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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5. 2021

7주기

2021.04.16

2021.04.06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풍랑이 몰아치는 시기에 '폭풍이 지나간 다음에 바다는 결국 잠잠해질 것입니다'라는 뻔한 말 밖에 못한다면, 경제학자들은 정말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현대 경제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23년에 "결국에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평형을 되찾을 것"이라는 경제학계 일각의 주장을 통렬히 비판하며 적은 글이다.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시스템'이 얼마나 바뀌었는가,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난다면 과연 더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 누군가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순진한 생각이겠지만, 이국종 교수가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강연에서 가리키는 사회의 '시스템' 결국에는 개개인의 인식의 총합에 수렴할 것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제도의 속성이고, 그 나름의 장점이 있기에 사회적 합의로서 그 제도가 존재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날 때, 혹은 시스템이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지 않을 때, 그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힘을 잃는다.


개선의 가망이 없기 때문에 급진적인 혁명으로 완전히 갈아엎어야 할지, 점진적인 개혁으로 부작용을 살펴보며 조금씩 고쳐나가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뉠 수 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기본적인 인식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 인식을 토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야만 한다.




7년 동안 스스로의 인식이 과연 얼마나 변했는가. 아마 의견을 담대하게 주장하는 순간보다는 눈 앞의 현실에 타협하는 순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이국종 교수가 언급하듯이, 중상을 입은 등산객을 병원으로 급히 이송하기 위해 산에 비상 착륙한 헬기를 보며 "김밥에 모래가 들어간다"라고 불평한 누군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개인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제도도, 시스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세계 1차 대전 후의 위태로운 경제 상황을 지켜보던 케인스의 비판은 "그럼 우리는 손을 놓고 있어야만 한다는 말입니까"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무엇을 해야 하나요?"라는 절규 앞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얼마나 진실되게 고민하고 답했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을 안고 가는 유가족과 생존자들, 다시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가는 학생들이 떠오르는 하루다. 그들이 부디 외롭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 아픔이 어떤 '거대 담론'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가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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