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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31. 2021

기댈게

2021.03.12

해 질 녘의 금문교 (2019.02.22)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마워."


몇 년 전, 친구가 통화 중에 건네준 한 마디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일에도 휘청거리고 요동치던 자신의 일상에 비해서 차분하고 묵묵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의 모습이 그 나름대로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었던 모양이다. 어떤 대단한 심리상담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가끔 통화를 하며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떨었을 뿐인데, 그때 지나가듯 남긴 그 한 마디에 대한 고마움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하지만 그때부터 알게 모르게 어떤 부담감이 마음속에 자리 잡혔던 것 같다. 주변에 알고 지내는 누군가가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 있을지 모르니, 의지할 곳을 한 군데라도 더 찾고 있을지 모르니 최소한 내가 먼저 약한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지, 라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생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어떻게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경험한 적이 있어서일까.




누군가를 위해서 정말 최선을 다 했다는 말을 할 자신은 지금도 없다. 그래도 최소한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강박이 실은 위선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젠가 누군가가 진지하게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일상 속에서 감정의 부침을 느끼면서 살아가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말수가 급격히 적어지는 성격 탓에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다. 가족에게, 친한 친구들에게 같은 질문을 묻는다면 분명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고, 기억하기에도 민망한 순간들은 늘 있었고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 쓰레기 지대처럼 머릿속을 휘젓는 유독물질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냥 의식의 흐름대로 내지른 야심한 시간의 카톡을 구독 신청하지도 않은 정기 뉴스레터처럼 수없이 받아도 차단을 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를 건네는, 그런 경이로운 인내와 자비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가까이서 보면 아름답기만 한, 고요하기만 한 삶은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법정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켜본 문유석 판사는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 나와 지금까지 겪어온 사람들의 모습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누구나 자기 몫의 아픔을 안고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굳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의 몫도 포함해서 말이다. 직업병 때문일까, 어떤 때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고통만큼은 평등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도 권력자도 스타도 화려한 겉껍질 속에는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가득했다. 건강 때문에 가족 때문에 자식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남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 흔하디 흔해 보이는, 건강하게 자라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아이를 갖고 키우며 사는 일들이 실은 얼마나 전쟁같이 힘든 일인지...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의 짐을 덜 것이고, 누군가는 한 친구와 집 근처의 공원을 걸으며 평정심을 되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치 온 지구를 어깨에 짊어진 아틀라스처럼 모든 것을 홀로 안고 가겠다는 고집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기둥들보다 세모 무늬로 배치되어 서로 기대고 있는 여러 기둥들이 훨씬 큰 하중을 견딜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여과 없이 보고도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마음의 빚을 다른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건네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윤종신의 "기댈게" 중의 가사다.


고민 가득해 지새운 밤들에
안쓰러운 목소리
너의 눈빛 바라보기 미안해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앓던 마음 보이기가 싫었던
미련한 자존심 지켜주던 너

변해가는 나를 봐주겠니
나도 널 지켜볼게 혹시 지쳐가는지
어떻게 항상 행복해
미울 때 지겨울 때도
저 깊은 곳에 하나쯤 믿는 구석에
웅크린 채로 견뎌

등을 맞대 보면 알 수 있어
우린 서로를 기댄 채 살아가고 있음을
그 편안함이 소중해 살짝만 뒤돌아보면
입 맞출 수 있는 거리
그렇게 지탱해줘 우리 날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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