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Dec 30. 2021

일시정지

2021.12.28

2014년 여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친구의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Don’t Look Up>을 40분쯤 보다가 급히 할 일이 생각나서 잠시 재생을 멈추고, 창을 끄고 일을 하다 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예술에 있어서 관객의 편의가 얼마나 반영되어야 하는가.


11월 말, 영국 가수 아델의 요청으로 스포티파이가 앨범 내 곡들의 셔플 기능을 기본 설정이 아닌 옵션으로 바꾸기로 했다는 기사를 봤었다. 사용자가 별도로 설정을 하지 않으면 원래 앨범의 곡 순서대로 곡이 재생되는 것이다. 음악가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면서 앨범의 구성과 곡 순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거듭하는데, 창작자의 의도를 존중해줬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요청을 들어준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이루는 네 악장을 셔플로 감상해도 괜찮다고 할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고, 톨키엔의 <반지의 제왕> 3부작을 2권 중간쯤부터 읽기 시작해도 무난하다고 주장하다는 사람도 별로 없을 터. 스포티파이의 결정이 주목을 받은 건, 그동안 우리가 작품의 예술성이나 창작자의 의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만큼 자신의 편의를 앞세웠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를 보다가 맘대로 멈추고 다른 일을 하다 보니 감독과 제작진, 출연진에게 마음 한 구석에서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떠나지 않는다.


아마도 오늘은 시간이 안 되고, 내일 마저 봐야 할 것 같은데.


작가의 이전글 3박 4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