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May 31. 2021

우리도 거수경례를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2018.12.02/12)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에게 마지막 거수경례를 올리는 밥 돌 전 상원의원 (Drew Angerer / Getty Images, 2018)


1982년 어느 날, 국무부에서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을 다루는 젊은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백악관 상황실에서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교환원이 잠시 대기하라는 말을 하고 나서 당시 레이건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론, 자네가 레바논에 대해서 쓴 메모 하나를 읽었네. 많이 바쁘겠지만 시간을 조금만 내어 줄 수 있겠나? 미안하지만 물어볼 것이 많아서 그러네."


훗날 1993년의 오슬로 협정 등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협상을 미 국무부에서 조율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아론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이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기고한 글의 일부다.


무엇을 하면서 사는지보다도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와 존경은 상당 부분 그의 업적과 관련이 있다. 냉전의 종식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전환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여러 국내 정책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태도로 접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누구나 그렇듯 여러 논란이 있지만, 젊을 때부터 국가를 위해 헌신한 모습이 현대 미국 사회에 주는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밀러가 회상하듯, 그가 보여준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82년 당시 국무부 중동 분석관으로 일하던 밀러에게 부시와의 짧은 전화 통화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람이 자리를 빛내는 것이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드러낸다는 말이 떠오른다.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하면서 어떤 태도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것인가. 모두 시간이 지나면 잊힐 삶이지만, 잠깐이라도 기억될 수 있다면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정치적 앙숙이었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이 부시 전 대통령의 관 앞에서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며 김현기 기자는 묻는다. "언제부터인가 상대방이 '죽어야 끝이 난다'라고 생각게 하는 끔찍한 사회가 돼 버렸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행복할까. 누군가는 행복할까."


너무 쉽게 휘둘리는 칼에는 결국 자신도 다치기 마련이다. "나는 언제나 틀리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반대인 "나만 옳다"도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나 상대방의 단점이나 실수는 눈에 바로 들어오지만, 등잔 밑은 늘 어둡다. 순간의 비판과 비난은 쉽지만 오랜 성찰과 반성은 괴롭고 불편하다.


권력을 얻었을 때 스스로를 절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사람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민주화 이후 정권이 휘몰아친 정의의 강은 급류였다. 휩쓸린 사람이 부지기수, 익사한 선의가 산을 이룬다." 송호근 교수의 지적이다.


그 누구도 진실과 정의를 독점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인식 위에 세워진 것이 야당의 존재와 언론의 자유를 허용한 민주주의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와 방식을 제도로써 제한한 것이다.


모두 "저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제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하고, 모두 진정 선의를 가지고 행동해도 반드시 생각지 못한 폐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폐해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시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12월 10일,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이임사에서 기재부 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논란과 비판이 있더라도 자기 중심에서 나오는 소신을 펴야 합니다. 소신대로 할 수 없을 때 그만두겠다는 것은 작은 용기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바치는 헌신이야말로 큰 용기입니다. 헤밍웨이는 용기를 "고난 아래서의 기품"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도전과 과제에 기품 있게 맞서기 바랍니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이 믿는 바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리고 자신과 동의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밥 돌 전 상원의원의 거수경례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64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