보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임신을 했는지 배가 유난히 볼록했다. 관리사무실 아저씨께 말씀을 드렸더니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면 된다고 하셨다. 사정을 해 아파트 화단에 묻었다. 옆에 있는 개망초를 뜯어다가 무덤에 놓았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길에서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보면 안전한 곳으로 갈 때까지 눈으로 지킨다. 길고양이 급식소 확대에 관한 기사를 봤다. 그 아래에 바로 길고양이 급식소 논란 기사가 나와 있다. 이집트 여신 바스테크는 고양이 형상을 하고 있다. 악령과 질병을 보호한다고 한다. 나는 소심하게 급식소 확대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고 ‘고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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