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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30. 2021

애틀란타, 그 후

2021.03.18

시청 탑에서 내려다본 스톡홀름 구시가지 (2013년 여름)


학부 3학년 때의 일로 기억한다. 해가 질 무렵, 한 선배와 같이 저녁을 먹으러 정문을 나서서 시내 중심가를 걷던 중이었다. 약간 어둡고 길거리에 사람이 많았던 탓에 한 어르신과 어깨가 부딪쳤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언성을 높이며 얼굴을 보고 "여기는 미국이야"라고 외치며 예의를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뒤돌아섰다. 몸은 잠깐 닿았을 뿐이지만, 순간 명치에 직격탄을 맞은 듯이 얼떨떨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 선배는 "너도 네가 미국인이라고 한마디라도 날리지 그랬니"라며 대신 화를 내주며 위로를 건넸다. 맞는 말이었다. 국적이 미국이라는 것은 엄연한 법적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에는 그 사실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공동체"에 속하는 누군가가 "너는 이 공동체에 속하지 않아"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확인해준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가족과 친척의 대다수는 여전히 한국에 있고, 대학교로 진학하며 미국으로 다시 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지냈던 기간이 훨씬 길었기에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복잡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 감정 속에 녹아있는 미국에 대한 여러 인상 중에는 감사하고 긍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10여 년 전 그 저녁의 순간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지난 16일에 애틀란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연쇄 총격 사건의 소식을 들으며, 그리고 판데믹이 발생한 이후 미국에서 동양인을 대상으로 가해지는 혐오범죄에 대한 소식들을 들으며 그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물론 그 사건들에 비하면 민망하고 언급할 가치도 전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이지만, 그 기억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안타깝게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 자동차 기업의 미국 시장 진출과 이로 인한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의 대량해고 사태에 앙심을 품은 한 실직자와 공장 관리자가 1982년 6월 19일에 결혼을 앞둔 중국계 미국인 청년 빈센트 친을 살해한 비극적인 사건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지금 언론을 통해서 드러난 최근의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2014년 가을, 뉴욕 유엔 본부 근처에서 유엔 인권최고대표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이 여러 인권 단체와 만나는 공개 회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알 후세인 인권최고대표는 그 자리에서 "일상적인" 인권 침해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신장 지역의 위구르족 탄압과 같은 중대한 인권 침해는 국제여론의 많은 관심을 받지만,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사건은 일일이 보도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알 후세인 인권최고대표는 일상 속에서 인권 침해를 겪는 피해자를 반드시 기억해야 하며, 그 무게와 심각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며, 작년 5월 25일에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촉발한 전국적인 시위를 바라보며 그 경고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성하게 된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우선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돕는 손길을 건네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스스로 차별적인 사고와 언행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주변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함께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직접 시위에 참여하고, 투표할 때 유권자로서 입후보자의 견해를 면밀히 검토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의 자리에서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폭발한 사회적 공분을 일종의 "창조적 파괴"로 이끌어서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유도하는 과정은 험난하다. 2010년 12월에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시위가 국제 정치의 지형을 뒤흔드는 대량 난민 사태를 야기하고 시리아에서 10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참혹한 내전으로 이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앞에서 각 개인의 책임은, 역할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구조적인 문제일지라도 사회적인 현상은 자연법칙과 같은 절대불변의 현실이 아니다. 그 동시에 어떤 한 사람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그 구조적인 현실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비단 사회과학 분야에서 다루는 철학적 논쟁만이 아니다. 우리는 개인의 노력과 변하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금세 길을 잃고 좌절하게 된다.




대학원을 시작하기 전에 약 2년 동안 워싱턴에 위치한 북한인권단체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아무리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동료들과 함께 자료를 번역하고, 언론 보도 동향을 정리하고, 보고서 초안을 첨삭하고, 행사 계획을 준비해도 북한의 인권 상황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고 있다는 의미 있는 징후를 찾을 수 없었다.


정치범수용소가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최근의 위성사진은 다시금 새로 입수되고, 중국에서 붙잡힌 탈북 난민이 강제북송의 위험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또다시 전해 들으며 깊은 좌절감과 공허함에 시달렸던 기억이 난다. 사려 깊고 너그러운 동료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아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2년의 짧은 시간도 그러했는데, 마치 1차 대전의 서부전선처럼 치열하고 처절한 여론전의 최전선에서 20년이 넘도록 숱한 정치적인 비난과 모욕을 감수하며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계신 북한 인권 활동가들의 사명감과 인내심은 어떠한 것인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 내막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불의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인권 운동에 뛰어든 활동가들의 상황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서 끝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대단히 어렵다. 스스로만 봐도 그렇다. 생각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쌓여온 선입견과 편견을 깨고 새로운 수로를 개척해서 생각의 흐름을 바꾸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있기 전에는 타인을 설득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사회적인 변화는 결국 그 구성원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로버트 F. 케네디가 1966년 6월 6일에 남아공 케이프 타운 대학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불의한 현실을 비판하며 남긴 연설은 읽을 때마다 깊은 울림을 준다.


홀로 역사의 흐름을 바꿀 만큼 위대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작은 부분을 바꾸기 위해 노력을   있으며,  세대의 역사는  모든 행동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수천 명의 평화봉사단 봉사자들이 수십 개의 나라에서, 고립된 마을과 도심의 빈민가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나치의 지배에 저항했고  중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모두 조국의 국력과 자유에 기여했습니다. 이처럼 다종다양한 용감한 행동들을 통해서 우리는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쓰이는지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이상(理想) 옹호할 때마다, 타인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행동을  때마다, 혹은 불의에 맞설 때마다 그는 작은 희망의 물결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생겨난 무수하고도 대담한 물결들이 서로 겹치면서 이루는 거대한 흐름은 가장 견고한 벽을 허물 것이며,  어떤 폭압이나 저항도 압도할 것입니다.


견고한 벽은 반드시 허물어지고, 빛은 끝내 어둠을 몰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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