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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29. 2021

워싱턴 주, 킹 카운티

2020.03.12

워싱턴 기념탑 (2015.04.15)


미국에서 코로나 19 확진 사례가 처음 발생한 시애틀 지역은 워싱턴 주 킹 카운티에 속해 있다.


원래는 제13대 부통령 윌리엄 킹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6년에 킹 카운티 의회는 노예 소유주였던 정치가의 이름을 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에 따라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의 이름을 대신 사용하자는 안건을 의결했고, 2005년에 주지사가 관련 법안에 서명하면서 이 지역의 이름이 바뀌었다.


모두의 건강을 위해서 평범한 일상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요즘의 상황을 보면서 1963년 4월 16일에 마틴 루터 킹이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옥중서신이 떠오른다. 버밍햄까지 찾아와서 시위에 동참해야만 했던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호소한다.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 We are caught in an inescapable network of mutuality, tied in a single garment of destiny. Whatever affects one directly affects all indirectly.


워싱턴 DC에 있는 마틴 루터 킹 기념비에 새겨져 있기도 한 유명한 문구다. 거의 모든 사람은 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부당한 일을 겪는다면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는 추상적인 명제에는 동의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훼손된 정의는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킹은 그저 어떤 두루뭉술한 명분이나 막연한 개념으로서의 정의를 말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의 부주의한 행동은 실제로 수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본인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 인과관계는 분명히 성립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에 그 피해는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코로나 19가 이 현실을 밝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파생되고 퍼지는 것은 전염병만이 아니다. 병균이라는 물질로 인해 육체의 질병이라는 가시적인 결과로 드러날 뿐, 작금의 판데믹이 지나간 후에도 인간관계의 본질은 동일할 것이다.


'자가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모두가 생명을 해치는 병을 어떻게 차단할지 고심하는 모습을 보면서 묻게 된다. 생명을 유익하게, 일상을 평온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어떻게 최대한 빠르게 확산시킬지 이만큼 고민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지금이 바로 그 고민을 각자의 자리에서 더욱 절실하게, 더욱 치열하게 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를 넘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어쩌면 상식과 기본예절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충실히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There's no question of heroism in all this. It's a matter of common decency. That's an idea which may make some people smile, but the only means of fighting a plague is — common decency.


손을 자주 씻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유지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본 행동 수칙이 유독 강조되는 것은 평상시에 그만큼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아무 두려움 없이 모두가 거리로 나와서 서로 어울릴 때, 그때까지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것은 당연히 지킬 것들을 조금이라도 더 충실히 지키는 훈련이 아닐까. 그리고 그동안 모두가 무사하기를, 혹시라도 아프게 되는 이들은 속히 건강을 되찾기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위로를 얻기를 서로 살피며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이태리에서 "andrà tutto bene"(다 괜찮을 거야)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어두운 때일수록 가장 흔한 위로가 가장 큰 힘이 되고,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 가장 밝게 빛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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