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키우며 과거의 나를 만나 토닥거리고 따스한 품으로 안아준다
나는 괜찮냐고 물었다. 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속상하지 않을 수가 있지?
딸은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청소년 수련관에서 가는 물썰매 타기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프로그램 체험장에 가려면 전주에서 다른 지역으로 20분 정도 이동해야 했다. 딸은 방방 뛰었다.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 외부로 나가는 게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물썰매 타는 시늉을 하다가 물을 먹고 어푸어푸 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함께 간 물놀이가 떠올랐다. 설레임, 그날 냇가 냄새, 하늘 찢어질 듯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떠올랐다.
청소년 수련관에 도착했다. 방방 뛰는 걸음으로 딸은 친구들 사이로 들어갔다. 체온 측정을 했다. 딸에게 버스 밖에서 손을 흔들어 주기 위해 밖에서 기다렸다. 코로나 때문에 이러한 활동을 보내는 게 오랜만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변해버린 일상에서 이 순간도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에 딸은 제 친구에게 물었다.
“나랑 버스에서 같이 앉자!”
“어.. 나 가영이랑 앉기로 했는데...”
딸은 그대로 버스에 올라탔다. 아이가 거절을 당했다. 누구랑 뭐해서 누가 삐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내 눈 앞에서 딸이 거절을 당하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참 당황스럽고 기분이 찝찝했다. 그리고 아이가 프로그램을 하고 돌아왔을 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고민했다.
미숙이는 그야말로 인싸였다. 공부면 공부, 체육이면 체육 못 하는 게 없었다. 그리고 좀 웃겼다. 반 친구들 앞에서 개그 공연을 하고 우리를 많이 웃겨 주었다. 패션 감각도 뛰어났다. 똑같은 교복을 입었는데도 미숙이는 달랐다. 교복마저도 잘 어울렸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다. 난 미숙이랑 앉고 싶었다. 미숙이는 미안하다고 했다. 미숙이는 다른 친구와 짝이 되었다. 그리고 난 재화와 앉았다. 재화는 나에게 잘해 줬지만 수학여행 내내 찝찝했다. 미숙이와 같이 앉지 못해서 슬펐다. 미숙이가 다른 친구랑 노는 것을 슬쩍슬쩍 훔쳐봤다. 나는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미숙이는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 상황이면 넌 딸에게 뭐라고 말해 줄 거냐고 물었다. 친구는 말했다. “딸이 참 속상했겠네. 그래도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 사람이 되렴” 이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대사를 연습했다. 헛소리가 나올까 봐 차에서 몇 번을 연습했다. 버스가 도착했다. 아이가 버스에서 내렸다.
“지수야, 재밌게 놓았어?”
“응, 물썰매도 타고 물놀이도 하고 진짜 재밌었어”
“오늘 정말 속상했지?”
“아니? 뭐가? 나 하나도 안 속상했는데...”
“오늘 친구한테 버스에서 같이 앉자고 했는데 못 앉아서 속상하지 않았어?”
“선생님이 코로나 때문에 한 명씩 앉으라고 하셨어. 엄마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아이는 물놀이가 고단했는지 바로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라는 질문에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는 말한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라고. 딸을 키우며 나를 마주한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다시 보게 된다. 어린 시절을 나를 불러다가 토닥거리고 따스한 품으로 안아 줬다. ‘괜찮아,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해도 괜찮아.’ 올해 10살이 된 딸은 10대에 들어섰다고 의기양양하다. 나이가 한 자리 숫자에서 두 자리 숫자로 나이 먹었다고 어른인 척을 한다. 엄마를 가르치는데 귀엽기도 하고 가소롭기도 하다.
모녀 사이 전쟁에서 “너 같은 딸 꼭 낳아서 키워라!”라고 친정 엄마가 한 말은 저주가 아니었다.
딸은 바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