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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3. 2021

2020 미국 대선 개표 단상

2020.11.05

플로리다의 한 개표소 (출처: Saul Martinez / The New York Times, 2020)


지금 이 시간에도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애리조나, 네바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유례없이 오랜 시간 동안 접전이 이어지면서 온 나라의 이목이 개표소에 집중되고 있다. 개표 과정을 상세히 취재한 기사와 영상도 심심찮게 보인다. 일부 주 정부는 투명성 제고를 위해 개표소 내부의 실시간 영상을 일반 대중에게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마스크를 여러 겹 쓰고 투표 현장을 지켰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럿이 앉아 묵묵히 투표용지를 분류하는 사진을 보면서 감동을 느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전히 많은 걱정이 앞서고 혼란스러운 시기이지만, 투표부터 개표까지의 모든 과정이 수많은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름 없는 헌신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우리들 합중국 인민은 보다 완벽한 연합을 형성하기 위하여"라는 담대한 선언으로 시작된 정치 실험이 결국에는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을 붙잡고 있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것일까.


대선 결과에 대한 분석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겠지만, 이미 남북전쟁 발발 직전인 1860년만큼 정치적 양극화(특히 도시와 비도시 지역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바로 이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던 1865년 3월 4일, 링컨 대통령이 두 번째 취임식에서 미국 국민에게 남긴 연설이 떠오른다.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원한을 품지 않고, 모두에 대해 자비를 품고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대로의 정의를 굳게 믿고서, 우리가 하고 있는 과업을 끝맺고 이 나라의 상처에 붕대를 감고 싸움터에서 쓰러진 사람과 그 미망인과 고아를 보살피며, 우리 자신들 사이에서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바르고 지속적인 평화를 이룩하고 소중히 간직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다하고자 계속 분발합시다.


많은 사람이 개표 결과에만 몰두하고 있던 오늘, 미국 전역에서 10만 명이 코로나 확진 소식을 통보받았다. 그리고 여러 주에서 그보다 근소한 차이로 승자가 결정될 정도로 치열했던 이번 선거의 결과는 머지않아 확정될 것이다. 전염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동료 시민의 참정권을 위해 투표용지를 철저히 확인하는 누군가의 모습 속에서, 처참히 찢긴 나라를 바라보던 링컨의 호소 속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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