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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29. 2021

영감님

2021.04.14

다시 돌아온 분수 (2021.04.28)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제안한 “flow”(몰입)라는 개념이 있다. 소위 “flow state” 진입하면 주변의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약간의 몰입 상태와도 같은 경험을 가끔 하게 된다. 이런 순간을 “그분이 오셨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제는 비로소 그분의 정체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로 영감(靈感) 님이다.


저 멀리서 지팡이를 짚으며 터벅터벅 걸어오시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할렐루야를 외치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탄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선 시대 감성의 비주얼만 뜬금없이 떠오른다.


어떨 때는 한 단어나 문장만 툭 던지시고, 어떨 때는 특정한 비유나 예시를 알려주시고, 어떨 때는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오랜 시간 동안 머물며 큰 가르침을 주신다. 특히 오래 계실 때는 그 거침없는 flow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심리학의 flow와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다.


불시로 찾아오시는 변덕스러움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어찌 제자가 하늘 같은 스승에게 불평을 할 수 있으랴. 그저 찾아오실 때마다 급히 핸드폰을 꺼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메모를 받아 적을 뿐이다. 이 글도 갑자기 출몰했다가 홀연히 지평선 너머로 다시 사라진 영감님의 아낌없는 가르침 덕분이다.


오래 붙잡고 싶은 욕심을 눈치채셨는지 이번에는 두서없는 말 몇 마디만 남기고 떠나셨다. 부족한 글에 대한 책임을 전부 스승에게 돌리는 이 배은망덕한 마음도 아마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터.


그리고 사족이지만 제발 얼른 다시 오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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