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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11. 2022

위치에너지

2022.06.11

2013년 여름, 스웨덴 웁살라 대학 해부학 교실.


부모는 자녀에게, 스승은 제자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전임은 후임에게, 상사는 직원에게, 지도자는 구성원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물론 일방적인 영향은 아니다. 윌리엄 워즈워스도 “the child is the father of the man”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일단 맺어진 인연은 어떻게든 서로를 물들인다.


그러나 위에서 아래로 퍼지는 영향과, 그 반대 방향으로 끼치는 영향의 파급력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이, 지위, 권력 등 위계질서가 생성하는 중력은 강력하다. 그 위력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기에 자신의 위치에 따르는 책임이 있다. 정작 자신은 의식하지도 못하는 말과 행동의 습관들, 그리고 그 표면 아래로 비치는 태도와 가치관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영향을 남길 수도 있다.


대학원생 시절, 학부생 수업 조교를 하면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체감했다. 강의가 크면 클수록, 교수랑 직접 대화할 기회가 적을수록 학생들은 조교에 더욱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학부 1학년 신입생이 박사과정 2년 차 학생에게 부여하는 권위가 조교 입장에서는 버거울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직장에 복귀하고 나니 같은 문제가 다른 형태로 다가온다.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한 것은 맞지만, 절대적인 시간의 무게를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은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해도,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동료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실력이나 자질과 상관없이 순전히 구조적인 이유만으로 그런 것이다. 만 서른을 앞두고 이제야 경험과 관련 지식을 조금씩 쌓기 시작한다고 느끼지만, 업무에 대한 평가가 담긴 이메일을 기다리는 인턴의 관점은 다르다.


흘려보내는 영향이 좋을지, 나쁠지는 하기 나름이다. 어떤 가치관을 중심에 두고 있는지, 어떤 자세로 업무에 임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물론 사람이기에 언제나 한결같기는 어렵다. 실수도 잦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경험과 나이의 차이가 아직은 비교적 적다는 것이다. 떨어져도 와장창 깨지지는 않을 만큼의 높이라고 할까.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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