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May 28. 2021

코로나, 어쩌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문제

2021.05.07


“Toward a Nuclear-Free World.”


2008년 1월 15일, Wall Street Journal에 게재된 기고문의 제목이다.


올해 2월에 별세한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페리 프로세스”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닉슨·포드 행정부에서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초석을 다지는 등 미국의 외교안보전략을 진두지휘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리처드 루거 전 상원 외교위원장과 함께 구 소련 지역의 대량살상무기를 확보 후 폐기하는 “넌-루거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추진한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이 공동으로 집필한 기고문이었다.




핵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은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서 1957년에 국제 원자력 기구(IAEA)가 설립되었다. 핵무기를 아직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이 핵 개발을 하지 않는 대신 평화적 용도로 원자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핵확산방지조약(NPT)은 1970년에 발효되었다.


이 외에도 원자력 관련 기술, 부품과 장비에 대한 다자적 수출통제를 체계화하기 위한 핵 공급국 그룹(NSG)은 1975년부터 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으며, 핵무기 개발 및 성능 개선을 위한 핵실험을 금지하는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은 1996년에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었으나 아직 발효되지 않았다.


조약당사국은 조속한 일자 내에 핵무기 경쟁 중지  핵군비 축소를 위한 효과적 조치에 관한 교섭과 엄격하고 효과적인 국제적 통제 하의 일반적  완전한 군축에 관한 조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성실히 추구하기로 약속한다. (참여연대 번역본)


NPT 제6조의 내용이다. 한마디로 핵보유국은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기 위한 노력을 “성실히 추구하기로 약속한다”는 선언이다. 발효 후 이미 50년이 지났지만, 인류의 완전한 비핵화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북한과 이란의 상황뿐만 아니라 기존의 핵보유국인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각자 핵무기의 현대화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 내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17년에는 핵무기 폐기 국제 운동(ICAN)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브라질이 유엔 총회에서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제안했지만, 핵보유국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국가들도 참여하지 않았다.


핵무기가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 그 자체를 반대하는 이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목표에 다다르는 과정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장벽이 여전히 높아 보인다.


인류는 과연 핵무기가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오늘 점심을 사러 가는 길에 한 일일 시사 팟캐스트를 듣다가 귀를 의심했다. 대다수의 전문가가 미국에서는 코로나 19에 대한 집단 면역을 달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팬데믹의 초기에는 인구의 60-70%만 접종이 되어도 집단 면역이 달성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작년 연말부터 영국, 브라질, 남아공 등 세계 각지에서 전염성이 높은 변종이 출현하면서 집단 면역의 하한선이 90% 이상으로 조정되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백신 접종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인근 지역만 봐도 이를 체감할 수 있다. 스탠퍼드 교내 병원에서도, 카운티 보건 당국이 운영하는 시설에서도 지난주에 사전 예약 없이 접종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백신 공급이 수요를 초월한 것이다. 팬데믹 초기에 화장지를 구하지 못해서 초조함에 휩싸이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작금의 상황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직업이나 건강 상의 이유로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백신을 맞을 사람들은 이미 접종을 상당 부분 마친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러 이유로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들 사이에 거대한 “눈치게임”이 진행되면서 접종 속도가 벌써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화요일의 기자회견에서 주요 스포츠 리그를 통해서 팬들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과 연결된 각종 프로모션을 추진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로 연방 정부, 주 정부, 카운티/시 정부에서는 백신 접종률을 높일 묘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주저하는 인구의 비중이 비교적 높은 편이다. 현재로서 백신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보다 코로나 19를 벗어나기까지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으로 20-40년 동안 미국 내 접종률이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 19 집단감염이 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암울한 예측도 들려온다.




영국의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가 1796년에 인류 최초의 백신인 천연두 백신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이로부터 184년이 지난 1980년, 세계 보건 기구는 천연두가 박멸되었다고 선언했다. 백신의 개발과 대규모 접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한 전염병을 박멸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게이츠 재단을 비롯한 여러 국제단체가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19도 백신 접종만으로 퇴치할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의 예상을 뒤엎고 불과 1년 만에 임상시험을 거친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코로나 19와의 공존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이라도 코로나에 걸릴 수 있다. 원문과의 맥락은 다르지만, “과학에는 100%란 없다”는 김상욱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생명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그저 중간에 지쳐서 포기하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6피트, 너무나도 먼 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