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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28. 2021

6피트, 너무나도 먼 거리

2020.03.18


6피트.


"Shelter in place" 행정명령이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모두가 서로의 건강을 위해서 유지해야 되는 최소한의 거리다. 잠깐 바람을 쐬러 혼자서 기숙사 밖으로 산책을 나갈 때에도 좁은 길은 피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기차를 탄 승객들의 사진을 보면 듬성듬성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친밀한 사이여도 다가설 수 없는 최소한의 거리가 있으며 그로 인한 외로움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거리를 숫자로 정확히 나타낼 수 있을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더욱 무색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 와중에 일부 시민의 행동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나날이 엄중해지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고령 인구의 비율이 높은 지역인 플로리다의 해변에 친구들과 놀러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대학생의 얼굴이 저녁 뉴스에 비치는가 하면, 일부 정치인은 경기 불황을 막아야 한다며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궁극적으로는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에 이런 행동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건강하더라도 자신이 마치 이미 보균자일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말도 들린다. 물론 전 국민 행동 지침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 하다가 간혹 실수를 할 수는 있고,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다. 절대로 얼굴을 만지지 말라는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수시로 얼굴을 만지는 당국자와 전문가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체감하며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그런 규칙을 가볍게 여기거나 적극적으로 어기는 행위는 그 의도와 상관없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미시경제 개론 수업에 흔히 등장하는 "부정적 외부효과"라는 개념이 앞으로 설명될 때는 코로나 19가 반드시 언급될 것만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은 과연 어떠한 것인지 더욱 주의 깊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햇볕이 쏟아지는 마이애미의 해수욕장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해맑게 웃으며 질병통제관리본부와 백악관의 권고사항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학생의 얼굴을 보면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그 학생이 한 말의 기저에는 "나는 스스로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고 있지 않으니 하나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은 우리에게도 결코 생소하지 않다. 오히려 "아무런 피해를 주고 있지 않다"는 믿음을 넘어서 "긍정적인 영향만 끼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작금의 위기가 지나간 후에도 자신이 '보균자'일 수도 있다는, 아니 어쩔 수 없는 '보균자'라는 사실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최근 여러 기사를 읽으면서 '무증상 감염자'라는 표현이 가장 섬뜩하게 다가온다. 본인이 느끼는 '증상'이 없다고 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느끼는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에 그 영향은 결국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는 언제나 주변의 환경을 어떤 색깔로 물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피하며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최근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현실도, 모두가 어떤 형태의 '보균자'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그 6피트의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다가와주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진심 어린 소망이 있어야만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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