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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29. 2021

경로의존성

2021.05.14


우리는 자신을 표현할  여러 사실들을 나열한다. 예를 들면 “나는 집돌이다혹은 “저는 오후 3 이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있다.


하지만 이 단편적인 사실들은 말하는 시점과 그 직전을 고려할 때만 비교적 정확한 것이 아닐까. 그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다 말하거나 기억하기는 어렵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20대 후반인 지금 아무리 커피에 찌들어 산다고 해도 돌잡이 때부터 굳이 커피 그라인더를 찾아와서 잡은 건 아니다.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빨리 바뀌는 생활습관도 있을 것이고, 쉽게 변하지 않는 부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자도, 후자도 실은 어떤 법칙이 아닌 대체적인 경향을 나타낸다.


아침형 인간이라도 가끔은 늦게 잘 수 있고, 야행성 인간이라고 해도 간혹 일찍 잘 수도 있는 법이다. 이 중에 우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 부분들을 통틀어서 “성격”이라고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사회과학에서 어떤 제도의 발전 과정을 묘사할 때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어떤 분기점에서 한 방향으로 가면 다른 방향으로 다시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을 지칭한다. 둘 다 일방통행인 양갈래 길로 표현할 수도 있는 개념이다.


하루를 보내면서 내리는 크고 작은 결정들이 누적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고, 어떤 길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이 중에 쉽게 되돌릴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동시에 정확히 아는 것은 쉽지 않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입자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오랜 친구들에게도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사실들을 알리면서 하루를 보낸다.


보면 볼수록 가장 솔직한 답은 이것인 것 같다.


“저도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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