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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야만 하는

2025.03.29

by 나침반
2023.03.13


그저 지나가야만 하는 시간도 있는 걸까.


태평양 상공을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늦은 밤에 애리조나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위에서, 스웨덴의 이름 없는 숲을 몇 시간째 지나는 기차에서도 어렴풋이 가졌던 의문이다.


새로운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낭만은 영원하지 않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목적지가 나타나기만을 고대하며 때로는 무미건조하고 때로는 숨 막히는 시간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조금만 더 힘내면 그때부터는 괜찮을 거야, 라는 격려는 언제나 고맙지만 이제는 그 말은 정직한 현실이 아닌 위로라는 것을 안다. 말을 해주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안다. 살아있는 한 누구에게나 종착점은 없고 경유지를 계속 거칠 뿐이다.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중요하다. 다만 그 과정을 견디고 버텨야만 하는 삭막한 시기로 여기지는 않았으면 한다. 긴장과 압박에 사로잡혀서 아무런 감흥도 없이 그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으면 한다.


끝내 도착하고 나서 그동안 창밖의 풍경을 더 유심히 보고 감상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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