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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3. 2021

어떤 오지랖의 흔적

일관성 없는 관심사의 기록 (2021.03.22)

덕스포드 에어쇼에 참가한 레드 애로우즈 영국 공군 특수비행팀 (2003.09.07)


"T자형 인재"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다. 한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되,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얕고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재를 형상화한 것이다. 다가올 시대에는 한 우물만 파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우니, 타 분야의 인재와 자유롭게 소통하며 교류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면 "T자형 인재"라는 표현보다는 "납작 찌그러진 一(일) 자형 인간"이 정확한 것 같다. 두루두루 관심이 많아서 오지랖은 언제나 지나치게 넓었고, 시간과 집중력과 의지는 턱없이 부족했다.


선택과 집중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친척들과 함께 특별한 날에 호텔 뷔페를 가서 굳은 다짐으로 철저한 사전 탐색을 마친 후에 음식을 주도면밀하게 공략해도 매번 후회가 남았다. 식욕은 원대하지만 위의 크기는 결국 한정되어 있으며, 점심 영업시간은 애석하게도 항상 끝이 있다. 음식에 대해서도 이러할진대, 관심사에 대한 선택과 집중은 앞으로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이 시점까지 관심사가 발전한 경로는 마치 한계령을 넘는 44번 국도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꼬불꼬불했다. 비틀스의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바로 이런 비유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이 뇌리를 스친다.




“꿈이 무엇이니”라는 질문에 대해서 기억나는 가장 이른 대답은 경찰이다. 아마도 3년 동안 다녔던 동네 초등학교 바로 옆에 파출소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고 포켓몬의 로켓단과 같은 나쁜 놈들을 잡는 포돌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이내 알 수 없는 이유로 꿈은 기상학자로 급변했다. 아침마다 신문이 배달되면 현관 밖으로 나가서 가져온 뒤에 날씨 면을 바로 펼치곤 했었다. 명절 때 집에 들른 친척 분들에게 태풍 예상 진로도를 손으로 어설프게 따라 그린 수많은 그림들을 가지고 와서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려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셨을 것만 같다.)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 선에서는 흔치 않은 기상 상황을 직접 밖으로 나가서 경험하고 싶어 하는 무모한 호기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 9살이 되던 무렵에 가족이 영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이미 정상적인 경로를 이탈한 관심사는 방향을 잃고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세계 1, 2차 대전의 전투기 조종사인 Biggles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시리즈에 푹 빠지면서 본격적으로 비행기 모델의 세계에 '입덕'했다. F-15, F-18, B-2, F-117, F-16, 유로파이터 타이푼, 호크 T1A (Red Arrows) 등 지금까지 기억나는 모델만 해도 여러 개다.


모델 조립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에어쇼 관람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수직으로 이륙하는 해리어 전투기를 근거리에서 보면서 너무나도 해맑게 웃는 막내를 위해서 영구적인 청력 손상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신 부모님의 사랑의 깊이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비행기에 대한 관심과 어릴 때 남겨진 영국에 대한 좋은 추억이 겹쳐서인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덩케르크>를 매우 좋아한다. 물론 <덩케르크>와 <8월의 크리스마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이터널 선샤인>을 동시에 좋아하는 취향의 모순을 명쾌하게 설명할 길은 없다.




2년 반 동안 영국에서 지내면서 여러 선생님에게 진 빚도 결코 적지 않다. 6학년 역사 수업의 "local history project"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인근 지역의 어떤 건물이나 장소를 선택해서 그곳의 역사를 조사하는 과제였다. 집에서 그레이트 우즈 강 강가를 따라서 10분만 걸으면 있던 베드퍼드의 중심에 위치한 성 바울 교회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교회의 외형을 따라 그리면서 그 시대적 특징을 분류하고, 시내에 있는 시립 중앙 도서관에서 오래된 자료를 뒤적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그토록 순수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탐구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관심사의 큰 줄기는 우연한 계기로 학교에서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읽게 되면서 또다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수백 년 동안 풀리지 않은 난제와 씨름하며 인생을 바친 여러 수학자들의 환희와 절망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4년에 한국에 돌아온 후, 같은 저자의 <빅뱅>을 읽으면서 과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지구에 도달하는 빛의 파장을 분석해서 별을 구성하는 원소를 규명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입자를 가속하고 서로 충돌시켜서 우주의 원리를 탐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리처드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 리처드 파인만의 자서전 등 여러 대중 과학 서적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워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학문적 열정으로 둔갑된 과학에 대한 관심은 사실 흡사 모나리자와도 같은 복잡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분필이 옅게 묻은 옷소매를 다소곳이 가리고 난해한 수식이 가득한 칠판 앞에 서서 찍은 다소 유치한 감성의 프로필 사진을 세상에 과시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그런 사진 하나만 찍어서 자랑할 수 있으면 마치 노벨상을 수상한 듯이 기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이과에 대한 열망은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 금세 꺾였다. 수학을 잘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폭파 해체되는 낡고 텅 빈 건물처럼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1학년 1학기 때 무식하기에 용감해서 도전했던 해석학 개론 수업의 첫 번째 강의가 끝나고 걸어 나오면서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동안 배웠던 수학은 수학이 아니었고, 그저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유리수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문장의 의미를 이해할 길이 없었다. 그 강의를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자신의 무리한 선택과 실수만 분명하게 다가왔다.


이 때문에 경제학으로 대학원을 가고 싶으면 차라리 학부 때 수학을 전공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조교와 선배의 조언을 듣고 경제학을 주된 분야로 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한 선배가 다음 학기에 유명한 정치학과 교수가 국제관계 개론 수업을 가르친다며 한 번 들어보지 않겠냐고 추천을 했다. 강의 계획서에 수록된 참고 자료 목록을 일일이 확인하며 그중에도 특별히 중요한 논문과 자료는 바빠도 꼭 읽어보라며 표시해준 그 선배에 대한 감사함은 지금도 남아있다.


사실 다른 관심사를 좇는 중에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늘 있었다. 어릴 때 그날의 날씨를 확인하러 신문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신문이 익숙해져서 그랬던 것일까. 영국에서 지낼 때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BBC 저녁 뉴스를 거의 매일 챙겨봤었다. 2003년에 이라크 침공이 개시되며 연합군이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학부 1학년 2학기의 그 국제관계 개론 강의에 사로잡혀서 정치학 수업을 더 듣게 되었고, 수업을 들을수록 정치학을 전공으로 선택해야겠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대인관계의 습관은 특히 학부 시절에 선후배와 동기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형성되었지만, 훌륭한 정치학과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의 뼈대가 자리 잡힌 것 같다.


되돌아보면 정치학은 한편으로 어중간한 선택이었다. 집중력은 부족하지만 욕심은 많아서 관심사의 폭을 최대한 좁히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역사, 사회, 경제, 심지어는 문학과도 접점이 있는 분야다. 일단 역사를 알지 못하면 분석할 사례를 찾기 어렵고, 정치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이라는 세부 분야가 있을 만큼 타 분야와의 관계가 긴밀하다.


사족이지만 정치학을 전공한다고 말씀을 드리면 매번 빠짐없이 받은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자네는 나중에 큰 뜻이 있는가"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이럴 때마다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필드에서 뛰는 축구 선수와 해설자는 그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이영표, 박지성, 안정환처럼 선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청자에게 탁월하고 예리한 분석을 전해주는 선수 출신 해설가가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해설조차도 어설프고 한 박자 느리면, 골키퍼의 허를 찌르는 반박자 빠른 슈팅을 기대하기 어려운 건 당연지사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게 될지 모르는 길 위에서 주체할 수 없는 오지랖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시카고대의 모든 신입생은 입학할 무렵에 교육의 목적을 다루는 연설(The Aims of Education Address)을 듣게 된다고 한다. 그중에 2002년 앤드류 애벗 사회학 교수의 연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애벗 교수의 답변이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때를 생각해보죠. 누구나 그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여러 예술적 전통에 대해서 알고 있고, 화가가 그 전통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을 했는지 알아챌 수 있고, 그 작품이 속한 사회적 맥락과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우리는 그림을 보면서 어쩌면 전혀 보지 못했을 수많은 것들에 눈을 뜨게 됩니다...

교육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실의 폭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확장시키기에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집니다. 교육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한한 것들을 배열하며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지금 현재의 의미를 극대화하는 과정입니다. 그 유한한 것들은 제각각 그 추상성과 구체성에서 다르며, 기량과 정보를 포함하며, 사실과 이론을 망라합니다.

마주하고 있는 시간적, 공간적 현실과 무관하게 교육은 우리가 그 현실 속에서 더 풍성한 삶을 향유할 수 있게끔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더욱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하며, 복잡성 가운데에서도 단순화를 가능케 하며, 구별과 유추를 가능케 하며, 가까이 있는 세상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초월할 수 있게 합니다.


집중해야 하는 분야가 어쩔 수 없이 좁아질수록 다른 분야와 익숙하지 않은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유퀴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는 것은 일상 속의 큰 행복이다.


도토리에 굶주린 탐욕스러운 다람쥐처럼 세상의 여러 단면들을 머릿속에 잡다하게 스크랩해두고, 그 조각들을 다양하게 끼워 맞춰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오지랖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어릴 적에 형이랑 놀면서 마루 바닥에 마치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어지럽게 늘어놓은 장난감과도 같은 그 조각들의 조합을 누가 관심을 가지고 볼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현실의 한 면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면 아마 그것보다 더 보람찬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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