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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3. 2021

100년의 세월

필립 공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2021.04.17)

윈저성 성 조지 성당에서 거행된 장례예배 중에 홀로 앉아 있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출처: Jonathan Brady / AP, 2021)


가족이 영국으로 이사한 지 몇 달만인 2002년 6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50주년(Golden Jubilee)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국에서 열렸다. 축하 행사에 참석했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에 다니던 크랜필드라는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받은 50주년 기념주화는 한국 집 서랍 어딘가에 여전히 있다.


2001년 12월에 처음 도착해서 지내던 방문연구원용 기숙사에서 아침마다 파란 스웨터 위에 우비를 입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고, 어두침침한 학교 강당에서 "God Save the Queen"을 부르고 주기도문을 영어로 암송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2년 반이라는 아주 길지는 않은 시간을 영국에서 보냈다. 영국 곳곳을 구경하면서 쌓은 가족과의 추억도,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주셨던 여러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함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영국 억양은 없어진 지 오래지만,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 덕분에 영국에 대한 동경심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부군인 필립 공의 장례식이 오늘 거행되었다. 장례식의 사진들에는 익숙한 모습의 윈저 성 앞으로 근위병들과 왕실 기포병들이 지나가는 장면이 담겨 있다. 장례식 예배가 열린 성 조지 성당에 홀로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을 보니 절로 숙연해진다.


향년 99세. 그의 일생은 영국의 현대 역사의 한 단면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의 코르푸(키르케라)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영국에서 자라고,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에 영국 해군에 입대했다. 세계 2차 대전 도중에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시칠리아 상륙 작전에 참여하는 등 여러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1947년 11월 20일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당시) 엘리자베스 공주와 결혼식을 올리고, 1952년 2월 6일부터 지난 4월 9일에 별세할 때까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동반자로 7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70 년의 시간이 어땠을지 쉽게 가늠할  없다. < 크라운> 보면서 작가와 연출가의 상상력을 빌리더라도 그렇다. 어떤 의미로는 "해가 지지 않는다" 수식어가 붙었던 대영제국에 해가 지는 시기였다고도   있다. 1956년의 수에즈 위기 외에도 수많은 사건을 거치면서 세계 초강대국의 자리는 미국에 넘겨졌고, 1950-60년대에는 많은 식민지가 독립을 선언했다. 30  동안 이어진 북아일랜드 분쟁은 1998년이 되어서야  매듭이 지어졌고,  과정에서 필립 공의 삼촌인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도 1979년에 아일랜드 공화국군 임시파(PIRA) 감행한 폭탄 테러에 목숨을 잃었다.


급기야 2010년대에 들어서서는 스코틀랜드에서 독립을 향한 정치적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고, 2016년의 주민 투표 결과에 따라 영국은 지난 1월 31일에 유럽 연합을 공식적으로 탈퇴했다. 이로써 유럽 연합의 일원인 아일랜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미래도 다시 불투명해진 상태다.


불과 1달 전, 해리 왕자와 메건 부부의 인터뷰가 공개된 후부터 영국 왕실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던 중에 윈저 성으로부터 비보가 들려왔다. 그 내막을 자세히 알 길은 없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해리 왕자의 모습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 듯싶다.


필립 공과 영국 왕실의 역할에 대한 평가도, 영국의 지난 역사에 대한 견해도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평가를 잠시 멈추고 싶다. 100년이라는 일생의 무게 앞에 어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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