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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Apr 27. 2022

나사못

2022.04.27


오슬로의 한 박물관에 전시된 프람(Fram) 극지방 탐사선. "프람"은 노르웨이어로 "앞으로"를 의미한다. (2013.07.13)


내가 다짜고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통 터지지 않느냐고 묻자 선배는 폭탄주를 한 잔 건네면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라는 것이었다. 나사못의 임무는 배가 어디로 가는지를 걱정하기보다 자신이 맡은 철판을 꼭 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대한민국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 김웅, <검사내전> 중


한 사람의 몫을 잘 해내고 있는 건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좁게는 지금 속한 직장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지,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밥값은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하지만 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일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적절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넓게 보면 누구나 어떤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 속에서 다양한 역할이 주어진다. 누군가의 가족이나 친구로, 동료로, 선후배로, 혹은 어떤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하루를 보내면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날들도 많다.


이렇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한 사람의 몫'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각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한 사람에게도 삶의 시점에 따라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다양한 역할을 맡으면서 매사에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기도 어렵고, 지금 처한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누구나 그 모호함을 안고 살아가지만, 가끔은 답답해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위의 저자도 아마 그랬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후배를 바라보며 여객선의 비유를 든 선배 검사의 속마음을 알 수 없지만, 보기에 따라서 "선장은 따로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방향은 선장이 정하는 것이니, 나사못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면 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공직자로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저자였기에 자연스레 납득이 되는 비유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비유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나사못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여객선의 모양을 알 수 없다. 여객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건 물론이다. 그저 자신이 물고 있는 철판만 보일 뿐이다. 거대한 배가 있고, 자신이 그중에 어떤 작은 부분을 고정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선장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알 길도 없다.


특히 한국처럼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향방을 홀로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나 집단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잔잔하다가도 때로는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거센 파도 가운데에서 이 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인빅터스>에서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고 선언하는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의 외침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떠한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인한 삶의 태도는 훌륭하지만, 혼자만의 노력과 의지를 과신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처럼,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사회는 어떤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다.




여객선의 비유가 주는 위로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성장을 좇아 새로운 역할에 도전을 하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그저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실수를 저지른다. 그렇지만 나사못 하나가 잠시 힘을 충분히 받치지 못해도 여객선 전체에 커다란 위기가 닥치지는 않는다. 물론 미세한 결함 하나가 유발한 나비효과로 커다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다시 제자리를 찾을 동안 주변의 나사못들이 그 삶의 무게를 지탱해주면 될 일이다.


"우리는 한 배를 탔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듯싶다. 우리 모두의 삶은 가늠할 수 없을만큼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다. '한 사람의 몫'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기 어렵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함께 지탱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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