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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30. 2021

뒷모습

2011.12.05

삿포로 호로히라바시 지하철역 (2017년 8월)


때로는 작별인사를 하고 나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다가 혼자서 뒤를 돌아보기도 한다. 서로 오랫동안 보지 못하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쉴 새 없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에 삼켜질 뒷모습을 잠시라도 간직하며 이미 끝나버린 만남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하고 싶어서일까.


자신에게는 소중한 사람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이 지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 사람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혼자라는 것이 다시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에.


하루의 끝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그날을 잠시라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수많은 하루의 어렴풋한 기억 속으로 오늘의 기억도 어김없이 흩어질 것이다. 하지만 사라지기 직전의 그 순간 동안 손을 내밀어서 잠시라도 붙잡아본다.


뭔가 아쉬워서 그런 걸까. 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일까. 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일까. 잘못한 것이 있어서일까,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 것이 뭔가 있는 것일까.


버스 정류장에 북적이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 지하철 역 출구의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 어느새 횡단보도를 건너서 점점 작아지는 뒷모습.


대화의 흐름이 느슨해지며 통화가 끝날 무렵의 그 순간. 문자를 주고받다가 “이제는 가야 할 것 같아,” 그 아홉 글자가 보이는 순간.


이 모든 모습, 이 모든 순간들.


그때 그 순간을 나누고 있는 사람이랑 헤어지기가 싫은 걸까. 만남을 통해 서로의 고독함을 잠시라도 잊었던 그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걸까. 다시 온전히 혼자가 되면, 다음번에 만날 때까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언제나 건강하게, 그리고 평안하게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라는 것.


서로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고마울 뿐이다.


어쩔 수 없이 혼자인 것을 알면서도 서로에게 잠시라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 오늘도 다시 일어나서 걸어갈 수 있는 힘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카페에서 나와서 작별인사를 하고 머뭇거리다가 뒤를 돌아볼 때, 그때 길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도 모두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기에 오늘도 숨을 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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