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4
6411번 버스. 집 앞을 지나는 노선 중 하나여서 예전부터 자주 탔었다. 요즘도 한국에 들어갈 때 종종 이용한다. 하지만 작년 여름, 고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연설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그 버스에 그런 사연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말은 이미 진부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곧 존재하지 않는다고 너무 쉽게 착각하는 건 아닐까. 그 보이지 않는 모든 것 때문에,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수고와 헌신 때문에 수많은 누군가의 편안한 삶이 가능해진다.
물론 청소노동자, 환경미화원, 택배기사, 경비, 전선 수리공과 같은 직업이 이에 해당된다. 군인, 경찰, 소방대원, 구급대원, 응급 의사처럼 위기 상황을 예방하거나 이에 대응하는 모든 직업도 그렇다.
고 노회찬 의원처럼 사회의 “투명인간”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정치인도, 체육계의 성폭행 실태나 유기견 안락사와 같은 참담한 사건을 파헤치는 언론인도,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해부하고 진단하는 학자도 모두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간은 서로 붙잡아 주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신승훈이 “내일은 어쩌면 가장 가까운 기적"이라고 노래하는 것이 공감이 가는 이유다.
진정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고,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절망한다면 누구나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안전벨트는 없을지라도 비상시에 자신을 지켜주는 에어백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누구나 공감의 깊이에도, 상상의 폭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넬의 김종완이 노래하듯 우리는 모두 “몇 마디의 말과 몇 번의 손짓에, 또 몇 개의 표정과 흐르는 마음에, 울고 웃는 그런 나약한" 존재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라고 믿는 모든 말과 행동도 사실은 자신이 혼자 남고 싶지 않은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두려운 것도 실은 그로 인해 자신이 괴로운 것을 피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순수하고 온전한 이타심, 그 완전한 사랑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을 마시러 고개를 숙이면 수위가 낮아지고, 열매를 향해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가 위로 올라가서 영원히 갈증과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린 탄탈로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자기 자신조차도 완전히 알 수 없고,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순식간에 접할 수 있는 이 시대에도 지금 이 순간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알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아진 탓에 깊이 이해하는 것은 더 적어졌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각자의 내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어떤 과거를 거쳐서 나타났는지, 앞으로 어떤 미래로 이어질지 완벽하게 알 수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것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요구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무모한 희망을 오늘도 가져본다. 비록 이기적인 욕구로 인한 것이라도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지식을 과시하고 싶은 교만 때문이라도 세상에 대한 관심의 끈을 붙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 노회찬 의원이 말한 “투명인간"은 타인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서만 존재한다. 누구나 기본 설정은 자신에 대한 완전한 집중과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시다. 하지만 그 기본 설정으로 매일매일 경주마처럼 질주만 하기에는 눈으로 보이는 현실만도 너무 비참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그럴 수 없는 현실에 깊이 괴로워하면서도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결심하며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고 맹세한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되새겨본다. 그 동기가 순수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 세상에서 허락된 시간 동안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무너져가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미약하게나마 붙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