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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30. 2021

회복탄력성

2021.04.20 / 2021.05.18

산호세 시립 장미 공원 (2021.05.17)


어머니께서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셨던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근무시간 동안 위급한 상황에 늘 마주치고, 환자가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셨기 때문일까. 어릴 때 친구랑 놀다가 넘어져서 다쳐서 집에 들어오면 그 아픔에 공감해주지 않으시고, 상처를 쓱 보고서는 “안 죽어”라는 무덤덤한 한 마디만 하시고 반창고를 꺼내셨다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숙련된 전문가의 판단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릎이 까진 어린아이가 가장 바라는 것은 의료계 종사자의 능숙한 응급처치가 아니라 엄마의 따뜻한 위로일 것이다.




인간관계가 매일 만사태평인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하루를 보내면서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이든 우리는 오해를 하고 오해를 받고,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는다. 상대방에게 실망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바뀌지 않는 모습에 좌절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한 마디나 어떤 행동이 하루를, 혹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어둡게 드리우는 경험을 한 번씩은 하기 마련이다.


이런 일들은 마치 백신처럼 우리에게 더 큰 사고에 대한 심리적 면역반응을 심어준다. 우리로 하여금 언제 몰아닥칠지 모르는 폭풍을 앞두고 모래주머니를 하나라도 더 쌓아 올리고, 방파제를 조금은 더 튼튼하게 건설하게 한다.


백신도 부작용이 있듯, 그 과정이 유쾌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하나도 없다면, 우리는 아무런 경각심도 없이, 아무런 방어기제도 없이 작은 충격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모든 일들이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일어나서 너무 다행이었던" 경험으로 서서히 드러날 수도 있는 법이다.




그 당시에는 일상을 집어삼키던 일들을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서 종종 깨닫게 된다.


“별 일 아니었네.”


마치 화창한 날에 비둘기 편대에게 난데없이 폭격을 당하거나, 강아지가 인도에 무심하게 매설(?) 해놓은 지뢰를 밟는 것처럼 금방 지나가고 잊히는 가벼운 일에 중심을 잃고 휘청거릴 때도 있다. 마치 KO 펀치를 명치에 정통으로 맞은 듯 아파하며 기절했었지만, 실은 그저 살짝 멍이 드는 가벼운 잽이었다는 것이 뒤늦게 보이기도 한다.


어떤 타격을 받았을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안 죽어”일지도 모른다. 물론 따뜻한 위로도 필요하다. 그러나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의 시작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 잠시라도 뒤로 물러서서 그 상황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면, 누군가의 객관적인 진단이 제일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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