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2025.12.31

by 나침반
가마쿠라 근처의 바닷가 (2025.12.18)

처음 가는 식당에서는 익숙한 요리를 고른다. 익숙한 요리가 맛있다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다시 방문할 때 조금은 낯선 요리에 도전할 마음이 생긴다. 생일처럼 특별한 날에 하는 외식이면 생소한 음식을 시도할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다. 흔한 음식을 맛있게 하는 식당을 찾으면 같은 곳에서 같은 메뉴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험의 경계를 서서히 넓히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생각과 감정이 제자리를 맴도는 시기가 쉽게 찾아온다. 예전과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면 비슷하게 반응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으면 이미 알고 있는 방향에서만 접근한다. 일종의 평형상태에 도달한 것이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흐르지 않는 물은 결국 탁해지니 갑갑한 기분도 든다.


그런 시기를 되돌아보면 공통점이 있다. 일상에 낯선 것이 거의 없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점이다. 새로운 글, 영화나 음악을 거의 감상하지 않았고, 이미 알고 지내고 결이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서 익숙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시간을 내서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가지 않았다. 외부의 충격이 없으니, 생각과 감정의 폭이 넓어질 리 없다.


물론 익숙함이 주는 위로가 있다. 누구나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경험을 추구한다. 매일매일 자신을 전혀 낯선 무언가를 향해 내던지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자아의 경계가 어디쯤 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그 벽을 허무는 것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항구가 있어야 수평선을 넘을 용기가 생기는 법이다.


그렇지만 익숙함도 과하면 해롭다.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의 관점으로만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갈수록 관성의 위력을 경계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은 굳고, 시야는 좁아지고, 감정은 이미 깊이 파인 계곡으로만 흐른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마다 약간은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섭취하다 보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바라보며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게 조금은 덜 억지스러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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